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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유미 Aug 01. 2022

작업은 직업이 될 수 있을까?

'작업해야 하는데...'

이 생각을 하느라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한 문장씩 썼으면 소설책 한 권이 나왔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작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할 바에야 아예 그 생각을 정리해보면 좋을 것 같아 창작자의 작업과 창작자라는 직업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본다.


작업을 잘하기 위한 방법을 생각하느라 정작 작업에 몰입하지 못하고 하루를 보내곤 한다. 작업할 시간이 없어서 수면 시간을 줄이는 사람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내 시간은 하루 여덟 시간 숙면을 취해도 작업에 무리가 없을 정도로 시간이 많은 편인데, 그 많던 시간은 어디로 갔을까. 도둑맞은 시간을 찾아줄 모모도 없는 세계에서 부족한 건 시간이 아니라 목표겠지.


목표없이 꾸준히 쓴 글을 묶어서 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글은 책 한 권으로 쉽게 엮이지 않는다. 책을 관통하는 주제가 책을 쓴 저자, 사람이 되어도 설득력이 있으려면 그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몇 가지 아이덴티티가 분명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사람이 아니라면 저자의 이름 하나로는 책을 끝까지 읽어야만 이유를 마련해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문장 하나하나 탐미하며 읽는 재미를 주는 뛰어난 문장가라면 예외. 그런데 이렇게까지 문장이 뛰어난 분들이 꾸준히 글을 내보내면 소문이 나지 않을수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다.)


그렇다면 세상에 자신의 이름과, 자기정체성을 널리 떨치지 못한 대다수의 작가들은 어떻게 꾸준히 작업할 수 있을까? 작업이 내 직업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 근로계약서에 서명을 한 직장인이 매일 출퇴근하는 일상을 매일 싫어할 수는 있을지언정 의심하지는 않는 것처럼, 글을 쓰는 사람 역시 매일 쓰는 행위가 힘들고 지치더라도 바로 그 일이야말로 내가 매일 반복적으로 해내야 하는 직업적인 책무라는 사실을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다. 


말이야 쉽지만 굉장히 어렵다. 대부분 시간이 지날수록 기술이 늘고 요령이 붙어 쉬워지는 많은 일들에 비해 글쓰기는 경력과 실력이 비례하는 분야도 아니다. 이건 정말이다. 신간 예고 소식만 들어도 좋아서 어쩔 줄 모르던 존경하고 사랑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다보면 작품 활동 초기, 그러니까 경력이 전무하던 시절에 발표한 글들이 더 좋았던 경우도 많았다. 조금은 신비주의적인 해석일지 모르겠으나 아마도 글에는 창작자의 '기운'이 깃들 수밖에 없기에 창작자의 창작 에너지, 표현욕구, 생명력이 폭발하는 '특정한 시기'가 있고, 대단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이러한 시기는 지속력이 그리 길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몸에서 뿜어내듯 터져나오는 글이 있다. 이런 글은 써야만 하는 글, 반드시 세상에 내보내야만 하는 글로 대개 기술적으로 빼어나지 않아도 읽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반면 써야만해서 쓴 글도 있다. 쉽게말해 작가가 직업적 의무를 다하기 위해 쓴 글이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기술력이 뛰어난 작가들은 쓸 수밖에 없는 글과 써야만 하는 글 사이의 격차가 거의 없다. 읽는 사람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라면 손에 꼽을 만한 뛰어난 직업인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고 싶어서 하는 이야기와 그렇지 않은 이야기를 썼을 때 생기는 기운의 차이를 스킬로 덮을 수 있는 능수능란한 직업인은 적을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나 포함)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보통의 성실한 창작자는 어떻게 계속 이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을까?


이야기는 다시 질문으로 돌아간다. 내 작업이 직업이라는 확신은 과연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을 때 직업으로서의 창작자는 성립할 수 있다. 작업이 직업이 되기 위한 기준으로는 보상(경제적/심리적 모두), 반복성, 비전(업계의 유무와 수요)이 있겠다. 이 셋은 어느 것 하나 우선할 수 없으므로 숫자를 붙이는 것은 의미가 없다. 보상과 반복성, 비전은 순환하는 모양이다. 


매일(혹은 주기적으로) 일정 시간을 들여 규칙적으로 하는 작업이 업계 내에서 호명을 받아 거래가 되고, 이에 따른 보상을 받아 생활을 영위하거나(많은 창작자들이 이러한 단계까지 갈 수 있기를 원함), 아직 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보상을 받지는 못하지만 내 작업물에 대한 응원과 관심을 보내주는 감상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비전이 있는 상태. 대략 이러한 상황 속 어느 단계든 '발을 걸치고 있다'고 체감해야만 작업이 직업이 '되어가는' 과정을 받아들일 수 있다.


창작하는 일의 특수성은 이렇듯 작업을 내 직업이라고 인식하는 데에도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만 아는 폴더 속, 클라우드, 화실, 스튜디오에 작업이 고이지 않고 감상자를 향해 흘러가도록 노력해 기회를 잡았을 때만 마침내 '직업'으로 완결된다는 점이 작업이 직업이 되는 길이 멀고, 길어보이도록 만든다. 매일 작업을 하기만 해도 직업이 될 수 있으려면 경제적 자유를 이룬 상태이거나 생활에 필요한 모든 의무를 처리해주는 대리인을 둔 사람이어야 하고, 그런 사람들이 진심으로 부럽다.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작업이 업계와 감상자의 호명을 받을 때 비로소 직업인으로서의 자격이 생긴다. 


자격을 남에게 맡기는 건 수동적인 자세다, 매일 하다보면 뭐라도 된다는 말에는 솔직히 회의적이다. 지나친 낙관주의는 '대책없음'을 시인하는 태도일 뿐인데다가 솔직하지도 못하다. 작업이 직업이 되어가는 중인 창작자, 직업이 될 수 없을 것 같아 고민하는 창작자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그보다 업계 내에서 막 자리를 잡아가는 중이어서 신진 작가들에게 좋은 대우를 해주는 플랫폼, 그 플랫폼에서 작가 섭외에 진심인 담당자의 연락처, 그리고 구상중인 작품의 계획을 발전시킬 수 있는 기획 회의, 초고를 꼼꼼하게 검토해줄 동료 작가, 이용자 수가 많은 구독 플랫폼과 구독서비스 운영 방법 교육... 대략 이런 것들을 머리 맞대고 고민할 기회, 먼저 써본(일해본) 사람의 후기가 쌓여있다면 좋을 것 같고 그런 정보를 쉽게 얻기는 어려우니 그냥 '내돈내산'의 자세로 내가 해보고, 내가 깨닫겠습니다. 후기는 종종 이곳에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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