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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yuun Jan 23. 2024

바베트의 만찬을 읽고

최근 회사 근처 북카페에서 점심을 간단히 먹으며 3일에 걸쳐 다 읽은 책이 있다. 이자크 디네센의 바베트의 만찬이다. 그림이 예뻐서 그림책인가 하고 봤는데 표지에 헤밍웨이가 자신이 아니리 디네센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거 극찬한 문구에 이끌려 읽게 됬다.


평소에 잘 읽지 않는 단편소설이지만 몰입도가 높았고 다 읽고 나서는 적잖은 감동과 위로가 되서 간단한 내용소개와 내 감상평을 짧게 기록해봤다.


[바베트의 만찬 - 이자크 디네센 / 추미옥 옮김]


노르웨이의 소박한 시골마을에 목사의 딸로 태어난 두 자매는 아름다운 외모와 천상의 목소리를 가졌다. 신앙과 봉사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매들은 세상적인 일들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는다. 젊은 시절 그녀들의 외모와 하나님이 주신 재능으로 반짝 반짝 빛이나 깊은 시골마을임에도 많은 사람들이 오다가다 그들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사랑의 결실이나 더 넓은 세상으로 나올 수 있는 기회들이 있었지만 두 자매는 그저 마음속으로만 간직하고 자신들에게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하며 고요한 삶을 택한다.


바베트는 두 자매의 곁에서 어쩌다 함께 살며 가정부로 일을 하는 여인인데, 세상에서 큰 인정을 받았던 유능한 사람이었지만 한 개인이 어찌 할 수 없는 운명으로 인해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도망쳐온 신세가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그녀가 봉착한 새로운 삶에 착실히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책에서는 시골에서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며 가진 것이 없어도 하나님과 더 많은 접촉을 통해 충만함을 느끼며 기쁘게 하나님을 섬기는 고요한 삶과 더 넓은 세상 경험을 통해 사회에서 인정받는 성취를 이루었지만 어딘가 공허한 삶의 대비를 묘사한다. 소박한 마을의 가정집에서 차려진 프랑스식 최고급 만찬과 포도주, 그리고 그 마을에서만 한평생 살아온 나이든 신도들, 고향을 떠나 세상 밖으로 나가 성공한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식사를 한다. 대화의 주제는 이 만찬 자리에 올라온 음식이 얼마나 훌륭한지 포도주의 등급이 어떤지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적과 행복했던 추억들, 그리고 서로 꺼내지 못했던 마음속의 얘기들이 오간다.


고급 요리를 접해보지도 들어본적도 없는 소박한 사람들에게 그 만찬은 서로 연결해주고 하나님의 은총을 더 가깝게 느껴주게 하는 매개체일 뿐 그 이상이 아니었다. 화려한 만찬을 손수 준비한 바베트는 사람들이 자신의 요리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위대한 예술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만찬을 준비한 것이고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들, 아이로 돌아간것처럼 맑은 마을 사람들을 본 것으로 자신의 할일을 다 했다고 느꼈을 것이다.


삶에서 누구에게나 공허감이 찾아온다. 그때마다 내 삶의 기준이 정말 중요한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지 돌아보자. 성취를 하려는 것 자체로는 좋은 것이고, 삶에 목적의식을 갖기 위해 필요한 자세이지만, 결과에 집착하진 않았는지, 애초에 왜 원하는 것인지가 불분명할 때는 목표를 잘못 설정한 것일 수 있다.


읽으면서 내내 나 자신을 돌아보고 나였더라면 이렇게 고요한 삶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맹목적으로 남들이 추구하는 것, 세상에서 좋다고하는 것을 너무 쉽게 인정하며 나도 똑같이 추구하기보다 나에게 필요한 것, 하나님을 기쁘게 하며 타인에게 도움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작은것부터 목표삼아 살아가면 조금은 공허함이 덜 찾아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좋았던문장 기록]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없었던 일로 칠 수도 있는 일이 뿌리깊은 종기처럼 그의 마음을 괴롭혔다.


아무것도 깔려 있지 않은 맨바닥에 가구도 거의 없는, 천장 낮은 이 방은 목사의 신도들에게는 소중한 장소였다. 창밖은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창턱에 줄지어 세워둔 분홍색, 파란색, 빨간색 히아신스가 방에서 내다보 이는 하얀 겨울의 바깥 세상과 경계선을 이루고 있었다. 여름에 창을 열어 두면 펄럭이던 흰 모슬린 커튼이 액자틀처럼 바깥 세상을 감싸 안았다.


장군은 어느 때부턴가 자신의 영혼에 관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럴 만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장군은 도덕적인 사람이었고, 왕과 아내와 친구들 에게 신의를 지키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세상이 도덕으로만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알 수 없는 신비로운 힘에 이끌리는 것처럼 생각될 때가 있 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고 가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베푼 것일지니!"


"네, 마님, 파팽 씨요. 그분이 제게 말씀하셨죠. 예술가로서 최선을 다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고도 박수를 받는 것만큼 참을 수 없는 것은 없다'고요. 또 말씀하셨죠. '예술가가 세상을 향해 부르짖는 것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날 내버려둬달라는 외침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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