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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박사 Jul 17. 2023

포드주의와 테슬라주의

On Vision and Inspiration | 비전과 영감

“헨리 포드가 값싸고 믿을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었을 때 사람들은 ‘아니, 마차를 타면 되잖아?’하고 말했습니다. 헨리 포드의 큰 베팅은 결국 성공했습니다.”


"When Henry Ford made cheap, reliable cars, people said, 'Nah, what's wrong with a horse?' That was a huge bet he made, and it worked."


2015년 타임 매거진은 “일론 머스크는 제2의 헨리포드가 될지 모른다Elon Musk could be the next Henry Ford”라는 도발적인 기사를 작성했다. 한 금융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자동차 산업을 "지배할 수 있는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라고 언급했다. 


많은 부분에서 21세기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20세기의 헨리 포드Henry Ford와 닮아 있다. 핵심 분모는 혁신에 있다. 지금은 혁신을 이야기할 때 아무도 헨리 포드를 이야기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진정 그는 20세기의 혁신가였다. 자동차 가격을 낮추어 누구나 살 수 있는 제품으로 만든 것도 그였고, 2차 산업혁명으로 표현되는 컨베이어 벨트 방식에 기반한 제조 혁신을 세상에 내놓은 것도 그였다. 그의 영향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헨리 포드가 자동차를 발명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의 노력 덕분에 자동차는 20세기와 21세기를 통틀어 세상을 가장 크게 바꾼 제품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기업의 혁신에는 리더의 자신감, 위험 감수 성향, 리더십 능력, 미래에 대한 비전이 필요하다고 한다. 헨리 포드는 사업가에서 혁신가로 변모하면서 이런 대부분의 특성들을 개발했다. 그는 1863년 현재 미시간Michigan 디어본Dearborn에 있는 농장에서 태어났는데, 당시는 대부분의 미국인이 농장에서 태어나 농부가 되는 시대였다. 그는 어릴 때부터 집안의 장난감을 분해하는 취미가 있었다. 초보적인 물레방아나 증기기관을 만들면서 기계와 친해졌고, 엔지니어로서의 소질을 쌓았다. 1879년, 그는 농장을 떠나 디트로이트의 한 기계 공장에서 견습생이 되었고, 1891년 전기에 대해 잘 몰랐지만 에디슨이 세운 전기 회사 에디슨 일루미네이팅 컴퍼니Edison Illuminating Company의 야간 엔지니어로 취직해 성장의 계기를 만들었다. 


그에게는 엔지니어로서의 커리어보다 더 큰 야망이 있었다. “말이 끌지 않는 마차”라고 불리던 “자동차”를 보급하는 일이었다. 그는 세상에 알려진 기본적인 자동차 개념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더해 1896년 최초의 원시 자동차인 쿼드리사이클Quadricycle을 탄생시켰다. 쿼드리사이클은 말 그대로 바퀴 네 개 달린 자전거에 동력 장치가 달린 물건이었다. 그는 이 첫 작품을 개량해 찰스 에인슬리Charles Ainsley라는 사람에게 200달러에 팔아서 다음 자동차 제작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했다. 


자신감을 쌓은 그는 혁신가로서의 가장 큰 덕목인 비전 제시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꿈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말 없는 마차를 만들기 위한 회사를 창업하는 인생 최대의 모험에 사람들이 참여하도록 설득했다. 하지만 사업 운영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그의 두 번째 회사는 실패도 돌아갔다.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경주용 자동차를 제작하고 직접 운전까지 한 포드의 노력 덕에 추가적인 재정적 지원이 이어졌고, 40세 생일 직전인 1903년 6월 16일 그는 자신의 세 번째 벤처인 포드 자동차Ford Motor Company를 설립할 수 있었다. 


그는 비전을 통해 젊고 뛰어난 핵심 인재들을 유치하면서 회사를 성장시켰다. 포드는 첫 자동차인 모델 A를 출시했고, 1906년에 내놓은 모델 N은 600달러의 가격으로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자동차가 되었다. 그러나 포드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좋고 저렴한 대중을 위한 자동차"에 대한 열망을 품었는데, 그 결과 1908년 10월 1일, 역사적인 모델 T를 출시했다. 1908년 당시에는 자동차가 어떤 용도로 사용되어야 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쟁이 진행 중이었다. 자동차가 양산되기 전 미국인의 삶의 반경은 곧 교통수단이 제공하는 반경과 동일했다. 마차를 가졌다면 마차의 운행능력이 곧 삶의 반경이었다. 자전거를 주로 탄다면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는 거리가 삶의 반경이었다. 결론적으로, 교통수단의 한계가 세상의 한계가 되었다. 도시의 상업 교통수단은 여전히 마차였다. 때로는 노면전차나 자전거를 이용했다. 시골의 미국인들은 말이나 노새가 끄는 마차가 갈 수 있는 곳 이상은 다니지 않았다. 장거리 이동이라면 광범위하게 발달된 철도 네트워크를 이용했다.


자동차를 타고 동부에서 서부로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휴게소에 들러 휴식을 취하거나, 모텔에서 잠을 자고 장거리 이동을 한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자동차의 확산은 곧 도로의 확장을 의미했으며, 도시 간 연결이 자유로워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도시가 연결되고 사람들이 이동함에 따라서 주유소나 숙박, 레스토랑 같은 산업들이 함께 발전했고, 미국인의 삶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 되었다. 이렇게 자동차가 가지고 온 혁신은 사람들의 삶을 통째로 바꾸어 버릴 만한 것이었다. “더 좋고 저렴한 누구나 탈 수 있는 자동차”를 만들겠다는 헨리 포드의 포부는 실로 대단한 비전이었다. 


포드 이전에 일상적인 활동에는 아직 자동차가 필요하지 않았으며, 자동차는 부자들의 여가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승용차’라는 말도 본격적으로 사용되지 않았고, 자동차가 비싼 장난감일 뿐, 진정한 혁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헨리 포드는 1913년 사내 잡지인 포드 타임즈Ford Times에 다음과 같은 자신의 비전을 공유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자동차를 만들 것입니다. 가족이 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지만 개인이 운전하고 관리할 수 있을 만큼 작을 것입니다. 현대 공학이 고안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설계를 거쳐 최고의 소재로 최고의 인력을 고용해 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가격이 너무 저렴해서 월급을 많이 받는 어떤 사람이라도 소유할 수 있을 것이며, 가족과 함께 하나님이 주신 넓은 세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축복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헨리 포드가 회사를 통해 추진한 모든 활동 이면에는 “모든 사람들이 쉽게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보편적인 신념이 관통하고 있었다. 그가 단순히 발명가이자 엔지니어를 넘어선 혁신가로 거듭난 이유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 기계에 대한 지적 호기심, 자신감, 리더십, 시행착오, 위험 감수, 인재 발굴 능력 등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활용했다. 


포드는 직접 자동차 디자인의 혁신을 이끌었다. 그가 리드한 1908년 모델 T의 일체형 엔진 블록이나 탈착식 실린더 헤드와 같은 설계는 이후 모든 자동차의 표준이 된다. 모델 T는 신소재 개발에도 앞장서서 강도가 높은 바나듐 합금강을 도입하고 경량화에도 신경 썼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작은 20마력 엔진으로도 고성능 자동차에 버금가는 성능을 발휘했다. 경쟁사보다 더 가볍고 더 견고하며 더 신뢰할 수 있는 자동차였다. 이것이 포드가 보여준 ‘제품혁신’ 능력이다. 


포드의 혁신은 제품 혁신에 멈추지 않았다. 포드는 모델 T의 생산 속도를 더 높이고 생산 원가를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현대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포드의 업적 중 하나인 기업의 “제조공정혁신’ 능력이다. 그는 자동차 생산 방식에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그의 혁신을 뒷받침한 노력 중 하나가 모델 T 대량 생산 가속화를 위해 1910년 설립된 포드의 하이랜드 파크Highland Park 공장이었다. 디트로이트 북쪽에 위치한 도시 하이랜드 파크에 자리한 거대한 새 공장은 20세기의 제조업을 완전히 바꿀 새로운 생산방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과학적 경영 관리scientific management’로 대변되는 테일러주의Taylorism를 통해 현대 경영의 이론적인 근간을 제공한 프레데릭 테일러Frederick Taylor는 19세기말 공장 생산의 구상과 실행을 분리시키면서, 숙련공에 의존하던 생산을 관리자의 통제 하에 둔다는 개념을 제시했다. 테일러주의의 핵심은 표준화였다. 생산과정을 면밀하게 관찰하고 작업의 시간적 요소를 측정하여 해당 직무를 최대한 작게 세분화하고 노동자들이 임의성을 반영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을 추구했다. 노동의 시간 요소는 사전에 연구되고 계획되며, 생산 계획에 따라 자원, 과업을 할당한다. 


포드는 테일러주의적 사고에 기반해 생산의 구상과 실행을 분리하고 직무를 구분했다. 이에 더해 부품을 표준화하고 컨베이어 벨트를 활용한 생산 공정을 도입했다. 이런 아이디어는 육류 공장의 분업 및 공정 프로세스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10년대 하이랜드 파크 공장에서 완성된 생산 방식은 ‘포드주의Fordism’라는 이름으로 이후 자동차 생산뿐만 아니라 모든 제조업의 기본적 사고방식이 되었다. 포드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산 공정의 부품들은 완전히 상호 호환 가능하도록 정교하게 사전 제작되어야 한다. 또한 공장의 생산 프로세스는 정교하게 디자인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정밀 기계 장치와 설비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비약적인 생산성의 향상은 이전에는 꿈으로 치부되었던 자동차의 대량생산을 가능하게 했고, 가능성을 현실로 바꾸었다. 


포드의 하이랜드 파크 공장은 당시 세상에서 가장 큰 제조시설로 알려졌다. 이후 수많은 공장과 생산 시설의 벤치마크 대상이 된 이 복합 시설은 포드가 구상한 ‘공급망 통합 전략’을 실행하기 위한 본거지로, 사무실, 공장뿐 아니라 독자적인 전력 공급을 위한 발전소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철저한 분업, 끊임없는 비용 절감과 프로세스 최적화를 통해 하이랜드 파크 공장은 빠르게 학습 곡선을 그리면서 대량 생산 체제를 갖추었다. 1913년 이 공장은 컨베이어 방식의 조립 라인을 갖춘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이 되었다. 모델 T를 한 대 만드는 데 걸리는 생산 시간은 기존 10시간이 넘는 시간에서 93분으로 획기적으로 줄었다. 더불어 1910년 700달러였던 모델 T 가격은 1917년 350달러, 1926년에는 260달러로 내려갔고 대부분의 미국인이 살 수 있는 자동차가 되었다. 


포드의 혁신은 기술적 개선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1914년 파격적인 임금인상을 실시했다. 포드주의 생산 방식의 단조롭고 반복적인 노동에 대한 직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높아지는 와중에, 헨리 포드는 임금을 하루 5달러, 이전 대비 두 배로 인상하는 대담한 제안을 했다. 이는 다른 비숙련 공장 임금의 세 배에 해당했다. 당시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후 이는 좋은 의사결정이었던 것으로 밝혀진다. 임금 인상을 통해 포드는 공장의 생산 인력 안정성(퇴직률은 30%대에서 1%대로 줄어들었다)을 확보하며 생산 혁명에 박차를 가하는 동시에, 직원들이 스스로 생산한 자동차의 고객이 될 수 있는 구매력을 제공할 수 있었다. 포드 이전의 일반적인 자동차 소매가격은 약 2,000달러, 평범한 근로자의 5년 치 임금에 육박했기 때문에 서민들은 자동차를 살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이랜드 파크의 제조 공정 혁신은 자동차 산업을 넘어 제조업 전반에 확산되었고, 포드의 경영 기법은 노사 관계와 교육훈련을 포함한 인사 시스템 전체에 영향을 주었다. 


이후 모델 T 판매량은 꾸준히 증가하면서, 가격은 낮아졌다. 1921년, 미국 내 자동차의 절반은 포드의 모델 T였다. 1926년에 전 세계 도로 위 모든 자동차의 절반은 포드였다. 연간 판매량은 1907년 14,877대에서 1919년 946,155대로 빠르게 늘어났다. 1913년 하이랜드 파크의 혁신 이후 14년이 지난 1927년, 포드는 1500만 번째 마지막 모델 T를 생산했다. 마지막 모델은 1907년 헨리 포드가 제안한 기본 설계에서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 이는 복잡성을 낮춘 신뢰성 높은 제품 디자인이 어떻게 기업의 고속 성장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포드주의를 통한 혁신은, 시장이 존재하지 않았던 자동차의 비고객non-consumer을 어떻게 고객consumer으로 만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시장 창조 혁신market-creating innovation의 좋은 예가 된다. 기업은 제품을 오래 지속시키기 위한 상품성 유지 활동, 즉 유지 혁신sustaining innovation에 집중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신형 자동차가 나올 때마다 사양이 변화되는 것이다. 혹은 자동차 연비를 조금씩 개선하고 향상하는 효율성 혁신efficiency innovation에 집중할 수도 있다. 그러나, 헨리 포드는 비전 제시를 통해 “누구나 살 수 있는 자동차”를 추구하면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을 고객으로 만들었다. 기존에 없던 시장을 새로 만들어내는 시장 창조 혁신만이 기업 고속 성장의 드라이버가 될 수 있다. 철저한 생산 계획 관리, 분업화, 공정의 표준화를 추구하는 포드주의는 적시생산Just-in-Time 및 자동화Jidoka, 린 생산방식lean production 등의 개념으로 대변되는 토요티즘Toyotism, ‘토요타주의’가 본격적으로 부상하는 1980년대까지 자동차 제조 공정의 상식으로 받아들여졌다. 


포드의 제조 공정 혁신 능력에 경쟁 우위를 더한 것은 수직통합vertical integration 개념이다. 1917년 포드는 디트로이트 남서쪽 루즈 강Rouge river 지역에 새로운 공장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 유서 깊은 단지는 2022년 포드의 베스트셀러 F-150 트럭을 생산하는 전기자동차 생산 라인으로 탈바꿈했다. 루즈 공장Rouge Plant은 자동차 생산 공정의 모든 측면을 통제하기 위한 수직 통합 거점이었다. 광산에서 채굴한 철광석은 강을 따라 이동해 제철 공장에서 엔진, 차체 등을 만들기 위한 철강 제품으로 탈바꿈했다. 자동차에 필요한 유리, 타이어도 이 지역에서 생산되었다. 전성기의 루즈 공장은 10만여 명의 근로자를 고용했다. 완성차의 후방 산업을 직접 통제하는 수직 통합은 다른 제조업체들에게도 영감을 주었다. 


포드는 1926년 자신의 저서에서 자신이 개발한 수직적 통합이 성공의 열쇠라고 주장하며 “제대로 하려면 직접 하라If you want it done right, do it yourself”라는 말을 남겼다. 그는 수직통합 시스템에 대해 미네소타에서 철광석을 채굴해 디트로이트의 루즈 지역으로 운송한 후 84시간 만에 시카고까지 생산된 자동차를 배송할 수 있는 높은 효율성을 자랑했다. 물론 최상위 수준의 효율성을 추구하기 위한 극단적 표준화에는 단점도 있었다. 예를 들면 포드 모델 T는 검은 색상으로만 생산되었다. 원가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극단적인 표준화는 다양해지는 고객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한계를 가져왔고, 경쟁사들이 부상하는 원인이 되었다. 


최초의 컨베이어 벨트 생산 시스템으로 대량 생산이라는 생산성 혁명을 가지고 온 포드주의의 대표적인 색상이 검은색이었기 때문에, 이후 검은색은 혁신과 첨단의 이미지, 고급 혹은 하이엔드 제품에는 역시 검은색이라는 공식을 사람들의 머리 속에 각인시켰다. 부자들을 위해 소량으로만 생산되던 사치품, 자동차는 혁신의 날개를 달고 시민들에게 자동차의 시대인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의 문을 열어 주었다. 

시대를 풍미하던 혁신자도 지속적으로 스스로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국 경쟁에서 뒤처진다. 미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준 자동차를 생활필수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포드였지만 이후 마케팅 관점의 제품 혁신에 뛰어든 크라이슬러, 제네럴 모터스 등에 밀려나기 시작했다. 포드가 코스트를 낮추고 생산의 통제력을 갖추기 위해 구축한 수직 통합 모델은, 고객의 니즈가 다양해지고 다품종 소량 생산 부품들이 필요하게 되면서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부품 제조사들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면서 서서히 힘을 잃었다. 이후 완성차 업체들이 부품 제조사의 혁신에 의존하게 되면서, 포드의 강력한 수직 통합 시스템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금 테슬라에게서는 포드가 보인다. 제품 혁신 외에도 극단적 효율성 추구, 제조 공정 혁신, 핵심 부품의 강력한 수직통합 등, 많은 부분에서 포드주의의 기본 철학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테슬라는 100여 년간 거의 변화하지 않았던 자동차 생산의 기본 문법에도 손을 댔다. 자동차를 만들려면 철판을 자르고, 용접하고, 도색해야 한다는 사고부터 바뀌었다. 신소재 개발과 자체 생산 설비 개발을 통한 내재화에도 힘쓰며, 로봇 설비에 의한 자동화 프로세스 활용을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들도 검토하고 있다. 

테슬라가 포드주의를 계승한다는 근거는 차종의 명명 방법에서도 나타난다. 테슬라의 차종은 “모델 0”라는 명명법을 따르는데, 초창기 포드주의를 대표하는 모델 T의 명칭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실제 모델 3의 원래 이름은 모델 E였지만, 그 이름을 사용했던 포드의 반대로 어쩔 수 없이 E를 뒤집은 3자를 사용하게 되었다). 2023년 현재 테슬라에서 모델 3의 부분변경 모델을 출시하는 사업은 “프로젝트 하이랜드”로 불린다. 


헨리 포드의 모델 T와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는 파괴적 혁신과 혁신이 수반하는 사회경제적 영향 측면에서 유사점을 공유한다. 포드의 모델 T와 테슬라의 전기 자동차는 각 시대의 파괴적 혁신으로 간주될 수 있다. 포드의 모델 T는 자동차의 생산 코스트를 낮추어 대중 시장을 창출함으로써 자동차 산업에 혁명을 일으켰다. 테슬라는 모두가 높은 생산 비용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말하던 전기 자동차를 대중화하고 지속 가능한 운송 시스템을 추구하면서 기존 자동차 산업을 혼란에 빠뜨렸다. 테슬라 역시 더 많은 사람들이 전기 자동차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속 가능한 운송 수단으로 전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기술 측면에서 두 회사 모두 자동차 산업에 중요한 기술 진전을 가져왔다. 포드는 컨베이어벨트 기반의 조립 라인 제조 공정을 제시하여 생산 효율성을 높이고 수직통합으로 생산 원가를 낮추었다. 테슬라는 제조 혁신 이외에도 새로운 배터리 생산 및 관리 기술, 소프트웨어 기반의 자동차software defined vehicle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바퀴 달린 컴퓨터’로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고 있다. 친환경 에너지로 인한 환경 영향 감소, 에너지 산업 전반을 아우르는 지속 가능 에너지원과 충전 인프라로의 전환도 중요한 기여다. 포드와 테슬라는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포드는 새로운 대중 자동차 시장 개척으로 노동자들의 삶의 반경을 넓혔다. 테슬라는 관련 부문에 대한 투자와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촉진하며 경제 성장에 기여하고 있다. 


포드가 대량 생산 자동차 소유의 토대를 마련했다면, 테슬라는 지속 가능한 운송 수단으로의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긴밀하게 통합된 공급망을 추구하는 테슬라는 100년 전 업계를 지배했던 포드의 기본적인 전략을 따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헨리 포드는 공급망을 완전히 통제하고 직접 부품을 제작하면서 동시에 자동차 성능을 개선하고 비용을 절감하는 데 필요한 규모를 확보했다. 머스크 역시 빠른 속도로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가팩토리Giga Factory 거점과 규모를 빠르게 늘리며 전기 자동차의 배터리와 같은 전략적인 구성 요소들의 코스트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다. 테슬라는 착실하게 시장을 파괴하고 전통적인 경쟁자들을 따돌리기 위해 전기자동차의 보급에 필요한 낮은 코스트를 달성하려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다. 


한때 포드주의는 제조업의 교과서였다. 생산성 혁명으로 표현되는 2차 산업혁명에서는 종교와 존재감을 가진다. 그러나 포드는 다양해지는 고객 니즈를 충족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수직 통합된 공급망은 모듈화된 세트 부품을 전문으로 공급하는 대형 부품사로 독립되어 커 나가기 시작했다. 포드 혼자 모든 것을 처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컴퓨터의 등장과 IT 보급으로 인한 디지털 혁명, 3차 산업혁명 시대에 들어서면서 규모의 경제를 위해 제조업체가 공급망의 모든 구성 요소를 한 공간에서 통제할 필요는 없어졌다. 이제 더 낮은 비용으로, 더 빠른 속도로 수직 통합의 규모를 확장시키는 것이 가능해졌고, 수직 통합 전략은 테슬라에 의해 다시 부활되고 있다. 


전통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간과한 것은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이다. 오랜 시간 동안 제조업체들은 하드웨어 기반의 자동차hardware defined vehicle에 집착했다. 그러나 테슬라의 수직 통합 모델은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움직인다. 머스크는 포드 모델 T가 그랬던 것처럼 저렴한 비용의 전기 자동차를 제공하려고 한다. 초창기 포드주의의 성공에 기여한 요인들이 오늘날 테슬라의 성장에도 기여할 수 있을까? 인공지능과 같은 소프트웨어 기반 기술이 테슬라의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을까? 테슬라가 수직 통합을 가속화할수록 생산 방식과 제품을 개선할 수 있는 여지가 늘어날 것이다. 포드는 일찍 이런 사실을 깨달았고, 아마 머스크도 그럴 것이다.  


테슬라가 전기차 보급 가속화를 위해 준비 중인 2만 달러짜리 자동차가 100년 만의 모델 T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포드의 비용 효율적인 생산은 수많은 경쟁자들을 파산으로 밀어붙였다. 테슬라의 제조 혁신이 동일한 역사를 반복할지 모른다. 1913년 하이랜드 파크에서 시작된 포드의 혁신이 세계의 절반을 점령하기까지 13년 걸렸다. 테슬라는 판매 모델의 라인업과 사양을 단순화하고, 제품의 수명 주기를 늘리기 위해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통한 개선을 실시하여 복잡성을 낮추는 동시에 전기차 대량 생산에 필요한 낮은 원가를 확보할 수 있다. 기술 발전으로 포드의 수직 통합 시절과 달리 테슬라는 글로벌 분산 공급망을 활용하면서도 대규모 제조의 비용 이점을 추구할 수 있다. 배터리와 같은 핵심 부품은 직접 제조하면서 학습곡선을 가속화, 경쟁사 대비 전략적 우위를 확보하고, 개선 필요성이 낮은 범용 부품은 아웃소싱을 택한다. 테슬라 판매량은 2012년 1만 대, 2015년 5만 대였다. 2023년 예상 판매는 200만 대다. 2030년 2천만 대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면 지속 가능한 에너지로의 가속화라는 비전은 달성된다. 


테슬라가 경쟁 우위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저비용을 양립시켜야 한다. 배터리 원가 하락과 생산량 증대롤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제품 영역에서는 핵심 역량을 유지하면서도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고객에 대한 선택권 제공 측면에서, 모델이나 사양의 종류를 불필요하게 늘려 복잡성의 부담을 가중시키지 않으면서도 자율 주행과 같은 핵심 기능에 집중한다. 차별화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다. 테슬라가 포드와 다른 점은, 1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지금, 혁신을 가속화하고 시장 변화의 변곡점을 빠르게 가져올 소프트웨어로 무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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