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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Apr 03. 2019

삶은 문장의 나열이다. 만개의 서사다.

북리뷰 '검은 꽃' -김영하


  

1. 일포드호에 오른 제각각의 이유는 대한제국에 대한 회의로 귀결된다. 이곳에서 삶을 지속하기보다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결론으로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희망에 표를 던진다. 승선할 때는 모두가 아브락사스였다. 적어도.


2.  회의는 인간이 가진 축복이면서도 언제나 비극의 시발점이 된다. 그러나 삶의 비극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벌어지는 소동은 촌극밖에 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 삶을 이어가는 인간의 일생을 촌극 말고 달리 무엇이라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3. 역사란 멀리 떨어진 자의 시선이다. 시선은 반드시 거리를 필요로 한다. 나는 그곳과 멀리 떨어진 시간에서 그들을 보았으나 실존이라는 삶의 테제는 이곳으로 그들을 데려오거나 그곳으로 나를 호출한다. 인류는 언제나 같은 실수와 같은 후회와 같은 체념을 반복하며 나선의 시간을 걷고 있다.


4. 르포르타주를 빌어 서술된 소설은, 감상을 걷어낸 사건의 나열로 독자를 사건에서  발짝 떨어져 관망하게 함으로써 참혹했던 과거를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어 연민을 부른다. 살아있기에 벌어지는 어쩔  없음을 어찌해 보겠다는 인물들의 버둥거림은, 거시적으로는 인류애에 기반한 애잔함을 유발하지만(낯설게 하기)  자신의 모습을 대입하게 되는 순간(동일시) 동족 혐오로 방향을 튼다. 생존으로 내몰린 이들의 선택에서 나의 선택을 되짚는다. 자기 연민은 나르시시즘의 일종이라는 고집 탓에 종종 부끄러움이 따라온다.


5. 무슨 소용으로 낯선 땅에 구태여 나라를 세우려고 애를 쓰는가. ‘국가’보다는 정치색이 한풀 빠져있는 ‘나라’라는 단어의 반복에서 ‘터전’을 향한 열망을 본다. 실존을 위한 터전. 삶은 죽음과 이음동의어 이므로 그곳은 죽음을 위한 땅, 죽음을 기억할 수 있는 터전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우리 모두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어. 왜놈이나 되놈으로 죽고 싶은 사람 있어?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이정이 단호하게 말했다. 그럼 차라리 무국적은 어때? 돌석이 말했다. 이정은 고개를 저었다. 죽은 자는 무국적을 선택할 수 없어. 우리는 모두 어떤 국가의 국민으로 죽는 거야. 그러니 우리만의 나라가 필요해. 우리가 만든 나라의 국민으로 죽을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일본인이나 중국인으로 죽지 않을 수는 있어. P.350


6. 영화 ‘사일런스’에서 배교를 강요받던 로드리게스는 결국 일본인이 되어 일본의 신을 믿으며 일본에서 생을 마감한다. 시신이 잠든 관을 줌인하자 그의 손에는 십자가가 들려있었다.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은 [38명이 만든 신대한]에서 종이조각이 된 대한제국의 여권을 가슴에 품고, 단발의 총에 마야의 유적지 속으로 사라진 [신부였다가 무당이 된 남자]는 과연 한국인으로 죽었을 것이다. 그의 신은 하느님도 아니고 백마장군도 아닌 ‘나라’였다.


7. 자살에 몇 번이나 실패하던 왕족의 부인은 농장에서도 논어만 읽어대는 남편을 버리고 마야인의 부인이 되는 인생을 택하고, 부인의 아들은 10페소를 받고 통역관에게 누나를 팔아넘긴다. 천운으로 농장주의 눈에 띈 남자는 말 위에 올라 동포들에게 채찍을 휘두르는 악질 감독이 되어 훗날, 농민들로 이루어진 멕시코 혁명군에 의해 농장주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생을 마감한다. 천주를 섬기는 신부의 신분에서 도망쳐 일포드호에 오른 남자는 농장일이 한창이던 어느 날 신병에 걸려 박수무당에게 내림굿을 받고, 알 수 없는 존재의 해악을 느낄 수 있었던 박수무당은 정작 해악을 끼치는 인간을 눈치채지 못해 일생을 좌우하게 되는 화를 입는다. 미국으로 도망치는 여정에서 멕시코 혁명에 참전했던 남자는, 일포드호에 오르기 직전 그에게 ‘이정’이라는 이름을 준 남자의 종용으로 과테말라의 혁명에도 발을 들였다가 단 며칠의 전투 만에 정부군에게 사살당한다. 그에게 이름을 내렸던 자가 생존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으로 일찍이 정글에 온 동료들을 버리고 떠난 후였다. 1917년. 1033명의 대한제국 국민이 멕시코 살리나 크루스에 도착한 지 꼬박 12년 만이었으며 낯선 마야인의 땅에 새 나라를 세운 지 반년만이었다.


8. 그래서 어쨌다는 것일까. 결과론적인 팩트의 나열은 비루하다. 진실은 언제나 팩트 너머에 똬리를 틀고 있다. 모순이 난무하는 한 사람의 생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는 일은 폭력과 다름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이들의 선택은 언제나 살아남기 위함이었다.


9. 만개의 색이 춤추는 소설이다. 차라투스트라의 춤이다.


10. 사람의 생은 과연 하나의 문장이 아니라 문장의 나열이다. 장르를 불문하는 만개의 서사다.



<좌: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우: 멕시코 노예이민으로 에네켄 농장에서 일한 한인들>




인간의 몸을 빌려 온 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결국 무력하게 죽어버린다는 이야기는 놀라웠다. 그리고 그 자가 모든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죽었다는 것은 더더욱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애써 죽더니 사흘 만에 부활하여 제 몸을 그대로 지닌 채 하늘로 올라가버렸다. 어쩌면 이야기에 가득한 그 모순들에 그는 매혹되었는지도 모른다. 신이며 인간이고 전능하면서 무능하며 끔찍하면서 신비로웠다. 인간을 사랑한다면서 그 사랑하는 인간을 영원한 죄인으로 만들어버렸다. P.91


이정은 가끔 일기에다 이렇게 썼다. 국가가 영원히 사라질 수 있을까? 그렇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혁명이 시작되고부터 이미 멕시코엔 국가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모두가 각자의 화폐를 찍고 다른 돈을 쓰는 자는 죽인다. 살육이 살육을 부른다. 힘을 가진 자들은 모두 멕시코시티로 진격한다. 그것이 곧 이 길고 긴 혁명의 시작과 끝이다. 벌써 수십만이 죽었다. 이것은 국가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아니면 국가가 없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가. 대한제국이 있었지만 우리는 행복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의 멕시코도 마찬가지다. P.295


저랑은 상관없는 이야기입니다. 어차피 저는 이방인이니까요. (멕시코 혁명에 참전한 이정의 대사) P.297


그렇지만 나는 일본인이 되겠다고 한 적이 없습니다. 이정의 말에 요시다가 웃었다. 언제부터 개인이 나라를 선택했지? 미안하지만 국가가 우리를 선택하는 거야. P.298


나는 네가 죽인 자들의 예수다. 최선길은 발버둥을 쳤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소? 그들은 죽일 만하니까 죽였소. 그리고 내가 그들을 죽이기 전부터, 저 일포드 호에서부터 당신은 내 목을 졸랐소. 형체는 말했다. 나의 시간은 너의 시간과 다르다. 죄는 먼저와 나중이 없다. 죄를 모르는 것이 바로 너의 죄다. P.311


정말 영원한 혁명이 가능하다고 생각해? 미겔은 이정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한참을 쳐다보다가 말했다. 이봐, 정치는 모두 꿈이야.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무정부주의든 다 마찬가지야. 서로 총질을 해대기 위해 만들어낸 거란 말씀이지. 미겔은 총을 들어 보였다. 이게 먼저고 말은 나중에 오는 거야. 물론 나는 그걸 믿어. 믿지 않는다 해도 그것 말고는 할 게 없어. 처음으로 사람을 죽였을 때가 열일곱이었어. 그때 나는 사파타의 군대에 있었지. 그리고 지금은 비야의 휘하에 있고. 그런데 내겐 달라진 게 없어. P.316


그의 고요함, 무심함은 역설적으로 전쟁으로부터 빚진 것이었다. 전쟁 덕분에 그는 내면의 모든 욕망과 갈등을 감추고 억누를 수 있었던 것이다. 사격과. 기동, 지휘가 요구하는 엄격한 긴장 덕분에 그는 떠나온 과거로부터 자유로웠다. 그런 그를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전장이었다. P.316


어째서 반드시 한쪽이 다른 한쪽을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잠자코 있던 박광수가 힘없이 말했다. 왜냐고? 우리가 사라질까 봐 그러는 거야. 우리는 소수고 마야인들은 셀 수 없이 많지. 그들과 섞여 종내는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질까 봐 그러는 거야. 그렇지만 우린 어차피 모두 죽어.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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