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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 Jul 31. 2023

페미니즘 동아리의 시작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한 교사의 고민과 실천(1)

고1 통합사회 교과에서 사회적 소수자 차별 부분을 가르칠 차례였다. 교과서에 나오는 흑인, 장애인의 차별은 누구나 동의하지만 현대 사회에서 다양해지는 소수자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싶었다. 그것이 해당 부분의 성취목표이기도 했다. 소수자의 요건을 소개하며 다양한 소수자의 예시를 들고 특히 여성혐오의 원어인 미소지니를 설명하고 가부장제가 우리에게 주는 영향을 여성과 남성 모두에게 적용하여 준비했다. 특히 맨박스와 관련한 영상은 내가 봐도 재미있었다. 학생들은 처음 들어봤다며 흥미로워했고 자신들의 이야기라 느끼는 이들은 반가워했다.      


별 탈 없이 진행되고 있다 생각했을 때 한 남학생이 예시를 들며 이것은 남성혐오가 아니냐 질문하고 역차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당혹스러웠다. 남성혐오는 성립할 수 없다고 설명했지만 설명하면서도 혼란스러웠다. 내가 생각하는 옳다는 관념이 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 앞에서 느끼는 당황스러움과 교사로서 잘 설명해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빠르고 자명한 이유를 듣고 싶어 하는 학생 앞에서 나는 머뭇거리고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싫었다. 그 머뭇거림이 내 주장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로 읽힐까 봐 열심히 말했지만 동시에 이 설명이 가닿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추상과 개념의 언어를 현실 세계의 사례와 연결시키려면 많은 연결고리가 필요하고 그 과정을 탐구할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역사적 맥락이 있는 사안을 현재 시점에서만 바라보면 납작해진다. 짧고 분명한 대답은 존재하기 어렵고 내가 설명할 수 있는 시간은 짧다. 그 모순 속에 수업을 마치고도 몇몇 학생들과 질의응답을 이어갔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 이 부분을 잘 알려줘야겠다는 책임감도 커졌다.      


수업을 마치고 공부를 해야겠다 생각했다. 나와 동질한 집단에 오래 있으며 텔레파시처럼 소통했던 순간들이 아쉬워졌다. 더 정확한 언어로 이야기하고 훈련했다면 더 잘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나는 교사니까, 먼저 알고 잘 설명해 줄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말로는 학생과 교사는 일방적인 가르침의 관계가 아니라 영향을 주고받는 배움의 동무라고 강조했지만 사실 내가 무언가를 더 많이 알고 가르쳐줘야 하는 사람, 그렇지 못하면 부족한 교사라고 교사의 역할을 협소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일단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했다. 공부를 해야지, 뭘 더 알아야지 내가 부족하다는 믿음의 미로를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기로 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집단이나 개인을 찾아보기로 했다.


남성 청소년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성평등한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을까, 남성 청소년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또래집단 안에서 어떤 대화를 나누고 어떤 정보를 접하며 살아갈까, 더 많은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단 생각이 들었다. 전교조 사회교사모임을 찾아보고 초등교사들의 페미니즘연구회도 찾아봤다. 서울시아하성교육센터 자료실과 서울시성평등지원센터 자료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여학생들 중에 페미니즘에 관심 있어서 같이 공부할 친구들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다음 학기에 만들어야지 생각했던 페미니즘 동아리를 좀 더 일찍 시작해 보기로 결정했다. 나 혼자 열심히 공부해서 전달하는 것으로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비슷한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면서 실천하고 부딪히며 함께 성장해야 하는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여학생들은 페미니즘 동아리에 큰 관심이 있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자기 문제로 생각하며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보편적인 문제로 다뤄지는 듯 했다. 오히려 퀴어나 소수자 전반에 대한 관심이 더 컸고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고 관심이 더 많은 것은 남학생들 같았다. 어쩌면 늘 궁금하고 관심이 있는데도 여학생들 중심의 페미니즘 동아리에 들어가기 어려운 역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남학생들 중심의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기로 했다. 학교에서 토론하기를 즐겨하고 친구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학생들을 열 명 정도 생각하고 한 명씩 제안하기 시작했다.

남학생 중심의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같이 하지 않을래?
 

제안하지 않은 학생들도 옆에서 하는 이야기를 듣고 관심 있다며 같이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첫 모임이 열리자 자신도 관심있는데 제안받지 못했다는 학생도 생겼다. 그렇게 남자 고등학생 10명과 페미니즘 동아리를 시작했다. 찬란한 6월의 아름다움이 나의 기대와 두려움, 불안과 함께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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