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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Jul 19. 2022

친구들의 새 소식

아침에 일어나니 마지막 퇴근을 했다는 친구의 메시지가 와있었다. 꽤 예전부터 퇴사를 고민하던 친구는 나에게 툴툴댄적도 없고, 회사에 대한 불만을 얘기한 적도 거의 없었지만 나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다. 


응? 왜? 나한테 뭐가 고마워? 


처음엔 이런 의문이 들었고, 괜스레 멋쩍었다. 아마도 언젠가 퇴사로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내 이야기를 조금 길게 공유한 적이 있는데 그 글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겠지. 사실 그때 쓴 글은 너를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나를 위한 글이었는데. 오히려 너한테 털어놓고 내가 가벼워진 그런 이야기였는데. 흘려보내고 후련해했던 과거의 경험이 현재 친구의 선택에 아주 조금의 영향이라도 끼쳤을까 궁금했지만 물어보진 않았다. 너는 너를 잘 아는 사람이니까.


인수인계로 정신 없었을 마지막 퇴근길에 나를 떠올리며 회사를 그만두니 기분이 이상하다는 솔직한 마음을 내비친 친구에게 내가 느낀 감정도 '고마움'이었다. 가슴이 울렁이는 날에 생각나는 사람이 될 수 있다니, 그건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다정하게 건네주는 것과도 같아서 어느 날엔가 나에게 곁을 내어줄 사람이 남아있다는 신호를 받았다고 내 멋대로 해석해버렸다.


마침 그날 밤에 또 다른 친구에게서 임신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가 생겼다는 지인이 많았음에도 이렇게 가까이, 생명의 시작부터 곁에서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건 처음이다. 축하와 기쁨을 느끼기도 전에 두려움이 앞서고, 엄마가 된다는 생각에 눈물이 왈칵 나왔다고 했다. 임신을 한 당사자는 얼떨떨한 가운데 온 집안 식구는 먼저 기쁨에 도취되어 당사자는 배제되고 마는 분위기 속에서 친구는 기쁨을 느끼기엔 걱정이 많아보였다.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여성이 겪는 신체의 변화가 상상 이상으로 만만치 않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놀이기구를 탔을 때처럼 어지럼증을 동반한 멀미 현상이 지속된다니. 이렇게 몰라도 되는 건가. 나도 여자인데. 생물학적 성별이 여성이라해서 임신에 대해 다 알아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 임신에 대해 여자들이 아는 거라고는 헛구역질을 하는 모습과 남편이 사다준 맛있는 음식, 그걸 먹으면 좀 나아져서 웃는 얼굴, 해피엔딩! 이 정도인데.


어떻게 이런 얘기는 하나도 안 해주고, 다들 행복한 척만 하는 거야?


임신의 어려운 점은 조금도 얘기해주지 않은 친구들이 신기하면서도 야속하다는 친구의 말. 슬슬 입덧이 시작되고 있어서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나 역시 왜 그간 아무도 아이 엄마가 되는 일의 어려움을 얘기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동시에 '행복한 척'이라는 표현에 뜨끔했다. 어렵고 힘든 이야기는 되도록 아끼고, 더러운 부분은 맑게 닦아낸 뒤에 내 삶의 가장 깔끔하고 아름다운 부분을 보여주고자 노력하는 게 내 성향이라 그런가보다. 나 역시 나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고, 듣는 것도 피곤해하는 성향이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일수록 생략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과정의 어려움과 괴로움을 건너뛴 채 결과만 요약해 이야기하는 편이다.


행복한 척을 한 게 아니라 잊은 거 아닐까? 우리 엄마는 나 낳고 힘들었던 거 잊어버려서 동생도 낳았다던데.


임신과 출산의 진실에 대해 한창 이야기를 나누며 꺄르르 웃다가 '망각론'에 이르렀다. 아마도 아프고 나쁜 쪽은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하다보니 좋은 이야기만 할 수밖에 없었을 거라는 말은 사실 자기변명이기도 하다. 아프고 고생스러운 이야기를 감추는 사람, 그래서 끝내 솔직하지 못한 기억이 더 많은 사람이 바로 나니까. 통화를 끝내고 오늘도 말해준 새 소식은 없고 듣기만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려줄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텐데. 임신을 했더니 컨디션이 좋지 않다, 마지막 출근을 한 날이라 기분이 이상하다... 좋지 않고  이상하고, 나쁘다 할지라도 전할 수 있는 말이 찰랑찰랑 차올라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러나 여전히 소식은 없고 그대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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