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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도 Oct 31. 2023

교사의 고민

능력주의와 사회정의 사이에서

정의론으로 유명한 존 롤스의 무지의 베일이란 개념이 있다. 내가 어떤 나라, 어떤 사회, 어떤 제도와 가정에서 태어날지 알 수 없다면 어떤 인종으로 태어날지 어떤 직업을 가진 부모를 가질지 전혀 알 수 없다면 어떤 사회를 만드는 것이 정의로운가 라는 가상의 질문을 통해 정의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고등학교 1학년 통합사회 수업에서 정의를 배울 때 심화해서 가르치는 내용인데 이에 대한 청소년들의 대답이 흥미로웠다. 랜덤으로 태어난다고 할 때 나에게 유리한 사회를 물었을 때 능력주의 사회라고 대답하기도 하고 에덴동산같은 엉뚱한 대답도 나왔다. 사적소유가 없는 사회를 이야기하기도 하고 모든 것이 초기화되어 우리가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그래서 모든 것을 새롭게 구성하고 세워나갈 수 있는 사회를 이야기하기도 했다. 질문에서 점점 멀어지며 본인이 이상하는 사회들을 이야기했다. 내가 예상한 평등한 사회를 대답한 것은 소수였다.      


어떤 구성원들이 주로 참여하느냐에 따라 다르지만 교실에서 만나는 많은 학생들이 능력주의를 내재화하고 있고 노력한만큼 성공할 수 있다고 믿으며 노력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이 공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나에게 유리하다고 믿는 것의 저변에는 나만은 남들과 달리 내가 원하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믿는 자신감도 엿보인다.    

  

나 역시 닿을 수 있을 것 같은 선명한 목표를 느끼고 싶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영역에서 나의 노력과 의지로 변화시킬 수 있는 삶의 영역에만 머무르고 싶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우리 삶은 타인의 영향을 받으며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아주 쉽고 당연한 원리 때문이다. 


존 롤스의 질문처럼 나의 탄생과 출생 이후의 환경은 다분히 운에 의지하기 때문에 내가 기초생활수급자 가정의 한부모 가정에서 살건 의사와 교수 부모 아래 태어났건 평등과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기본권이 보장된 사회를 만드는 것이 모두에게 좋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글을 쓰고 보니 교과서같은 소리를 했다. 교과서같은 소리를 싫어했는데 교과서 같은 소리를 하는 자가 되었다.)


학생들의 저런 말에 나는 긴장한다. 위기감을 느낀다. 이 감정의 정체가 내가 익숙한 가치에 대한 다름을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까,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을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동료가 적다는 것에 대한 슬픔일까 생각한다. 둘 다일 것이고 나는 모든 의견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다루는 교사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한다. 동시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를 전달할 수 밖에 없음을 확인한다. 이것은 한계일까 교사의 책무일까.      


사실 나도 두렵다. 귀찮다. 버겁다. 무력감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내가 경험한 경제적 불평등, 지역간 불평등,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대한 분노가 나를 활동가로 살게 했다. 


어떤 경제적 조건에서 태어났는지, 어떤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젠더에 따른 불평등이 한 사람의 성장을 얼마나 억압하는지 개인의 능력으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른 관점을 가지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일정한 경향성을 보이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며 활동가일 때나 교사일 때나 답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내가 갈 길을 꽉 붙들고 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이 얼마나 더 넓어지고 깊어져야 다양한 사람들의 생각을 수용하고 영향을 줄 수 있을지 이만큼 걸어왔음에도 갈 길이 멀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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