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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Sep 20. 2019

다음 책 준비중ing니다

두 번째 책을 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이야기

전설적인 명드 인어아가씨에 피고름으로 쓴 대본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엄마 옆에서 과일 먹으면서 남 일 보듯 볼 때는 몰랐지.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이야. 다행히 피고름은 나오지 않지만 소화불량을 얻었다.

얼마 전 유튜브 채널 편집자K에 정영수 작가가 출연한 영상에서 글을 쓰다 보면 속이 메슥 거리면서 얹힌 것 같은 순간이 온다고 했는데 타인의 고통에서 위안을 받으면 안 되겠지만 위로를 받았다. 요즘 딱 내 상태잖아?

여섯 편의 소설을 하나하나씩 고치는 중이다. 때는 3일 전, 정확히 기승전결 중에서 '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가 있어서 파일을 열었는데 그때부터 증상은 시작되었다. 뭘 먹어도 소화가 되지 않고 미친 듯이 졸음이 쏟아져서 침대로 다이빙하게 되는 증상, 그건 해야 하는데 어려운 일을 맞닥드리면 몸에서부터 거부하는 내 고질병이다. 한때는 위염, 역류성 식도염을 의심했지만 건강검진 결과 그냥 타고나길 쓸개즙이 잘 나오지 않는 것 외에 건강 이상은 없다. 그날 이후 나는 이 병을 '하기 싫어 병'으로 부른다. 생각해보면 고3 때, 그리고 회사에서 보고를 앞둔 시기면 항상 비슷한 패턴으로 소화기 이상을 겪었다. 하기 싫은데 해야 하는 건 알고, 안 할 수는 없는데 하기 싫은 일이 있으면 꼭 이랬다.

작년에 갑자기(정말 이 말 밖에는...) 작가가 되고 소설을 계속 쓰게 된 후 다행히 딱 한번 정도 외에는 이런 순간이 왔던 적은 없어서 그저 신기해했다. 어쨌든 일을 하는데 늘 좋은 상태일 수는 없을 텐데 아직 싫은 감정은 없어서.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쉽게 굴러갈 리가. 이야기를 많이 읽고 쓰면 쓸수록 눈은 더 높아지고, 높아진 눈에 아무렇게나 쓸 수가 없게 되는데...(세상에 좋은 글은 너무 많고)

여섯 편의 초고를 완성하는 동안 또 눈이 더 높아져서 앞서 완성한 세 편의 이야기가 아쉽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수정이란 이름의 친구가 들러붙는다.) 그중 두 편은 결말이 아쉬워서 차라리 다시 쓰자는 생각으로 뜯어고쳤다. (결말이 맘에 들지 않으면 앞에부터 다 고쳐야 한다는 걸 알고 난 뒤로 드라마 작가 분들을 존경하게 되었다. 생방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때때로 반응에 따라 결말을 수정하는 거 어떻게 하시죠?!?!) 그런데 결말은 마음에 드는데, 이거 아니면 진짜 안 되겠는데 결말에 이르기 바로 직전이 마음에 들지 않는 이야기는 함부로 앞단을 뜯어고치는 것도 무서워서 손을 못 댄 지 3일째... 내 몸은 드디어 하기 싫어 병 증상을 보이는 중이다. 이야기 속에서 멋있는 결말에 이르려면 멋있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런 이야기를 쓰려면 멋있는 거랑은 거리가 한참 떨어진 토 나오는 과정이 뒤에 숨어 있을 줄이야.  그렇다고 내가 무슨 대단한 걸 쓰는 것도 아닌데. 아니 이렇게 해서 썼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또 어떻게 견디지? 자칫하면 영영 쓰기 싫어질까 봐 무서울 때도 있고 누군가를 실망시킬까 봐 불안할 때도 있다. 무엇보다 얹혀서 앉아서 뭘 할 수가 없다고.

이럴 때는 다 끊고 밖에 나가야 한다. 프리랜서의 특권은 데드라인을 미룰 수도 있다는 것. 협상의 여지가 있다는 거니까. (물론 그러지 않는 게 원칙이다. 나 역시 데드라인을 잘 지키는 사람이랑 일하고 싶으니까)

도저히 지금 이 상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과감하게 접고 산책을 한다.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관찰한다. 사람을 많이 보면서 또 소스를 얻고 일단 소화를 시킨다. 오늘 내가 관찰한 사람들이 나중에 또 이야기에 들어가기를 기대하면서 아직은 기다리는 중이다. 소화기도 정상 작동하고 내 머리도 가동되길 기다리면서, 이 글로 예열하는 중. 아무튼 두 번째 소설집은 이렇게 아등바등 준비중ing니다.


+제목은 언유주얼 매거진 4호 주제 '준비중ing니다'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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