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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호동호 Dec 29. 2023

꿀 기운이 솟아나요2

꿀벌 분봉 시키기

선생님 지시대로, 이제는 때가 되었으니 격왕판 설치를 했다. 격왕판은 벌통의 일층과 이층 사이에 왕이 이층으로 올라오지 못하게 한다. 격왕판은 여왕벌의 이동을 제한하는 판이다. 격왕판이 없다면, 여왕벌은 이층에도 알을 낳게 된다. 애벌레 방이 생기면 꿀을 수확할 때, 애벌레가 죽는 것 자체로 손실이기도 하고 그만큼 꿀 수확량이 줄어든다. 때문에 사람들은 일층과 이층 사이에 격왕판을 두어 이층에 꿀만 들어오도록 한다. 


격왕판을 설치하면서 선생님은 이때 함께 해야 할 것은 빈 소비를 일층으로, 봉충판을 이층으로 올리는 것이다. (여왕벌이 일층에 있는 걸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일층에서는 계속 산란을 해서 일꾼들을 보충하고, 일주일 정도 후에 이층에서 태어난 꿀벌들이 새로운 일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선생님께 다시 전화가 왔다. 왕대가 생겼는지 확인하라고 말이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보여줄 테니 와보라고 하셨다. 


선생님 농장에는 다양한 꽃이 만발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꽃모종을 키워 마을에서 판매하셨다. 이전부터 선생님 댁 모종을 많이 사다 심고는 있었는데, 한창 꽃이 피어나는 산지를 오니 꽃나무와 어우러져 자라는 꽃들이 대단한 풍경이었다. 선생님이 꽃을 좋아해서 꿀벌을 키우고 계신 건지, 꿀벌을 키우기 때문에 다양한 꽃을 키우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서로 연관된 일을 한다는 건 멋진 일 같다.


많은 벌통이 있던 봉장에는 이제 두 통의 벌이 남아 있었다. 지난겨울 세력이 너무 약해서 누구 주지 못하고 남겨둔 벌통이었다. 벌통 하나에서 왕대가 발견됐다. 모르고 지날 수 없는 확연히 다른 모양이었다. 왕대는 옛 동화에 나왔던 마녀의 매부리코랄까, 벌집에 맺힌 고드름 같다고 할까. 새끼손가락 마디만 한 이곳에서 새로운 여왕이 자라고 있다니 시룽새룽했다. 분봉이 시작된 것이다.


돌아와 우리 집 벌통을 확인해 보니, 벌통마다 왕대가 생겼다. 하나가 생긴 통이 있고, 세 개나 맺힌 통이 있었다. 갑자기 왜 생겼을까? 선생님은 지금 방법이 일반적인 분봉 방법은 아니라며,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이 시기가 되면 여왕벌은 1분에 하나의 알을 낳는다. 하루 1천에서 2천 개의 알을 낳는다. 벌집 한 면에는 약 3200개의 벌방이 생길 수 있다. 그 전체에 알을 낳지는 않는다. 최대 80%까지만 활용한다고 하는데, 이는 애벌레를 보살펴 주기 위한 자원들, 꽃가루와 꿀을 가까이 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봄철에 벌판은 금방 가득 찬다. 알을 낳은 방이 비워지는데 21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꿀벌들은 일층과 이층을 서로 순환해 가며 공간을 활용하는데, 격왕판이 설치되면서 일층과 이층의 융통성이 막히는 상황이 닥쳐버린 것이다. 늦봄과 초여름, 세력을 나누고 싶은(새로운 군집을 출산하고 싶은) 욕망을 품고 있는 꿀벌들에게 격왕판이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꿀벌들은 잠재력의 폭발이 막혀버린 상황이라 느끼자마자 새로운 생명(벌 군락)을 낳기로 한다. 이층에 있는 가장 높은 성공 가능성을 품을 알을 찾아내 왕대를 만들고, 로열제리를 먹인다.


선생님 집 벌통엔 왕대가 생기지 않은 벌통이 있었다. 공주로 키울 알이 없었거나, 세력의 잠재력이 제한된다고 느끼지 못했을 수 있다. 선생님은 우리 집 벌통에 여러 개가 달린 것이 있을 텐데, 그중에 하나를 떼어달라고 하셨다. 


"왕대를 떼어다 붙인다고요? 왕대가 USB도 아니고, 어떻게 뗐다 붙여요?"

"괜찮아. 커터칼로 왕대의 윗부분까지 도려낸 뒤에 티슈로 감싸서 컵에 담아 가져오면 되네."

"그런데 떼다 왕대를 망가뜨리면 어쩌죠?"

"자네를 믿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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