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인간관계에 대해 생각을 해본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에서 담백함을 유지한다. 만나는 횟수와 관계없이 정서적인 친밀감을 느낀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나를 소중히 여기는 것을 알 수 있다. 서로의 성장에 긍정적인 자극을 준다. 상대의 인간적인 매력에 매료되어 있으므로 관계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
한데, 홀로 서는 것이 버거운 이들은 이런 관계를 맺기가 어렵다. 혼자서는 온전할 수 없기에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의지해 평온을 찾는 탓이다. 나의 행복보다 상대의 기분과 감정을 먼저 살핀다. 이런 관계 속에서는 내가 나다울 수 없다. 좋은 관계가 서기 위해서는 내가 혼자서 잘 서 있을 수 있어야 한다.
"가능한 한 많은 친구를 원하고,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 친구라 생각하고, 늘 어떤 친구와 함께 있지 않으면 마음이 차분해지지 않는 것은 당신이 위태로운 상태에 있다는 증거다."
- 프리드리히 니체 <차 라투스라는 이렇게 말했다>
20대의 나는 혼자 있는 텅 빈 시간을 견디지 못했다. 함께 할 때 즐겁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내 시간을 관계 속에 내동댕이 쳤다. 외로움의 늪에 빠지는 것보다는 지루한 만남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편이 차라리 나았으니까. 설상가상으로 뚜렷한 취향이나 선호랄 것도 없어서 사소한 식사메뉴부터 만나는 장소까지 상대의 선택을 그대로 따랐다. 그야말로 무색무취의 회색 인간. 모든 색을 맥없이 흡수하는 회색을 두고 사람들은 착하다는 말로 얼렁뚱땅 포장했다.
얼마 전, 남편과 아이가 태어난 후 우리의 일상이 어떻게 변할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50일 정도 뒤면 우리 식구가 하나 더 늘겠네. 아빠 되기 전에 하고 싶은 거 없어?"
"글쎄. 아기 보느라 네가 더 힘들 텐데 뭘. 휴직 들어가면 혼자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녀와."
"오 그럴까. 아 근데 아기 있으면 혼자서 카페 가기도 힘들다며? 와, 오빠. 이건 좀 아찔하다. 혼자 있는 시간이 없어지면 나 멀쩡할 수 있을까?"
"나도 걱정이다. 너는 혼자일 수 없으면 병이 나는 사람이잖아."
남편의 말을 통해 현재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가 많다. 남편이 '병이 난다.'라고 까지 표현한 걸 보면, 혼자 있는 게 힘들어서 아무에게나 시간을 쓰고 마구잡이로 관계를 맺던 과거의 내 모습은 확실히 사라지고 없는 듯하다.
이 변화의 요인이 뭘까 생각해보았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레 깨닫는 것도 있었을 테고,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피하는 게 나에게 이롭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8할은 책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흥미로운 책 한 권은 마음이 통하지도 않는 누군가와의 공허한 만남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신나게 읽을 수 있는 책 한 권만 있으면 혼자 있는 시간이 버겁기는커녕 더없이 풍요로웠다. 독서에 시간을 무한정 쏟아도, 게임이나 드라마 시청처럼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지 않는 것도 장점이다. 책과 보내는 시간만큼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듯한 안도감 역시 좋았다.
혼자만의 시간이 좋아하는 누군가와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소중해졌다. 그러자 내가 어떤 사람들과 있어야 진정으로 나답고 편안할 수 있을지를 감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나다울 수 있는 인간관계만을 남긴다. 입 속에 씹히는 모래알 같은 불편한 관계는 자연스럽게 놓아준다.
존재 자체로 서로에게 기쁨이 될 수 있는,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없이 소중하다. 한정된 인생의 시간 속에서 내가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더 좋아하는 데에 시간과 마음을 더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