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독일 친구와 함께 지내기
3월 1일 드디어 함부르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아헨으로 넘어왔다.
독일은 한국에 비해서 학생이 지낼 수 있는 거주지의 스펙트럼이 조금 다양해서,
방을 얻기 전부터 꽤나 고민을 많이 했었다. 한국은 보통 기숙사 아니면 원룸 정도에서 지내는 게
일반적인데 반해서 독일 학생들은 WG(주거 공동체)라는 타입의 주거지를 선호하는 편이다.
투룸이나 쓰리룸처럼 큰 집 하나를 임대받아서 두세 명의 학생들끼리 나눠 쓰는 주거 타입이다.
사실 편하게 지내려면 Einzelzimmer 그러니까 원룸으로 들어가는 게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서 가장 좋지만,
독일 친구들과 함께 살다 보면 그래도 독일어가 좀 늘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굳이 꾸역꾸역 독일인 룸메이트가 있는 방을 알아봤고, 운 좋게 학교에서도 꽤 가까운 곳에 방을 얻을 수 있었다.
뒤셀도르프 근교 시골 마을에서 온 친구 두 명이 함께 살고 있는 집이었는데, 친구 한 명이 아헨에서 뒤셀도르프로 대학을 옮겨가는 바람에 마침 방이 하나 비었다고 했다.
2월 중순에 계약을 하러 잠깐 아헨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같이 살 친구와 제대로 대화를 나눠보지 못했었다.
출발하기 전에 이것저것 물어봐야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만나고 나니 긴장해서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어버버 하면서 계약서에 서명만 하고 다시 함부르크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에게 방 열쇠를 주고 Herr. Göbbels가 뒤셀도르프로 돌아가고 나서 정말 숨 막히는 어색함이 돌았다.
쭈뼛쭈뼛 화장실이랑 주방을 구경하고 있는데 룸메이트인 Jannik이 저녁을 같이 먹자고 제안을 했다.
뭐 싫어도 같이 얘기라도 해야 어색함이 풀릴 것 같아서 그렇게 하자고 했다.
테이블에 앉아서 요리하는 걸 지켜봤는데 계속 어디서 풀만 가져다 볶고 있길래 혹시... 하고 물어봤더니
비건이었다. 우유와 계란도 먹지 않는 비건이었다.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느꼈지만 이미 늦었다.
게다가 살짝 결벽이 있어 항상 모든 것을 같은 간격, 같은 위치에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청소를 즐겨하는 친구였다.
저녁을 먹는 내내 본인도 어색한 게 싫었는지 이것저것 많은 것들을 물어봤다.
왜 독일어를 공부하는지, 한국에서 유행하는 노래는 뭔지 등등 다른 친구들이 독일어로 물어보는 것보다
훨씬 빠르고 약간 독일형 급식체 같은 것들도 종종 섞어 써서 한 10분 얘기를 하고 나면 머리가 아파왔다.
그러다 한번 한국 음식을 해줄 수 있냐고 부탁하길래 그렇게 해주겠다고 했다.
다음날 뭘 해줄까 고민하다가 간단하게 밥과 콩나물 국(이라 쓰고 숙주나물로 끓였다.) 그리고 두부조림과 파전을 해줬다. 사실 콩나물국은 멸치육수도 못 내고 다시다나 미원이 없어서 내가 먹어도 맛이 없었는데 역시나 조금 밍밍한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생각 외로 파전이랑 두부조림을 정말 맛있게 먹었다.
나중에 와서 따로 레시피까지 알아간 걸 보면 꽤나 맘에 들었나 보다.
요리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고기 없이도 얼추 굶어 죽지는 않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다음 주에는 꼭 소시지를 사 먹어야겠다.
룸메 몰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