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익명의물고기 Feb 26. 2024

진실로 타인을 보고싶으면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문장을 심은 사람] 2024.02.26.(월)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아무리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상대도, 아무리 사랑하는 상대라도 타인의 마음을 그대로 보는 건 무리죠.
자신이 괴로워질 뿐입니다. 그래도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 여하에 따라 제대로 엿볼 수는 있을 겁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마음과 능숙하게 솔직하게 타협해 가는 것이 아닐까요.
진실로 타인을 보고싶으면 자기 자신을 깊이, 똑바로 지켜볼 수밖에 없지요.
난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 카>는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의 여러 단편의 모티브를 재구성해 각색한 영화다. 기묘하고 독특해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어린 딸을 잃고 둘이 사는 부부, 오토와 가후쿠가 있다. 아내 오토는 드라마 작가이고 남편 가후쿠는 연극 연출가 겸 배우이다. 오토는 가후쿠와 관계를 할 때마다 무의식 중에 '칠성장어 소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가후쿠가 다음날 아침에 이 이야기를 오토에게 다시 말해주곤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오토가 집에서 외도하는 장면을 목격한 가후쿠는 그 장면을 못본 척 하고 나와버린다.


 어느날 아침, 오토는 가후쿠에게 저녁에 일찍 들어와서 이야기를 좀 하자고 하는데, 가후쿠는 아마도 오토가 털어놓을 외도의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괴로워 바깥을 배회하다가 집에 늦게 들어가고, 사망해 있는 오토를 발견한다. 그래서 가후쿠는 결국 '칠성장어 소녀'이야기의 결말을 듣지 못하고 오토와 영원히 헤어진다. 오늘의 대사는 오토가 죽고 한참 후에, '칠성장어 소녀'이야기의 결말을 알고 있는 내연남 다카츠키가 가후쿠에게 그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나서 하는 말이다.


 홀연히 의문의 상실 속에 남겨진 한쪽 배우자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마음이 맴돌게 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오토는 급성 뇌출혈로, <환상의 빛>의 이쿠오는 의문의 자살로, <추락의 해부>의 사뮈엘은 자살인지 사고인지 타살인지 끝내 (관객은) 알 수 없는 추락으로 사망한다. 죽은 자가 하려고 마음먹었지만 하지 못한 이야기와 하고는 싶었지만 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야기는 살아남은 자에게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는다.


 남의 마음뿐 아니라 내 마음을 읽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내 마음도 결국 완전히 알 수는 없더라도 내가 어떤 결과를 안고 살아갈 것인지는 스스로 결단할 수 있다. <추락의 해부>에서 자신의 안내견과 함께 사건 현장에 유일하게 있었던 사람인 열두 살 다니엘은 아빠의 죽음을 겪은 데다 엄마가 아빠를 죽였다는 살인혐의로 기소된 법정에서 어떤 증언이든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상처는 이미 받았으니, 그래서 진실이 무엇인지에 대한 자기 믿음을 완성하고자 소년은 기꺼이 더 상처받기를 감수한다.


 다니엘에게 그 사건이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로 남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가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깊이, 똑바로 지켜보고 자신의 힘으로 진실로 빚어낸 그 사건을, 혼란스러운 정황과 여러 선택 속에서 스스로 감당할 수 있다고 판단한 그 믿음을 후회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한없이 응원하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들은 숨결에 지나지 않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