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죽었다.
죽은 듯이 잔다는 말과 반대로 자는 것처럼 죽은 것이다.
믿을 수 없는 죽음이라 평상시에 쓰던 ‘돌아가셨다’는 어휘가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엄마는 죽었다.
불과 4시간 전, 남편과 결혼한 딸들의 자식들까지 10명의 가족이 왁자지껄 먹고 마시던 거실 옆 안방에서 말이다. 때는 5월이었고 늘 그렇듯이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을 묶어 기념하던 날의 밤이 지나고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 새벽녘 전화가 온것이다.
응급실로 향하는 응급차 안에서 응급한 사촌동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촌동생은 작은 삼촌의 딸로 중학생때부터 우리 집에서 함께 자란 친동생같은 존재로 당시 엄마 아빠와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동생은 분명 "고모부가 숨을 안쉬셔!! 응급차로 이동중이야. 언니 빨리 와 흑흑흑"
우는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고.모.부' 즉 우리 아빠라고 말했다. 아니 그렇게 들렸다.
새벽 4시 중소 병원 응급실 주차장은 어둑하고 축축했다.
차가 멈추기 전에 보조석문을 열려는데 락이 걸려 덜컥거렸다. 거칠게 락을 제껴 발은 딛고 달렸다.
뒷통수에서는 남편의 비명과 다섯살난 딸의 울음이 터졌지만 이내 멀어졌다.
응급실 문이 열리자 낯익은 등이 보였다.
아빠의 등?
그럼 그의 앞에 누워있는 건 아빠가 아니라 엄마란 말인가?
침대 앞에 주저앉아 우는 건 사촌 동생, 그 옆에 팔을 늘어뜨리고 서있는 퀭한 남자는 방안에 틀어박혀사는 남동생이었다.
그럼 침대에 아무렇게나 누여져있는 몸둥이는 우리 엄마라는 추리는 더디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내발이 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감히 고개를 빼서 확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의 시간은 슬로우 모션으로 기억된다.
난 한참을 서있다가 동생이 주저앉아 있는 침대로 뛰어갔고, 엄마의 모습을 마주했다.
상의가 마구 풀어헤쳐져 있었고, 눈은 감고 있었다.
입술은 붉었다.
그냥 자고 있는듯 했다.
엄마는 죽었다고 누군가 말했다.
난 허공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왜 아무 조취를 취하지 않느냐고. 심폐소생술, 전기 충격 뭐 그런거 왜 안하냐고?
신경질적인 표정의 간호사가 뛰어왔고, 이미 숨을 거둔채 오셔서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충고하듯 말했다.
또 다른 간호사가 달려왔고 일단 영안실로 옮기겠다고 했다. 난 안된다고 소리치려는데, 누군가 더 큰 목소리로 소리를 치며 달려들었다. 내 바로 아래 여동생 진아였다.
"언니, 전화로 아빠라고 했잖아!!!!!!!! 왜 엄마가 누워있어?????!!!"
아아아아아아악 그녀는 악다구니를 쳤다.
아빠가 들으시면 안되는데...
또 또 다른 간호사가 달려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된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입술이 거슬렸다. 매트한 붉은색 립스틱의 가운데 부분이
쩍 갈라지는 것이 몹시 불쾌했다. 마치 여기서 죽음은 늘상 일어나는 일이니 그만 성가시게 하라고 재촉하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입술 사이로 나오진 않았다.
하지만 동생 진아의 악다구니는 멈추지 않았다. 엄마의 몸을 거칠게 흔들었고, 멍하니 서있는 내 몸을 주먹으로 치며 울부짖고 있었다. 진아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그녀의 한살배기 딸이 힘없이 흔들리다 내 가슴에 부딪히고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귀가 아팠다. 귀가 너무도 아팠다. 그런데 귀가 아픈게 아니었다. 어딘지 모르는데 어딘지 모르는 곳이 너무 아팠다. 나도 모르게 비명이 새어나왔다.
이번에는 건장한 체격의 두 남자가 달려왔다. 그들은 엄마 침대의 양 끝을 잡고 우리를 밀쳐 침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짐승처럼 달려드는 우리를 붙든건, 남편들이었다. 나는 그제서야 포획당한 멧돼지마냥 거칠고 뜨거운 숨을 내쉬기 시작했다. 아마 그 전까지 숨을 쉬고 있지 않았던마냥 거칠고 단내나는 숨이었다.
그때까지의 기억속에 등만 보이던 아빠와 옆모습으로 남아있는 남동생의 등장은 없었다. 다시 그들의 모습이 기억에서 등장하는 건 반나절 지나 옮긴 대형 병원의 장례식장에서였다.
이상한 기억의 편집일까?
아님 그들은 그 사이 잠시 사라졌던 걸까?
나는 늘 궁금했지만 누구에게 물어본적은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생모의 죽음이 얼마나 슬픈지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라곤 나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 때 알았다. 그건 슬픔이 아니라는 걸. 그것은 고통이었다. 아주 또렷하고 생경한 실제적인 고통이다.
이런 종류의 슬픔의 깊이 따위는 없다. 깊이는 그 끝이 있어야 가늠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런 종류의 고통도 크기 따위는 없다. 크기 또한 정해진 형체가 있어야 가늠이 되는 것이다. 계속 커지고 있기에 크기가 얼마인지 나는 지금까지도 예측할 수 없다.
분명한 건 난 그때부터 추락하고 있었다. 끝이 없는 어딘가로 계속 떨어지고 있어 심장이 훅 훅 덜컥거렸다.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내 삶에 펼쳐졌고
살면서 한 번도 예상치 못한 장면과 마주했다.
10년 전 엄마는 그렇게 죽었다.
엄마가 돌아가신지 10년이 지났습니다. 그래도 난 여전히 지독히 슬픕니다.
'엄마를 잊기 위해, 엄마를 잃지 않기 위해' 엄마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게워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와 당신에게 죽음이 불편한 키워드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