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도 Sep 30. 2023

여성 페미니즘 동아리의 탄생

성평등한 사회를 위한 한 교사의 고민과 실천(4)

남성들로만 구성된 동아리 운영이 매 시간 기대되고 즐거운 만큼 여학생들이 혹시 페미니즘 동아리에 관심있지 않을까 신경이 쓰이던 차였다.  


한 여학생이 도전한남 동아리에 들어갈 수 없냐고 물었다. 전부터 여학생들이 페미니즘 동아리에 관심 있다고 이야기 했었다. "도전한남은 꼭 남성만 들어올 수 있는 동아리는 아니지만 당분간은 남성들끼리 운영하기로 했어. 필요하면 여자들끼리 하나 만들고 나중에 합쳐도 되지." 막상 말하니까 결심이 섰다. 여성 페미니즘 동아리를 만들기로.  


그날 밤, 여자 기숙사에 모집 공지를 했다. 금방 5명 정도 모였다. 다양한 구성원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페미니즘이 궁금할 것 같고, 같이 알아가면 좋겠다 싶은 친구들을 섭외했다. 그렇게 약 12명이 모여 첫 모임을 시작했다. 


각자가 이 동아리에 왜 들어왔는지 어떤 것을 기대하는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남자 동아리처럼 별도의 감정카드를 준비하진 않았다. 여학생들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잘 표현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동시에 학교에 페미니즘의 실천과 활동이 더 필요해서 결의를 가지고 오는 친구들이 많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대부분 학생들이 페미니즘을 잘 몰라서, 알고 싶어서, 사람들이 나쁜 거라고 하는데 이것이 무엇인지 나의 언어를 갖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순간 눈물이 찔끔 났다. 나는 이들이 여학생이라는 이유만으로 내 안에 얼마나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는가.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더욱더 능력으로 세상에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며 살아왔다. 애교와 성적어필로 남성의 돈과 재산을 뺏는 꽃뱀이 아니라 내 능력으로 사회의 기회를 획득하고 인정받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다. 그렇기 때문에 열심히 공부해야 하고 사회의 공정하다는 기준에 맞춰 모범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애썼다. 자유롭고 유연하게 나를 놓아주며 도전하고 성장하기 보다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 배제되지 않기 위해 남성만큼 능력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계속 나를 증명해왔다. 학생들에게 어떤 모습을 기대하면서 나 자신이 투영되었던 것 같다. 여성이기 때문에, 소수자이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만 한다고 스스로에게 주었던 부담과 내제화시킨 경쟁의식이 같은 성별인 여학생들을 만나는 태도에 영향을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학생들은 수업에서 집중력도 높고 학업성적도 높고 학교에서 기대되는 바른 행동들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있어서도 진취적이고 당사자성이 높을 것이라고, 그래서 학교 문화를 변혁시키는 주체로 인식했다. 대부분이 잘 모르고 고민되고 그래서 배우고 나누면서 불확실하고 뿌옇게 느껴지는 페미니즘을 알고 싶어서 동아리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남학생 페미니즘 동아리는 그들의 현재 감정과 생각들을 세심히 살피며 배우고 성장하는 영역을 열어주려는 방향으로 운영을 고민했다. 하지만 여학생들에겐 나와 같이 전투할 동료로 인식하며 기대를 했던 것이 동아리 운영의 방향성을 결정하는데도 영향을 미쳤던 것 같다. 남자 청소년들과는 스스로의 감정을 관찰하고 인식할 수 있는 감각을 일깨워주며 그들이 공감하는 주제를 스스로 이야기하길 기다리고 장려하며 다양한 자극을 줄 수 있는 기획을 많이 고민하고 제안했다면 여자 청소년과는 학교문화의 변화를 위한 활동과 캠페인들을 더 많이 계획했었다. 내심 학교에 동료그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여자 청소년으로 상정했던 것 같다. 청소년도 교사와 동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일방적인 생각이라면 다시 고민해야 한다.  


한 대 쿵 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또 새로운 도전 앞에 서는구나. 남자 청소년 동아리는 난이도 높은 접근이라 생각하고 여러 노력들을 했지만 여자 청소년 동아리는 '알아서 잘 하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별로인지 깨닫게 되었다. 여기서 '알아서 잘 하겠지'란 상호 쌓은 신뢰의 언어가 아니라 배움이 필요한 시기의 청소년을 성별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성인의 지위를 일방적으로 부여하여 필요한 배움의 기회와 가능성을 배제하는 언어이다. 동생도 네가 돌봐야 하고 아빠 밥도 딸이 차려야 하는 집안에서 성인이 해야 할 책임과 역할를 엄마가 딸에게 독려하듯이, 학교 내 여성혐오와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의 부족을 학부모와 교사들이 책임있게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성 교사인 내가 여성 청소년에게 기대하는 내 무의식에 입맛이 썼다. 


내 차례가 되었다. 모인 학생들에게 오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부끄럽게 느끼고 성찰한 부분을 나눴다. 다들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다음 주는 여성혐오에 대한 나의 경험과 나 자신에 대한 여성혐오적인 생각들을 나눠보기로 했다. 급하지 않게, 이 생각들을 잘 숙성시키면서 한 회, 한 회 쌓아가다보면 되겠지 라며 스스로를 다독인다.   

작가의 이전글 페미니즘 동아리의 시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