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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주 Dec 03. 2023

해와 달을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호주 아웃백

직업이라고 할만한 ‘일’을 최근 11월부터 시작했다. 호주의 아웃백 Arlparra에서 말이다.


생일


33세의 생일을 여기서 맞이하게 되었다. 11월이 생일인지라 항상 나의 생일은 한 해를 되돌아보는 쳇바퀴 돌듯 되돌아온다. 이 시기가 되면 우울한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비슷한 시기에 생일을 맞이하는 한 친구에게 메시지로 나의 감정을 토로했다. 때로는 뜬금없이 생각이 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사람한테 나의 깊고 깊은 감정을 이야기해도 편견없이 본인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것 같은 사람들. 나의 생일날, 그날 감정은 오묘했다.


새로운 곳,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지내는 생일. 그날 같이 일하는 동료들의 집에 초대받아 저녁을 먹었다. 이곳에 오고 처음으로 이웃집에 초대받았다. 따로 무언가를 하지 않고 넘기려던 나의 생일은 딱히 비밀을 간직할 수 없는 이 작은 가게에서 재미난 이벤트가 되었다. 새로운 환경과 주변에 둘러싸이면 나는 가끔 스트레스를 받고는 한다. 새로운 무리에서 나를 어떻게 서든 증명하고 잘 해내려고 하는 나의 욕심과 자아가 애를 쓴다. 겁이 많아, 단어 하나하나에 혹시라도 누가 나를 평가할까 조심스러워 그대로 보이지 않는 시간도 있었다. 사람들의 축하를 받은 생일날에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는 내가 걱정되어 비슷한 시점 생일인 친구에게 이를 이야기해 봤다. 전갈자리들의 토크랄까. 최근에 그녀는 1년 단위로 생일을 챙기지 않는다 했다. 이런 이야기를 다른 누군가와 한 적이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생일을 매년 축하하는 것이 당연히 의미 있지만, 사실 인생을 1년 단위, 달력 기준으로 사는 것이 과연 우리의 시간을 몸소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과 어색한 순간과 시간.


고등학교 시절부터 줄곧 편지를 주고받던 친한 친구 세은이가 이번 여름 내가 한국을 뜨기 전 어김없이 편지를 주고 갔다. 메신저에서 느낄 수 없는 편지는 은은하고 강하다. 은은한 촛불처럼 그립거나 지칠만 하면 세은이의 편지들을 부적처럼 다시 읽어보곤 했다.


이번 여름 그녀가 가장 기뻤던 건


예전에 너는 어색한 순간과 그 공기를 잘 못 참았는데, 지금은 사람들이랑 대화할 때 여유가 생겼달까?


라고 편지에 적혀있었다. 지금도 나는 어색한 순간을 잘 참지 못하는데 그 어색한 순간의 나를 넘기기 위해 그간 참 많은 노력을 했나 보다. 여전히 사람들 사이에서 무슨 말을 던져야 될지 모를 때가 있다. 그러다 그 ‘여유로워진’ 나의 새로운 버전은 아마 그 순간과 단어의 무게감을 굳이 진지하게 담아둘 필요가 없음을 조금은 알아차렸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일


대략 1년 정도 일이라는 것을 하지 않아서일까. 한 달 동안 시작한 ‘일’이 너무 재미있다.

‘마지막 일’이라고는 아마 이번 해 4월 초 호주 타즈매니아 섬에 있는 와인 과수원에서 일주일 동안 포도를 딴 것이 다였다. 그래서 일이라 하기도 힘들다.


전직 셰프였던 파트너 장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주일 일한 것을 마지막으로 이번 해 대부분을 여행 다녔다. 주변에서는 도대체 어떻게 그렇게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모아둔 돈을 잃는 것이 두렵지 않냐고 한 친구가 물었다. 이렇게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도 나의 삶은 어떻게든 되겠지라던가, 이래도 좋지 않을까였다고 생각을 정리한 적이 있다. 이제는 사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세상에 어떤 것을 가져다 줄지 모르겠어서, 그 방향을 못 정하겠어서 그저 하염었이 떠돌아다녔나 싶다.


나를 누군가라고, 소속과 직업에서 설명하기 모호하게 지낸 지 어느덧 4년이 넘었다. 딱히 직업적으로 전문성은 없는 삶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과거에 나는 내가 하는 일에서 나를 찾으려고 하던 때도 있었다. 예를 들어,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가 좋아서 영화 제작사에서 인턴을 지원하고, 영화사에 취직하며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지난 날들. 그날들과 그날에 있던 나를 나는 분명히 사랑한다. 그 열정과 한 사회에 속하는 소속감이 좋았다.


무슨 일 하세요?

영화사에서 일해요.

그러면 영화를 참 많이 좋아하겠네요. 멋있다. 예술 분야에서 일하는 것 힘들지 않아요?


소개팅을 하거나 새로운 사람을 만나 나를 소개할 때, 영화사에서 일한다는 것만으로 개성 있고, 소수의 분야에서 일하는 예술적인 사람처럼 보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던 적이 있다. 마치 내가 무엇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었다. 지금도 영화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나의 동기들, 후배, 선배들을 보면 멋있다. 그들의 지속적인 열정과 시간이 멋있다. 나는 그 노력과 시간이 두려워, 싫은 이유를 만들어 상사가 그다지 유능하지 않음을 탓하며 나왔다. 사람들이 좋아서 또는 그만큼 사람들에게 많이 상처받는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나이로 나를 설명하던 때가 있었다. 20대 초반이어서 쉬웠던 때가 기억난다. 20대 초반이어서 나의 어리숙하고 철없는 행동들이 설명되고, 그 나이어서 모든 것이 마치 새끼 강아지처럼 귀엽고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다. 그 시절 가지고 있던 열정은 지금의 열정과는 확연히 다르듯이 말이다. 모든지 어린것은 관심을 받기 쉽다. 어린 생명이 가지고 있는 힘 말이다.

지금 내가 있는 호주의 중심에서는 생명이 그리 많지 않다. 나무도 듬성듬성 있고, 그 나무마저도 이 건조한 공기에 힘겨워 싸우려다 보니, 불에 쉽게 타기도 한다. 하지만 그 불로 인해 때로는 토지가 다시 윤택해지기도 하니 땅과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낮에는 건조한 더위에 몇 없는 생명들은 체력을 아끼려고, 그늘을 찾아 숨는다. 새끼 강아지는 애정을 듬뿍 받는다. 마치 이곳 마을의 어린아이들처럼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니, 당시에 나라고 믿었던 어린 ‘나’는 그저 세상으로부터 관대한 이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이 나를 마치 기다려주듯 말이다. 항상 시간이 나를 기다려주는 느낌이 들었다.



알파라의 요리사


지금 하는 일은 이 근방에 사는 사람들, 대략 700명 사람들이 굶주리지 않게, 음식을 만드는 일이다. 말이 이 근방이지 위성 지도에서 보면 황량한 땅과 군데군데 보이는 작은 점의 집들. 그리고 띄엄띄엄 멀리 떨어져 있는 이웃 동네에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호주 원주민과 같은 외모를 가진 사람들, 이곳 땅의 주민들이 주로 80프로 정도, 나머지는 나와 장처럼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아무것도 없어 보이지만, 경찰서도 있고, 학교, 교회, 작은 규모의 병원 클리닉도 있다. 슈퍼마켓에 달려 있는 테이크어웨이 가게답게 패스트푸드 가게처럼 감자튀김과 치킨만 열심히 튀겨내도 된다. 단둘이 운영하는 주방에서 우리는 나름대로 재밌게 지내고자, 이곳 사람들에게 다양한 요리를 선보이고 있다. 이 세계의 패스트푸드에 전염되어 이곳 주민들도 튀긴 음식들을 선호한다. 지금도 가끔 사냥을 하러 떠난다고는 하지만 호주 정부에서 공짜 돈을 받는 호주 원주민들은 패스트푸드점에서 판매하는 스타일의 감자튀김과 치킨에 열광하고, 때로는 집착도 보인다. 이 가게는 이곳 주민들의 사업체이다. 따지고 보면 나에게 사장님들은 이곳 모두 주민인 것과도 같다. 대부분의 호주 원주민 커뮤니티 시설 사업체는 정부에서 사들여, 관리하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굉장히 독립적인 곳이다. 사장님이자 나의 손님인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위해 치킨, 감자튀김 눈치싸움을 하루 하루 하고 있다.


알파라,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평지, 물과 초록 잎은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아웃백이라는 말에 걸맞게 건조하고 더운 척박한 기후를 지니고 있는 곳이다. 가장 가까운 도시라고는 앨리스 스프링스 사륜자동차를 탔을 경우 3시간 반 만에 도착할 수 있는 곳이고, 잘 가꾸어진 도로는 없어 비가 많이 올 경우에는 들어오고 나가기 힘든 곳이다.


처음으로 주변 환경을 탓하지 않는 나 자신을 이곳에서 발견했다. 가끔은 피곤하거나, 나 자신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내 주변, 나의 시간과 사람들을 원망하고는 했다. 이상하게 예전의 나는 탓할 법한 이 척박한 주변 환경, 채소를 조금이라도 선보이는 요리를 선보이면 내 음식에 불평하고, 웃어대는 이곳 주민들과 함께 하는 생활이 하나도 불만스럽지 않고 오히려 재미가 나기 시작했다.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달 월식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것도 없는 아웃백이라, 평평한 대지에서 나는 넓고, 깊은 하늘을 볼 수 있다. 일을 마친 후, 저녁 해가 집에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동시에 내 등 뒤로는 달이 높게 떠올라 있었다. 아무것도 없어도 하늘이 한가득이다.



내가 일하는 곳, 알파라 커뮤니티 스토어


사진 출처 : 장 바타니 Jean Batany

인스타그램 @jeanbat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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