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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Sep 16. 2022

기억과 죽음과 신

어느 무신론자의 불안에 관하여


  여섯 살 무렵, 나는 잠자리에 누워 자주 울었다. 죽음을, 모든 것이 완벽하게 사라진 소멸을 생각했다. 당시 나는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언젠가 우주가 터져 버릴까 봐 무서웠다. 모든 것이 사라진 세계. 시야를 지구 밖으로 꺼내면 지구가 먼지만큼 작아져 보이지 않게 되었고, 나는 언젠가 터져버릴 우주의 검정 속에서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에 대한 감각조차 없이 모든 것이 먹먹한 무(無)가 되어버린 세계를 상상했다.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한 처음으로 감각하게 된 두려움이었고, 나는 그때 ‘죽음이란 먹먹한 무(無)’라는 막연한 도식을 갖게 되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것을 누구에게도, 엄마에게도 말할 수 없었고 그래서 숨죽여 울었다. 고독이 태어났다.


  여덟 살에 세례를 받았다. 천년도 전의 시간에 살았다는 성녀의 이름이 나에게 붙은 또 다른 이름이 되었다. 그때의 나는 세례는커녕 우리를 늘 내려다보고 있다는 존재에 대한 개념조차 없었다. 그저 실비아라는 나의 새로운 이름이 동네 슈퍼에서 팔던 레몬맛 가루사탕과 같다는 사실이 조금 싫었고, 새로운 이름을 내가 고를 수 없다는 것에 실망했다. 하지만 커다란 꽃의 자수가 어지럽게 엉켜있는 하얗고 투명한 레이스 미사포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세례가 그 무렵의 두려움을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할아버지가 자주 데려가던 일요일 미사는 좋았다. 모두가 낮은 목소리로 같은 문장을 말하면 성당 안에서 은은하게 울리는 옅은 메아리가 좋았고 그 조용한 파동의 일부가 되려면 하얀 레이스 미사포를 써야 한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신부님의 말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게 되자 천국의 존재도 납득할 수 있게 되었고 그즈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아파트 두 채 사이에 가득하게 늘어진 라일락 향기가 코를 찌르듯 파고들던 순간을 기억한다. 라일락의 군락을 구경하듯 마주 보고 서있는 아파트 한 동의 코너를 지나고 있었다. 풀이 자라도록 다져놓은 작고 마른 흙 언덕을 넘으며 더 이상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것에 신이 나서 함께 있던 친구 무리에게 우리가 죽으면 천국에 간다고 크게 떠들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천국이 ‘정말로’ 있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천국이 있다고 보장할 만한 증거와 논리가 없었다. 말끔히 사라졌던 두려움은 천국이 있는가 없는가 생각하기에 따라 사라졌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x축과 y축을 가진 두려움의 그래프는 하얀 미사포 끝의 레이스처럼 울렁거렸고 나는 그것이 불안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 그 불안을 마주 볼 수 있는 깜냥은 되지 못했다.


  커가며 관심은 또래 친구들에게 옮겨갔고 실비아로 성당에 드나드는 일은 없었지만 나의 자아의 일부가 가톨릭 신자라는 감각은 남아있었다.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유일하다는 존재와 사후의 낙원을 믿는 것으로 더 이상 생각하기를 그만둔 것이다. 그것이 다만 불안을 내일로 또 내일로 미루는 일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몰랐다. 기도는 하지 않았지만 사도신경은 외울 수 있었고 가위에 눌리는 밤이면 몇 번이고 읊었다. 성당에 가지 않는다는 아주 약간의 죄책감이 있었고 밤마다 읊조리는 사도신경으로 그 죄가 덜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열여섯이 되던 봄,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은 단번에 신에 대한 의문을 다시 소환했다.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보내던 삼일 동안 나는 의식을 치르듯 창을 열어둔 채 십자가 앞에 앉아 몇 번이고 무릎을 꿇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인과응보라고 생각했다. 나의 기도가 갑작스러웠던 탓이다. 8년 만에 당신을 향해 말을 거는 아이의 간절함 따위는 신에게 그저 멀고 낯선 목소리였을 것이다. 죄책감은 불어났고 그 거추장스러운 감정을 덜기 위해 신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신과 기도와 죄책감과 천국은 언제나 붙어있는 것이어서 나는 침묵했다. 내 두려움의 근원, 소멸의 검정 속에 아빠가 있다고 생각하면 눈물이 났기 때문이었다. 신은 천국의 주머니를 달고 어디인지 모를 그곳에 채권자로 계속 있어야 했고 나는 울고 싶지 않았다.


  남편을 잃은 엄마는 8년간 냉담 중이던 성당에 다시 드나들었다. 6.25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다. 아빠가 사라졌던 그 해 겨울, 할아버지는 매주 가던 산행 중 발을 헛디뎠다. 차가운 스테인리스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누워있는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밤마다 절절 끓었던 할아버지의 돌침대를 생각했다. 신부님의 주관 아래 출관 미사가 치러졌다. 신부님의 표정에서 어떤 평온함 같은 것을 발견하고는 할아버지에게 신을 붙잡을 권리를 준 전쟁과 그가 내내 붙잡고 있었던 신에 대한 기묘한 아이러니를 느꼈다. 할아버지는 살아있지 않은 것을 붙잡고 죽었다. 할아버지는 천국에 갔을지 모르겠지만 엄마는 더 이상 성당에 가지 않았다. 나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붙잡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종교가 수많은 '붙잡을 것들' 중 하나의 선택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고 또 교체될 수 있는지도.


  알베르 카뮈는 인간과 세계와 부조리가 드라마의 세 등장인물이라고 말한다. 세계의 침묵과 인간의 (진리를 향한) 노스탤지어 사이의 영원한 이혼 상태가 부조리인 것이다. 세계는 인간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다. 세계가 대답함으로써 인간이 세계와 화해한다면 부조리는 삭제된다. 이 화해는 니체의 '중력의 영에게 굴복하는 일'과 닿아있다. ‘세계의 대답’이란 ‘인간의 기획이자 발명‘이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성당에 나가 세계와 자기 안의 인간을 화해시켰다. 아빠는 할아버지의 성화에 마지못해 세례를 받았었지만 성당에는 나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들의 관을 선산으로 옮기기 전에 신부님을 불러 출관 예식을 치렀다. 신부님의 손에서 흔들리는 향의 연기와 관에 뿌려지는 성수를 바라보며 아빠도 이렇게 하고 싶었던 건지 물어보고 싶었다.


  니체 식으로, 할아버지는 중력의 영에게 굴복한 삶을 살았고 죽는 순간까지 그러했으며 살아있는 몸을 가졌다는 우위로 굴복 보류였던 아들을 굴복시켰다. 나는 이런 문장을 만듦으로 해서 어떤 종교든 사상이든 그 안에 폭력이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들을 인간의 생애에, 타자의 생애에 들이대는 순간 삶은 측량된다. 두 사람은 살아감의 여정을 가진 인간이었고,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였고, 나는 그 두 사람과 함께 살아있었다.


  몸의 시간은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고 기억은 흐릿해졌다가 다시 선명해지는 파고를 반복한다. 신과 낙원과 기도와 죄책감은 더 이상 나에게 어떤 의뭉스러움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다만 그것들은 나의 '시작 안에 있기' 때문에 종종 은유로 작동할 뿐이다. 나에게는 불안장애가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심장박동과 답답함과 떨림과 현기증이 시작되면 나는 최초의 두려움과 불안이 태어난 검정을 떠올린다. 그 먹먹하고 아득한 무의 공간에서 두려움과 동시에 오롯한 나 자신을 느낀다. 그곳은 나의 요람이다. 나의 두려움과 불안과 고독이 태어나고 사는 곳. 나는 그 검정 속에서 ‘지금-내가-여기에-있다'는 것을 느끼며 어떤 기도도 호소도 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살아있음이 불안을 호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글/ 이시현

사진/ Raphael Nogueira,  Scott Rodg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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