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브런치 북을 발행하고 난 후, 지인들에게 많은 응원과 관심을 되돌려 받았다. 그 관심 중에서 몇몇은 마치 본인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이 공감하며 읽었다고 했다. 나의 이야기, 힘들었던 나의 감정들을 아낌없이, 후회 없이 써보자는 의도가 공감을 가져오다니 예상치 못했다. 나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가 되고, 나의 아픔 또한 다른 사람들도 아파했을 거라 감사함에 더욱 솔직하게 나를 되돌아보고, 관찰하기로 다짐했다.
“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나의 기억들은 2살 아래 남동생이 나 대신 기억해 줬어. 어렸을 때부터 그래도 초등학교 고학년 12살 즈음부터는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데, 중학교 때부터 나는 동생한테 혹시 그 12살 이전의 기억을 항상 묻고는 했어. 그래서 나는 혹시나 기억력에 문제가 있나 싶기도 했고, 아니면 무슨 안 좋은 일을 당해 기억을 잃어버렸나 싶어. 기회가 된다면 기억을 되찾는 최면술도 도움이 되려나. “
장에게 한번 말했다. 문제가 있듯이 말이다. 대단하게도 그는 어린 시절, 5살 때의 기억도 가지고 있다. 마치 사진처럼 말이다.
나 자신을 되돌아보는 소중한 시간. 잠시 침대에 누워 어렸을 때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시간, 멍하게 나의 세계에 돌아가는 시간들을 가지면서 가끔 불현듯 머리에 기억의 파편들이 떠오르고는 한다. 그런데 그 기억의 파편이 꽤나 생생하고 명확하다. 시간이라는 것이 지나 없어졌던 기억이라 믿었는데,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되돌아오듯, 기억의 파편이 지금의 나를 완성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데자뷔는 아닌데, 비슷하게 과거의 기억이 현재의 순간과 일치하는 느낌이다. 이를 어디서는 나의 어린 자아와 다시 연결되는 거라고도 한다. 우리의 과거, 어렸을 적의 나를 기억해 보는 것은 중요한 세러피 요법으로도 쓰인다고 알고 있다. 되돌아온 나의 기억, 그중에서 대부분은 나의 꿈과도 관련이 있는 이야기다.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아마 공감이 갈 듯하다. 어렸을 적 꿈이 글 쓰는 작가였는데, 어쩌다 나의 시간은 빠르게 흐르고, 글쓰기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다. 그래도 늦지 않았다. 그 꿈을 다시 놓지 않기 위해 글을 쓰는 습관부터 들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꿈은 기억 속에 있다.
어렸을 때, 책을 읽기를 좋아해서였는지, 아니면 글을 쓰는 게 좋아서였는지 무엇이 먼저였는지는 모른다. 하루는 엄마와 엄마 지인분들과 함께 카페에 있었다. 그리고 엄마는 나에게 저기 계시는 분이 유명한 소설 작가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사실 성함이 기억이 안 난다. 엄마한테 여쭈어보면 기억하실지도 모른다. 확실한 기억의 시작은 당당하게 그 작가를 향해 걸어가는 나의 모습이다. 그리고 그에게 가서 아마 사인을 받으려고 한 것 같다.
“나는 작가님처럼 유명한 작가가 될 거예요. “라고 수줍게 다짐하듯이 말했다.
그리고 그는 나의 손등에 마치 여왕을 대하듯, 존경의 입맞춤을 했다. 축복을 받은듯한 느낌이었다.
다음의 기억은 중학교 때였다.
중학교 2학년 무렵, 갑자기 병을 앓아 강한 스테로이드성 약을 먹어야 했고, 이는 당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나의 얼굴을 가져다주었다. 스테로이드는 나의 얼굴을 마치 성형을 잔뜩 한 사람의 얼굴처럼 붓게 만들었고, 외모에 한창 관심이 많고, 이성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우울한 적이 많았다. 아마 처음으로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는 항상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면 행복하면서 말이다.
가끔 우리 국어 교과서에는 즉흥적으로 글짓기의 과제가 있었던 듯하다. 아마 한 문장 또는 두 문장의 이야기가 제시되어 있고, 이에 이어 붙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과제였고, 수업시간에 진행하는 과제였다. 잠시 시간을 들여 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쳤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글을 쓰는 순간이라 신이 났다. 내가 손을 들었는지, 선생님이 지명을 했는지 짧은 이야기의 글을 친구들 앞에서 읽어보았다. 얼굴을 보이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는데도, 이야기를 썼던 그 순간이 좋아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고 기억이 난다. 내 기억 속에 친구들이 예상치 못한 나의 재밌는 이야기에 환호해 주었던 것이. 아마 물고기와 관련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두 가지가 합쳐졌다. 글을 쓰는 게 좋았고, 아니면 작가의 모습이 멋져 보여 작가가 되고도 싶었다. 다른 하나는 나의 글로 인해 사람들이 행복해 보였다. 이 기억들이 나를 다시금 글을 쓰게 도와주었다.
좋아하는 것을 시작하려면 나에게 많은 노력과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좋아하는 것을 시작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지속적으로 하는 것은 더더욱 말이다. 그 동기부여 중에서 가장 큰 힘은 나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알았을 때이다. 지금도 하고 싶은 것들은 많은데,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것들은 누군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볼 때이다.
나의 꿈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나타났다. 내가 지니고 싶은 것, 내가 되고 싶은 것은 내 주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들어 있다.
요리를 처음 시작한 기억이 생각이 난다. 중학교 시절, 우리 집은 부모님 두 분 다 일을 하셔서 학교를 끝나고 나면, 나는 마치 아지트처럼 나의 집을 공유했다. 아지트로 제격이었던 것이 신호등 하나만 건너면 집이었으니 말이다. 가끔 집에서 요리 채널을 보았다. 티브이에 크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상하게 그 요리 채널이 그렇게도 재미가 있었다.
다른 하나는 어머니가 마치 결혼 신부수업의 일환으로 배운 요리 수업에서 쓰였던 오래된 요리 책들. 꽤나 카테고리별로, 문화권 스타일별로 요리가 있었던 듯하다. 그 오래된 책을 보며 어떤 음식이 나올지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고 아지트인 우리 집에 친구들을 초대해 첫 번째 요리인 라면 요리를 선보였다. 제법 괜찮았던 것 같다. 내 기준에 물을 끓인다는 것 자체가 참 힘겨운 고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엄마의 음식솜씨는 항상 좋았다. 그래서 그 맛있는 맛을 기억해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다. 나는 이것저것 요리를 시도해 보았고, 당시 뜨고 있던 요리고등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지원해볼까 싶었지만 어쩌다 보니 계획 속에서 잊혀졌다.
‘나를 표현하기’를 마치 인생의 과제처럼 달고 사는 나에게 요리는 나를 표현함과 동시에 남을 행복하게 해 주어 좋았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지금 사랑하는 사람은 프랑스 셰프이다. 지금은 나와 호주 아웃백에서 열심히 감자튀김을 튀기지만, 그는 내 최고의 스승 셰프이다.
이 작은 기억의 파편들이 나의 지금 이 순간을 납득시켜 준다. 뭔가 내가 이 순간에 알맞은 사람과 알맞은 곳에 있다는 느낌이 들면 맞다.
하고 싶은 나의 성취만을 생각하고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면, 내가 잘못된 길을 걷는 느낌이 들을 때가 있다. 뭔가 지금 여기 내가 선택한 순간들이 자꾸 나에게 불만족을 가져다준다면, 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보자. 물속에 가만히 긴장을 늦추면 내 몸이 알아서 뜨듯 과거의 나가 나를 맞이한다. 어린 시절 우리에게 꿈이 참 많았다.
어렸을 적 이야기라 조금 창피하지만, 우리 한 번 예전의 기억 그중에서 내가 남들에게 말하고 다녔던 나의 꿈에 대한 기억으로 돌아가보자. 침대나 편한 곳에 자리를 잡아 누워도 좋고, 가만히 앉아 나의 기억, 목소리에 기울여 보자. 긴장을 풀고, 가만히 나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기억의 파편들, 내가 말했던 말들이 조금씩 기억의 물 표면에 떠오른다. 기억이 약간은 뒤죽박죽이라 때로는 정확한 시간은 모른다. 그래도 좋다.
그리고 기억이 되돌아오면, 약간은 지금 이 순간이 이해가 되고, 가끔 가슴이 따뜻해지거나, 또는 알 수 없는 슬픔이 차오를 때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