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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채원 Mar 31. 2022

시어머니와의 생각 교환일기(27) '색깔'

스물일곱 번째, 좋아하는 것들 이야기 '색깔'


시어머니 명희의 '색깔 이야기'



색깔(색채)

우선 '색깔'에 사전적 의미를 적어본다.

<물체가 빛을 발할 때 빛의 파장에 따라 거죽에 나타나는 특유의 빛> 이 색깔의 정의다.

또 다른 색깔의 정의.

색깔은 물리학에서 빛 에너지이지만, 경영학에서 색깔은 마케팅이다. 정신 분석학에서 색깔은 감정표현이지만, 예술에서 색깔은 미적 표현이다. 자연색이든 인공색이든 세상은 색깔(색채)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은 마음에 새겨져 있어 언제나 생각나게 하는 sky-blue (하늘색)이다. 학창 시절 그 당시 여자아이들은 국민학교만 마치고 집안일을 돕는 그런 시대였다. 나의 마을에는 여자아이가 8명이었다. 그중에 교육을 그래도 제법 받은 사람은 나 myung hee다. 학창 시절 남녀공학인 학교에서 여학생은 몇 명 되지 않았다. 모두가 생활고에 허덕였다고나 할까 그 당시에는... 학용품도 아껴 쓰고 교통비도 아끼면서 걸어 다녔었다.

그 교통비를 아껴서 모은 금액으로 어버이날에 sky-blue색 한복을 어머니에게 해드린 기억. (1년 이상 모은 금액)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잊지 못할 기억 때문에 하늘색이 가슴에 색인처럼 새겨져 있다. 어머니가 농사 지으시면서 주신 버스비, 용돈, 책 값. 새벽부터 농사일을 하시는 어머니셨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학교를 안 보냈으면 조금은 편하셨을 텐데...

 그 하늘색이야말로 나의 삶을 있게 한 색깔이다.

"명희가 서울 학교 시험 봤을 때 붙을까 봐서 조마조마했었단다. 떨어져서 엄마는 속으로 좋았단다. 서울로 학교를 갔으면 더 많은 돈이 들었을 텐데 시골학교라서 그래도 조금 든 거란다." 하신 어머니를 이해해버린 나이가 되어서 이 글을 쓰고 있다.

어머니는 한참 세월이 흐른 후에 그 하늘색 한복 치마로 바깥채 사랑방 창문에 커튼으로 재활용하셨다. 고마우신 우리 어머니 "문달림"여사.

"고맙습니다"...


나는 색채 화가를 좋아한다.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앙리 마티스. 그중에서 색채 마술사인 샤갈 Marc Chagall을 좋아한다. 샤갈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행복해지고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들. 긴 세월 시댁살이의 애환들을 색채화가인 샤갈을 보면서(?) 위로받았다.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전시하는 색채화가 Henri Matisse 전도 큰 딸과 함께 색채를 즐기면서 관람했다. 밝은 색채(색깔)가 주는 따뜻함으로 인하여 나의 행복지수가 상한가를 쳤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 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아직 그려지지 않은 희망을 품고

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처럼 이젤에 못 박힌다.

끝난 걸까? 내 그림은 완성된 걸까?

모든 것이 빛나고, 흐르고, 넘친다.

저기에 검은색 여기에 붉은색, 파란색을 뿌리고

나는 평온하다.


-내가 좋아하는 "그림"이라는 샤갈의 詩


나는 노후의 빨간색을 좋아한다.

나의 침구도 빨간색으로 얼마 전 장만했다. 빨간색은 감각과 열정을 자극하는 색이라 하지 않던가. 돌아갈 수 없는 나의 인생이지만 마음만은 열정으로 엣지 있는 감각으로 살고 싶어서... ^^


2022 3月 30 수


시어머니 명희의 글 원본



며느리 채원의 '색깔 이야기'



친구들과 첫 소통 메신저 '버디버디' 시절. 나의 메일과 아이디 닉네임은 '보랏빛노을'이었다. 실제로 보랏빛 노을을 보고 감명받아 지은 것도 아닌데 왜 그런 닉네임을 오래도록 사용했는지 신기하다. 나중에 진짜 감탄스러운 보랏빛 노을을 보면서 '아 어릴 때 TV에서라도 한 번쯤은 보지 않았을까?' 하는 혼자만의 생각을 해봤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보라색'을 좋아했고 '노을'을 좋아했다. 보라색은 중성적인 느낌이 강하고,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보라색 물건들을 흔하게 접할 수 없어서인지 무언가 특별해 보였다. 해가 뜨고 질 때, 물을 많이 탄 붉은색 물감이 하늘에 스며드는 게 너무 좋았다. 해가 뜨는 것보다는 해가 지는 하늘을 평소에 더 많이 볼 수 있어서인지 노을에 더 마음이 간다. 그래서 '보랏빛 노을'이 탄생했었나 보다.


지금도 보라색을 좋아한다. 화려한 듯 화려하지 않은 차분함이랄까. 누가 좋아하는 색깔이 뭐야?라고 물어보면 당연히 '보라색!'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막상 내가 쓰고 보는 것들에 점점 보라색이 사려졌다. 코시국을 보내면서 자연스러운 색깔에 눈이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자연색'에 눈이 간다.


코로나19가 터지고 두 달 있다 태어난 아이를 코시국에서 키우면서 무언가 잃어버렸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다. 이전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일상이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에 '달라진 일상'이라는 비교 자체가 어렵지만, 자연스러웠을 아이와의 외출, 파란 하늘을 보는 일, 초록색 나뭇잎을 만지고,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바람을 느끼는 일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게 참 어려웠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캠핑을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적은 곳을 찾아다니느라 힘들지만, 어디를 가든 자연스럽게 적응하고 애착 인형을 들고 돌과 나뭇잎만으로도 잘 노는 아이를 보면서 참 다행이다 싶었다.


매일 일 수는 없겠지만 알록달록 화려한 색깔의 아이의 책과 장난감들에서 벗어나 '나뭇잎=초록색'이 아니라 나무마다 다른 초록색을 알려주고, 여름과는 다른 가을의 나뭇잎을 손에 쥐어주고 싶다. 사람은 사람이라는 존재만으로도 특별한 것처럼, 세상에 같은 것은 없고 모든 것이 이유 있는 특별함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게 부모로서 나와 남편이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포옹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조금 더 자라면 취향이 뚜렷해지고, 의견은 더 강해지겠지만 함께 자연색을 찾는 일은 늘 좋아했으면 좋겠다.


"저 노을은 엄마가 진짜 좋아하는 '보랏빛 노을'이다. 우리 아가는 어떤 하늘의 색이 제일 좋아~?"


일출보는 아이 (일몰을 함께 본 사진이 없어서 대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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