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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Jun 03. 2020

웃기는 글, 울리는 글

친구가 결혼을 한다. 이번 주 토요일이니 3일이 남았는데, 꼭 결혼을 앞둔 사람이 나인 것처럼 벌써부터 심장이 콩닥댄다. 친구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낭송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데다가, 아주 좋아하는 친구의 결혼식이다. 그냥 중요한 자리여도 심장이 벌렁거릴 텐데 좋아하는 친구가 주인공인 행사라니. 평소라면 결혼식 당일이 되어서야 식장 위치를 허겁지겁 찾아 바쁘게 택시를 잡아타고 갈 정도로 결혼식에 무딘 편이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미리미리 몸과 마음을 다해 긴장을 할 수밖에 없다.


좋아하는 친구의 중요한 행사니까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은데, 언제나 마음만 앞선 글은 욕심이 덕지덕지 붙은 놀부의 인상처럼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과다하게 보여서 비호감이다. 지금 이 글은 비호감인 축사를 써두고 자괴감에 빠져 남기는 반성문이자 나중에 친구한테 멱살 잡힐까 봐 사전에 남겨두는 변명이다.


태태(별명)의 결혼을 생각할 때,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무엇보다 태태와 내가 공유한 기억이다. 혼자 있는 시간을 사랑하는 태태, 그러나 사랑을 아끼는 쩨쩨한 쫄보인 나랑은 다르게 사랑할 때가 오면 망설이지 않고 사랑을 주는 법을 잘 아는 그녀에게 나는 사랑과 연애를 (말로) 배웠다. 스무 살 때부터 서른까지, 눈에 들어오는 남자가 생기면 태태한테 이야기했고 ‘썸’이라는 단어가 생기기도 전에 ‘썸’ 상태의 간질간질한 무엇이 느껴지기만 해도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칭찬받은 일을 자랑하는 아이처럼 태태한테 전화를 걸어 재잘재잘 떠들기도 했다. 누구를 만나도 단점을 찾아내 의심하기에 바쁜 편협한 내 마음을 자주 들켰고, 그럴 때마다 태태는 상대방의 장점과 매력을 발견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했다.


사랑을 인정하는 기간이 한~참 걸리는 나와는 달리 태태는 망설임이 없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그 사람만의 고유한 매력을 잘 끌어내기도 하거니와, 우연한 상황을 인연으로 발전시키는 능력도 있었다. 표면이 까칠한 부싯돌 두 개만 있어도 곧장 불을 붙일 수 있었다. 감정 하나 없이 무미건조하게 스치는 사람에게도 애정의 그물망을 던져 확 낚아챌 수 있는 승부사이기도 했다. 그런 애의 연애담이 어떻게 재미가 없을까. 비록 지금은 비 연애 인구를 위한 잡지 <계간홀로>를 읽으며 “네 연애 니나 재밌지”라는 말을 따라 외치며 통쾌하다고 웃을 때도 많지만, 그런 때가 있었다.


사랑은 태태처럼 하고 싶어!

웃기지만 나는 5년간의 제법 긴 연애를 하던 중에도 태태의 연애담을 들을 때마다 뱃속에서부터 싹이 나는 것처럼 간질거렸다. 나로서는 다시는 느끼지 못할 유통기한이 다한 감정, 그 감정을 치열한 방식으로 통과하는 생동감 넘치는 애정 놀음에 시기심을 느끼기도 하면서.

나도 저런 사랑 해보고 싶은데.


내 인생에 더는 스스로 바라는 것도, 궁금한 것도 없다고 느꼈을 때 태태는 나한테도 아직 욕구가 있다는 걸 알려줬다. 사랑을 향한 욕구는 함부로 포기할 가치가 아니라는 것도 태태를 통해 배웠는데, 결혼식에서는 도무지 이 모든 말을 축사로 쓴 뒤 낭독할 수가 없다. 우리의 연애사를 구구절절 읊을 수도 없고, 무엇보다 눈물 많은 태태가 결혼식 날에는 울고 싶지 않다며 “웃긴 버전”으로 축사를 부탁했기 때문이다.


웃긴 글이라니! 으어어어억 (주먹을 입에 넣으며 운다)

정말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고 웃기는 글을, 그것도 결혼식장에 온 사람들을 웃길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니. 

미추어버리겠네!!! 


괜한 호들갑이 아니라, 글로 사람을 웃기는 일은 내 인생의 버킷리스트 1순위에 들어가 있지만 항상 실패하는(것 같은) 일이다. (여담이지만 두 번째 소설집 <오늘도 세계평화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를 사람들을 웃기고 싶어서 썼는데, 반응이 없어서 웃기는지 아닌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에… 완벽한 실패인지 아닌지 아직 단언할 수가 없다.)


차라리 ‘울리는 글’이면 우리 사이의 추억, 내가 생각하는 태태에 관한 단상을 하나 꺼내 들어 살랑살랑 부드러운 말투로 건드려주면 눈물 많은 그 애는 울어버리고 말 텐데. 그렇지만 새벽부터 일어나서 불편한 옷 입고 예쁘게 화장한 애의 얼굴이 판다가 되어 버리는 건 나도 원치 않아서, 어떻게든 ‘웃긴 축사’라는 미션을 해내 보려고 용을 썼지만 확신은 없다. 흰 종이에 간신히 써둔 웃긴 버전의 축사가 정말 태태를 웃기는 글이 되어야 할 텐데. 웃기는 글이 울리는 글이 되어버리면 어쩌지, 유사시를 대비해서 티슈 몇 장을 뽑아 들고 마이크를 잡아야 하려나. 최악은 웃기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울리지도 못한 채, 썰렁함만 남기는 글이다. (생각조차 하기 싫음)


내가 써둔 글이 의도대로 웃기는 글이 될지, 아니면 울리는 글이 될지, 그것도 아니면 그냥 아무것도 아닌…(아, 이건 생각하지 말자) 결과는 6월 6일에 나오고 확률은 50대 50이다. 축사를 한 줄 한 줄 읽을 때마다 시시각각으로 변화할 태태의 표정이 기대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대로 보내지는 않으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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