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Vision and Inspiration | 비전과 영감
2018년 6월 16일,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자신의 철학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았는지 간결하게 설명했다. 그는 SF의 고전으로 알려진 더글러스 애덤스Douglas Adams와 아이작 아시모프Isaac Asimov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혔다. 머스크의 전기를 출간한 애슐리 반스에 따르면 10대 소년 시절, 일론 머스크는 인류의 운명에 대해 "개인적인 의무감"을 느꼈다고 한다. 머스크는 책에 대한 애정과 책에서 얻은 교훈을 통해 미래에 "더 깨끗한 에너지 기술을 개발하거나 우주선을 만들어 인류의 도달 범위를 확장"하는 데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머스크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The Hitchhiker's Guide to the Galaxy’의 실제 버전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 바 있다. 이것은 영국의 방송 작가이자 소설가인 더글러스 애덤스의 코믹 SF 소설로, 원래 1978년에 BBC 라디오에서 방송된 6회 편성의 라디오 드라마였다. 이 작품은 엄청난 세간의 인기를 끌게 되었고 후속 시즌과 함께 책으로도 출판되었다. 그 외에도 텔레비전 시리즈,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콘텐츠들이 양산되었다. 이 작품은 코믹 SF 장르를 개척하고 최초로 SF 팬덤이 탄생하는 시초가 되었으며 책은 1,400만 부 이상 판매되었다.
내용은 이렇다. 작품은 불쾌하고 관료적인 외계인 종족인 보곤족이 지구를 파괴한 후 평범한 영국인이자 우주 탐험가가 된 아서 덴트Arthur Dent가 겪는 좌충우돌 모험을 다룬다. 아서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은하계의 백과사전이자 여행 가이드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던 중 15년 동안 지구에 고립된 – 실은 외계인 연구원으로 밝혀지는 – 친구인 포드 프리펙트Ford Prefect와 함께 지구의 파괴를 피해 탈출한다. 두 사람은 포드의 사촌, 머리가 둘이고 팔이 셋 달린 은하계 대통령, 편집증을 가진 안드로이드 로봇과 함께 우주를 여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하고 기묘한 우주 종족과 생명체들을 만나게 된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는 다양한 철학적, 과학적 아이디어를 탐구하는 유머러스한 스토리로, 재치 있는 대화, 부조리한 유머, 공상 과학에 대한 유쾌한 접근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거대한 것들에 대한 가차 없는 조롱과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 삶과 문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블랙 코미디로 독자들을 매료시켰다. 거대한 우주 대모험의 주인공인 아서 덴트는 평범한 인간이다. 야심도, 특별한 능력도, 새로운 세계에 대한 모험심도 없으면서 우주 멸망의 기로에 선 중요한 순간에도 따뜻한 홍차 한 잔 생각이나 하는 우리 일상 속 평범한 인간 군상이라는 설정이 공감을 얻으며 일약 세기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2018년, 머스크의 우주 탐사 회사인 SpaceX는 당시까지 회사가 만든 로켓 중 가장 강력한 로켓이었던 ‘팰컨 헤비’를 플로리다 케네디 우주 센터에서 발사했고 머스크는 로켓의 테스트 탑재체로 그가 직접 이용하던 1세대 테슬라 로드스터 자동차를 실었다. 이 자동차는 스타맨Starman이라고 명명한 우주복을 입은 마네킨을 운전석에 앉힌 채 화성 궤도를 향한 긴 항해를 시작했다. 자동차의 센터페시아 중앙 화면에는 "당황하지 마세요!Don’t Panic!"라는 간결한 문구가 적혀 있었는데, 참고로 이 유명한 문구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책의 표지에 삽입된 문구에서 따온 것이다.
오늘날에도 머스크가 추천하는 책 중 하나는 과학자이자 사이언스 픽션 작가인 아이작 아시모프의 7권으로 구성된 공상과학 소설 시리즈 '파운데이션Foundation'이다. 그는 2018년 트위터에서 “SpaceX 창립에는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와 (로봇공학의) 영법칙Zeroth law이 근간이 되었다.”라고 밝혔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아시모프가 1942년부터 1950년까지 잡지에 연재한 이야기를 소설로 출간한 것이 시작이다. 이 시리즈는 1950년대 발간된 클래식 3부작Trilogy과 1980년대 ~ 1990년대 발간된 4편의 이야기를 포함해 총 7부작으로 구성된다. 소설은 먼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데, 인류의 지식을 보존하며 멸망 위기에 처한 은하 제국을 재건하기 위해 ‘재단Foundation’을 설립하는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심리역사학Psychohistory이라는 학문을 창시한 수학자이자 사회학자 해리 셀던Hari Seldon이 제출한 논문 한 편이 시리즈 전체를 관통하는 시발점이 된다. 셀던은 15,000년 동안 은하계를 지배한 은하 제국이 곧 멸망하고 약 3만 년의 암흑 시기가 찾아올 것이라는 수학적 예측을 한다. 이에 그는 심리역사학적 방법으로 이를 예방할 수 있으며, 이와 동시에 은하계의 지식을 집대성할 단체인 '파운데이션'을 설립해 그 암흑기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의 계획에 따라 은하계 외곽에 파운데이션을 설립하여 지식과 문화를 보존하고 제국 붕괴할 시 재건을 도울 수 있도록 하는 프로젝트가 시작된다.
아시모프의 서사는 역사가인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의 작품 로마제국 쇠망사The History of the Decline and Fall of the Roman Empire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공상 과학 소설의 고전으로, 복잡하고 거대한 줄거리와 잘 발달된 캐릭터, 생각을 자극하는 아이디어로 찬사를 받았다. 이 시리즈 역시 텔레비전 시리즈와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로 각색되었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몇 가지 핵심적인 주제를 다룬다. 첫째는 지식과 권력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탐구하는 파운데이션은 다른 은하계에 알려지지 않은 지식에 접근하는 엘리트인 과학자와 수학자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지식은 파운데이션의 힘의 원천이 되고, 이에 따라 제국은 예측된 재난과 역경 속에서도 생존하고 번영할 수 있다.
둘째,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계획의 중요성이다. 파운데이션 시리즈는 미래를 위한 장기 비전의 중요성에 대한 서사를 다룬다. 인류의 먼 미래를 내다보고 후세에 다양한 난관을 극복할 계획을 준비하는 것은 인류 문명의 지속성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 될 수 있다. 파운데이션의 기초를 세운 해리 셀던은 은하 제국이 붕괴되지 않고 지속될 수 있도록 하는 ‘셀던 계획Seldon Plan’을 세운다. 이 계획은 소수의 엘리트들이 은하 제국의 불가피한 붕괴 이후 예상되는 3만 년의 혼란과 전쟁을 천 년 기간으로 줄임으로써, 심리역사학에 의해 생존과 번영을 보장받는 미래 제국의 영속성을 위해 고안한 것이다. 파운데이션의 성공은 상당 부분 셀던의 장기적 계획에 근거하며, 이 계획은 인류가 직면한 도전을 예측하고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셋째, 파운데이션은 인간 정신의 힘과 능력에 대한 이야기다. 파운데이션은 수많은 고난과 도전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집단이다. 그들은 항상 생존할 방법을 찾으며, 문명을 재건할 방법을 찾는다. 인간 정신의 회복력과 이에 대한 희망은 중요한 성공의 원동력이 된다.
로봇공학Robotics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것도 아이작 아시모프로 알려져 있다. 아시모프의 세계관을 관통하는 로봇공학을 위한 기본적인 세 가지 원칙Three Laws of Robotics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로봇은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고장으로 인해 사람이 다쳐서는 안 된다
(A robot may not injure a human being or, through inaction, allow a human being to come to harm)
로봇은 제1원칙과 상충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인간 명령에 따라야 한다
(A robot must obey orders given to it by human beings except where such orders would conflict with the First Law)
로봇은 제1원칙 또는 제2원칙과 충돌하지 않는 한 자신의 존재를 보호한다
(A robot must protect it's own existence as long as such protection does not conflict with the First or Second Law)
머스크가 언급하기도 한 로봇공학의 영법칙은 위 세 가지 원칙에 선행하며, 다음과 같다.
로봇은 인류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하며, 궁극적인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다른 모든 원칙을 무시할 수 있다
(A robot must act in the long-range interest of humanity as a whole, and may overrule all other laws whenever it seems necessary for that ultimate good)
특히 로봇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영법칙은 인간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칠 휴머노이드 로봇의 행동 양식의 가장 중요한 전제가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공상과학적 설정에서 시작되었지만, 이 개념은 현대의 로봇공학자와 과학자, 엔지니어들에게도 계승되고 있고, 미래 우주 탐사와 그에 필요할 인공지능을 탑재한 인간형 로봇들을 만드는 근간이자 철학이 된다.
단단한 기초가 없다면 위풍당당한 높은 건축물은 세울 수 없다. 2018년 팰콘 헤비 로켓에 실려 발사된 테슬라 로드스터 자동차에는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 시리즈 디지털 버전이 수록되었다. 지구 외 행성에 대한 우주 탐사 의지를 반영하는 SpaceX에 대한 머스크의 생각은 이런 행동에서도 엿볼 수 있다. 머스크는 인공 지능과 로봇 기술의 발전을 통해 미래의 인류 문명을 지원할 통합 시스템을 구현하고자 한다. 이런 기업의 활동은 장기적 비전을 필요로 한다.
아시모프의 이야기에서 과학자들이 문명 유지를 위해 추구하는 파운데이션과 유사한 모습으로 비칠 여지도 있다. SpaceX라는 기업을 통해 우주 탐사 역량을 기르고, 인류 문명이 파멸을 맞기 전에 다행성 종족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비전도 파운데이션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와 통하는 부분이 많이 있다.
머스크는 2017년 인터뷰에서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은 읽을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며, 인류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문명을 연장하고 암흑기의 가능성을 최소화하며 암흑기가 온다면 그 기간을 줄일 수 있는 일련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은 주기적으로 움직이며, 지금은 우주 탐사와 인류의 상승 사이클을 추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한다. 인류가 지구 밖으로 고개를 돌려 문명을 지속할 꿈을 꾸게 된 것은 45억 년 만에 처음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창문이 열려 있을 때(올바른 때가 왔을 때) 행동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며, 창문이 언제까지나 열려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도 말했다. 지식을 보존하고 인류의 생존을 돕는 파운데이션의 사명에서 영감을 받은 그는, SpaceX도 비슷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으며, 회사를 통해 인류가 우주를 탐험하고 인류를 위한 새로운 삶의 터전을 찾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혀왔다.
우주 탐사 기업인 SpaceX의 이름은 우주 탐사Space expedition와 X를 합친 것이다. X라는 글자는 통상적으로 미지의 세계, 혹은 ‘모든 것everything’을 표현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머스크는 미지의 세계를 탐험한다는 회사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그런 이름을 선택했다고 했다. 머스크가 설립한 기업의 로고들 역시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영감을 받은 것이 많다.
SpaceX의 기업 미션Mission Statement은 "우주 기술을 혁신하여 인류가 다른 행성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to revolutionize space technology, with the ultimate goal of enabling people to live on other planets”이다. 비전Vision Statement은 “화성에 자급자족 도시를 건설하여 인류를 다행성 종족으로 만드는 것to make life multi-planetary by establishing a self-sustaining city on Mars”이다. 결국, 이 회사의 이름, 로고, 사명 선언 모두 파운데이션 시리즈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