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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yuun Apr 23. 2024

나무 드로잉

불완전해서 더 아름다운 나무들

매일 걷는 동선 사이에 15분 가량을 보통의 발걸음 속도로 가로지를 수 있는 숲길이 있다.

연두색 새싹이 나뭇가지에서 쭉쭉 삐져나오는 이 계절에 특히나 나무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자연이 만들어낸 곡선과 가지들이 끝없이 각자의 방향으로 뻗어나간 형태가 하나하나 다 너무 예쁘다. 하늘 높이 뻗은 나무를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변화가 빠르고 사라져가는 것들이 많은 시대에 나무는 늘 제자리에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자연의 일부로, 더 거대한 힘 앞에서 저항 없이 순응하며, 제 자리에 고정된듯해 보이지만 환경이 주는 조건에 맞춰 유연하게 가지를 구부러트리며 뻗어나갈 자리를 만들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제자리에서 자연에 필요한 역할을 해내는 나무들에게서 배울 점이 참 많다.


이탈리아 디자이너 브루노 무나리의 나무 드로잉에 관한 그림책에서, 모든 나무는 근본적으로 매우 단순한 프랙탈 기하학의 구조로 자란다고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나무를 관찰하며 얻은 통찰에서 영감을 받아 쓴 철학적인 그림책이다.

책의 내용을 소개하는 한 블로그에서 가져온 내용을 요약하자면, 이러한 패턴을 정확하게 유지하며 일정한 형태로 자라나는 것은 자연 조건 아래에서 불가능하지만, 세상의 모든 나무들은 고유한 규칙성을 가진채 다양한 환경적 영향으로 인해 계속 변화하며 진화한다.


다빈치가 발견한 나무의 기하학적 규칙


나무가 자연이라는 맥락이 아닌 혼자 우뚝 서서 아무 풍파 없이, 일정한 영양을 섭취하고, 매일 햇살을 쬔다면 나무에는 자연스러움이 없고 아무 흔적도, 상처도 없을 것이라고 책에서 말한다. 하지만 이런 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무가 우리 눈에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는 자연이 던져주는 여러 풍파에서도 어떻게든 견뎌낸 흔적과 잔가지가 부러져도 기둥과 뿌리는 견고해서 상처를 아물어가며 스스로 치유되고 성장을 멈추지 않는 모습 때문인 것 같다.


나무들의 형상을 바라보고 그림을 그리는 것은 요즘 나의 큰 즐거움이 되가고 있다.


나에게 나무라는 존재들은 늘 곁에 있고, 내 마음을 알아주는, 나를 이해해주는 조용한 친구들 같다. 앞으로 나무를 관찰하고 내가 본 나무의 멋진 부분을 그리는 일은 어쩐지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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