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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현 Jul 12. 2021

기억은 지근거리에 있을 때 더 생생하다

[조선] 훈구와 사림(feat. 도긴개긴) 권력의 영원회귀




<빈센조>가 쏘아 올린 ‘우리나라’ 다시 보기가 <광해>, <역린>, <사도>를 거쳐 <육룡이 나르샤>를 스치더니 한능검에 이르렀다는 알다가도 모를 서사의 도착지. 문득마다 나 지금 뭐하니 이거 왜 하고 있는 거니 나 이거 왜 재밌니의 도처에서 맷돌 손잡이를 찾는다.




<unsplash, AlexandreTrouve>



훈구와 사림(feat. 도긴개긴)의 무한루프


조선 건국의 중심에서 활약했던 정도전, 조준 등의 혁명정신을 이어받았던 훈구파는 계유정난을 시작으로 구린내를 시원시원하게 적립한다. 세조를 등에 업고 부정부패 테크트리에 올라탄 이들은 예종이 14개월 만에 붕어하자 공식 발표도 전에 입궐시켜둔 성종(한명회의 사위)을 왕위에 올려 정희왕후가 수렴청정하던 성종 초기까지 세를 누린다.


그러나 친정 후 ‘내가 왕이다’를 각성한 성종이 훈구파의 나쁜 짓에 힐을 넣어주던 대마법사 한명회를 불경죄로 하옥하라는 명을 내려 훈구의 스텟을 떨어뜨리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


게다가 탄핵과 간쟁이 주요 업무였던 대간과 집현전의 부활 격인 홍문관 등에 사림을 대거 등용하는 성종의 ‘훈구 견제 겸사겸사 왕권강화’를 목격하며 똥줄이 바작바작 타들어가는 지경에 이른다.


훈구의 복병이었던 성종 사후, 기회만 보였다 하면 사림을 쳐내려는 지극정성이 연산~명종에 이르기까지 닿아 무오(조의제문)/갑자(폐비윤씨)/기묘(조광조개혁)/을사(외척싸움)의 4대 사화로 불리게 된다. 갑자사화 때는 사림이며 훈구며 할 것 없이 연산의 패악질에 사람 목숨이 추풍낙엽처럼 떨어져 나갔기 때문에 패스.


여하간 온갖 트집으로 그 많은 사림들을 죽이고 치워버리는 난리통에도 불구하고 결국 훈구는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지는데, 결과적으로는 그들의 지극하고 정성스러운 시선이 닿는 곳에 백성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Unsplash, Chan Hyuk Moon>



건국 초기 혁명파(훈구파의 조상 격)들이 몰아냈던 고려의 권문세족과 훈구파의 [백성등골빼먹기]스킬이 동기화되어가는 동안, 고려를 지키고자 했던 정몽주의 단심(온건파)을 이어받은 사림들은 고향으로 돌아가 백성들을 아우르며 조용히 힘을 키운다. 훈구와 대비되는 지점.


성종의 pick을 시작으로 4번의 사화를 버텨낸 사림파는 드디어 16세기 후반, 선조 시기부터 경복궁의 메인스트림에 오른다.


지극정성 맥 커터 훈구의 집요한 트집에도 불구하고 사림이 주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유향소서원, 향약 등의 지역민 어르고 달래기 스킬로 무한 스텟을 얻은 덕분이었는데 그 세의 막강함이 중앙에서 견제를 해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사림은 훈구보다 더한 성리학 처돌이였기 때문에


1. 흔히 말하는 '전근대적' 꼰대 마인드는 조선 후기의 사림이 낳은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하고


2. 훈구가 집권하던 전기에는 그나마 세종대왕께서 하드 캐리 한 덕에 실생활에 널리 활용되어 백성들을 이롭게 할 수 있는 기술이 쏟아졌지만 사림 집권 이후부터는 전무하고


3. 공식 신분제도는 양인이라면 누구나 신분상승이 가능한 [양인/천민]으로 구획을 나눈 양천제였으나 사림 집권 후 사회의 분위기는 [양반/나머지]인 반상제로 흘러가 신분의 구획을 더욱 견고하게 했으며


4. 사화를 마냥 훈구 탓으로 돌리기에는 좀 억울한 면이 있고(무오 때 조의제문은 사림이 좀 멀리 갔고 갑자는 연산군 프리패스)


5. 좋게 말해 토론 정치의 시작.이라고 하지만


6. 훈구와 비슷한데 더한 짓(기축옥사)


7. 쯧쯧 리조트를 짓고도 남을 거대한 한심한 짓(예송논쟁)


8. 개항기 직전, [민초들 뼈 발라내기]의 절정이었던 카오스 정치(세도정치)로 이어지는 입체적인 나쁜 짓과


8. 암기할 때 돌아버리겠는—동인 북인 남인 서인 노론 소론 영남 기호 온건 강경 시파 벽파 —등등으로 이어져 짝꿍 맞추기의 서막이 되는 붕당정치가 전부 사림 탓이라는 가장 열받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숙종영조정조가 이들을 요리조리 맥이고 계시므로 캄다운 가능.




고려를 전복시킨 조선의 신진사대부들은 고려 말 권문세족의 부정부패를 경계하고 건국 합리화 단도리도 할 겸, 건국 초기 <고려사>라는 역사서를 편찬하기까지 했지만 이들 역시 권력에 취해 엎치락뒤치락하다가 망조에 든다. 저기나 여기나 도긴개긴 난장판인 건 마찬가지.


나쁜 놈이 가면 더 나쁜 놈이 온다—에서 ‘’ 란, 단지 오늘과 가깝다는 이유로 붙이는 부사가 아닐지.

기억이란 지근거리에 있을 때 더 생생하니까.


<Unsplash, Hangah Liong>


상상을 더해야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먼 곳에서부터 시작되어 점점 가까워지는 이들의 세계는 분명 발전하고 있지만, 움켜쥔 것을 놓지 않고 더 많이 갖도록 부추기는 낡은 권력의 늪은 진보도 퇴보도 없이 언제나 같은 지점에, 같은 크기에, 같은 모양새로 썩은 나뭇잎 사이에 숨어있었다.



권력의 늪을 무사히 건널 수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설계된 민주주의의 번거로움에 새삼 납득하는 중.



나의 무료하거나 정신없는 하루하루가 21세기라는 거대한 덩어리 속에 뭉뚱그려져 있을 500년 뒤 역사서의 서늘함을 상상하며 여름의 무더위를 달래고 있다.



<Main photo: Unsplash, kay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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