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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Jun 25. 2020

싸구려 우산 수집가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했다. 암막 커튼이 닫히듯 서서히 어두워지는 하늘을 볼 때부터 심상치 않더라니. 집에 뛰어들어와 우산을 챙겨 다시 나갔다. 우산 하나 때문에 왔다 갔다 하느라 꽤 많은 시간을 허비했지만 시간이 아깝지는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빗물로 샤워를 하지 않으려면 우산이 있어야 했고, 또다시 편의점에서 비싼 돈을 주고 싸구려 우산을 사고 싶지는 않았다.


대학 시절 나는 우산 수집가였다. 온갖 색깔의 싸구려 우산만 골라 모으는 싸구려 우산 수집가. 전 세계에서 발행된 모든 연도의 우표를 하나씩 스크랩해두며 희열을 느끼는 우표 수집가와 달리 내가 수집해놓은 우산이 모인 우산 통을 바라볼 때마다 한심함에 한숨만 나왔다. 우산 통에 잔뜩 꽂힌 알록달록한 싸구려 우산은 날씨와 벌이는 ‘눈치 게임’에서 얼마나 자주 장렬한 패배를 맛보았는가 보여주는 증거일 뿐이었다. 나는 자주, 어김없이 눈치 게임에서 졌고 그때마다 우산은 하나씩 늘어갔다.


경기도 수원에서 서울까지, 지하철로만 꼬박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 장거리 통학을 하며 이 좁은 땅에서도 도시와 도시를 넘어가면 날씨가 자주 오락가락한다는 걸 깨달았다. 갑자기 천둥이 치거나 먹구름이 몰려오는 게 눈에 보일 정도여서 우산을 사면 꼭 “속았지? 메롱”하면서 해가 비쳤다. 비를 다 맞고 걸어가자니 학교 안은 물론, 전철역까지도 아무리 부지런히 걸어도 20분은 족히 걸리는 거리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지하철에서 또 꼬박 한 시간 반을 보내면 감기가 걸릴 게 뻔했고, 그렇게 되면 몇 주간 어떤 고생을 해야 할 지도 눈에 선했기에 매번 나의 눈치 없음을 탓하며 비슷비슷하게 생긴 싸구려 우산을 사는 일을 반복했다.


여느 때처럼 눈치 게임에서 또 패배한 어느 날, 동남아시아의 우기에나 올 법한 스콜처럼 비가 내려서 아트박스로 뛰어 들어갔다. 편의점과 다르게 아기자기하고 장식이 화려한 우산이 많았고, 특히 프릴 같은 장식이 달린 우산은 취향이 아니었지만 선택지가 없어서 적당히 싼 가격대의 민트색 도트 무늬의 요란한 우산을 구매하고 나왔다. 아트박스 문 앞에서 우산의 비닐을 뜯고 우산을 막 펼치자마자 누군가 갑자기 휙 우산 밑으로 들어왔다. 마치 영화 <늑대의 유혹>보다 더 유명한, <늑대의 유혹> 강동원 우산 씬처럼!


영화 같은 순간이었지만 강동원 같은 남자분은 아니었고(그랬다면 이 글은 이렇게 덤덤하게 쓸 수 없었겠지) 짧은 단발머리를 한 여성 분이었다. 검은색 민소매를 입은 여성 분은 “저, 죄송한데 역까지만 같이 쓰고 갈 수 있을까요?”라는 부탁을 밝은 얼굴로, 공손하게 해왔고 나는 어쩐지 영화 같은 상황에 압도되어 역시 기분 좋게 웃으며 지하철역까지 우산을 나눠 쓴 채 걸었다.


여자분은 우산을 나눠 쓴 대가로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낀 건지, 아니면 원래 낯선 사람과도 대화를 잘 나누는 성향인지 알 수 없었으나 역까지 걸어가는 제법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대화를 이어갔다. 친근하게, 그러나 부담스럽지는 않은 거리를 적당히 유지한 ‘스몰토크’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는 여성분의 사교성에 어느새 빠져 들었던 나는 지하철역이 보이자 살짝 아쉬울 정도였다. 지하철역에 당도하자 “오늘 고마웠다”는 인사를 마지막으로 우리는 쿨하게 웃으며 각자 갈 길을 갔고, 혼자 지하철에 몸을 맡긴 채 수원까지 가는 내내 생전 처음 보는 이의 우산 밑으로 당당하게 파고들어온 여자의 태도가 계속 떠올랐다.


그건 나에겐 없는 종류의 태도였다. 우산을 나눠쓰자는 말을 초면인 사람에게 부탁한다는 건 곧 누군가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는 두려움을 누르며 일단 밀어붙여보는 용기였다. 미련하게 구름의 움직임이나 눅눅한 공기, 빗방울이 보내는 신호를 감지하거나 시시각각 얼굴을 바꾸는 날씨에 농락당하는 대신 누군가의 우산 밑으로 들어가 보는 용기를 부릴 수 있었다면 싸구려 우산을 한 통 가득 수집할 일은 없었을 텐데. 왜 나한테는 그런 용기가 없을까. 강한 바람 한 번이면 우산살이 뒤틀리는 싸구려 우산을 손에 쥔 채 뒤집힌 우산을 바로 할 때마다 우산 밑의 공간을 내어달라고 기분 나쁘지 않게 부탁해오던 그 얼굴이 자주 스쳐 지나간다. 그런 용기는, 뻔뻔함이란 건 타고나는 걸까. 여전히 나는 고집스럽게 비가 내리는데 우산을 챙기지 못한 날마다 8천 원에서 비싸면 1만 5천 원 사이의 거금을 주고 편의점에서 우산을 사모으고 있다. 싸구려 우산을 수집하지 않으려면, 일기예보를 챙기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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