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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Nov 30. 2024

혼코노-2

대학가 골목길을 지나다 보면, 지하로 가는 계단을 따라 희미한 불빛 아래 코인 노래방이라는 작은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건물 입구를 지나는 짧은 시간에 추억을 떠올린다. 그곳은 나와 기억이 가장 자주 만나는 무대였다. 문을 밀고 들어서면 비릿한 공기와 어설픈 조명이 먼저 나를 반겼다. 사람들의 흔적이 묻어난 마이크와 가운데가 푹 꺼져버린 의자마저도 익숙했다. 혼자 가는 노래방은 꼭 화려하거나 반짝거릴 필요는 없었다. 외롭고도 따스한 그 공간은 혼자라는 것을 온전히 받아들이게 해주는 은신처 같은 곳이었다.


이어폰을 끼고 흘려보내던 음악들, 내 안에 꾹꾹 눌러 담아둔 감정들을 마이크에 실어 보낼 때면, 나는 마치 낯선 계절의 창 너머를 보는 듯한 기분이었다. 청춘이 흐릿한 먼지처럼 떠다니던 그 시절, 나는 혼자라는 사실이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혼자서 느끼는 감정들, 흘려보내는 눈물들, 읊조리는 가사들에서 더 나다운 나를 만났다.


그렇게 감정을 다한 곡이 끝날 때면 나는 작은 노트를 꺼내 곡명을 적어놓았다. 마치 내 감정을 기록하는 듯한 그 습관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낯익다. 그날 노래한 곡들이 오늘의 나를 위로했다면, 다음에 적힐 곡들은 내일을 살아낼 힘이 되어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어느 겨울날, 노래방 창문 밖에 하얀 눈송이가 천천히 흩날리던 장면이 아직도 선명하다. 내가 좋아하던 노래의 가사가 화면 위로 흐르고, 나는 미처 따라 부르지 못하며  화면을 바라보며 영문 모를 눈물을 흘렸다. 그날 내 안의 상처들은 눈송이처럼 사라졌을까, 아니면 단단한 얼음으로 남았을까. 그러나 그 순간이 언젠가 부를 노래의 감정이 되었을 게 분명하다.


그곳은 내게 단순히 노래를 부르는 장소가 아니었다. 홀로 고요한 시간을 보내는 그곳에서 나는 세상을 조금 멀리 두고, 나 자신에게 더 가까워졌다. 쏟아지는 박수도, 화려한 조명도 없지만, 작고 흐릿한 그 공간에서 오로지 내 목소리만 울려 퍼졌으니,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지금도 종종 눈을 감고 혼자 노래 부르는 날들을 떠올린다. 너무 바쁘거나, 너무 힘들었던 날에 특히 더. 그곳에서 흘려보낸 노래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나를 일으킨다. 어떤 음은 희미하게, 어떤 음은 강렬하게. 그러나 모든 음은 나를 이루는 조각으로 남았다. 감정이 비어 가는 느낌이 들 때면 아껴놓은 조각을 꺼내어 한 번 더 맛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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