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호동호 Jul 17. 2024

어린 나에게 주는 위로

'낯선 시선'을 읽고

나는 울음이 많은 아이였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툭하면 울었다. 울지 않으려 해도 눈물이 나오는 게 벌써 느껴졌다. 눈물엔 나름 이유가 있었으나, 사람들은 내게 사내답지 못하다고 했다. 눈물은 사내답지 못한 일이었다. 눈물을 감춰야 한다고 생각하니, 억울해서 눈물이 더 나왔다. 그 부끄러움을 참느라 정작 무엇이 억울한지 설명할  타이밍을 놓쳤다.


어쩌다 보니 군인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군대에서 10년을 보냈다. 눈물은 이제 나지 않았지만, 나는 남자답게 보여야 했다. 남자답기엔 여러모로 불리한 신체 조건을 갖췄다. 키도 작고 눈이 컸다. 담배를 피우진 않지만, 가래침을 멋지게 뱉으려 했고, 경박한 말로 입을 무장했다. 


반평생 ‘남자답게’를 쫓아다녔다. 어디서든 큰소리 낼 줄 알아야 하고, 존재감을 과시해야 하고, 인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성공한 사람이 되려 했다. 그 목표에 도달할 수 없겠지만 적어도 낙오되지 않으려 했다. 그 속에서 나는 행복했을까? 


우린 늘 소통한다. 그래서 언어는 모두의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언어는 우리를 지배하는데 쓰인다. 혹은 억압으로 작용한다. 누군가를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틀 속에 가둔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고착시킨다. ‘효자답다’는 말은 돌봄을 개인의 책임에 머물게 한다. 국가의 책임을 보이지 않게 만든다. 시민들은 복지 정책을 요구하지 못하고 찾아 헤맬 뿐이다. 책 <낯선 시선>은 평소 묻혀있고, 들리지 않는 시각을 우리로 하여금 볼 능력을 준다. 사회 단면을 얇게 저며 우리가 놓친 통찰을 준다. ‘메타 젠더’라는 예리한 칼날로 세상을 떠돌고 있는 ‘언어에 대한 언어’를 해부해 준다.


“맘대로 해고를 ‘노동 시장 유연성’이라고 한다. 제주는 육지의 시각에서 보면 ‘변방’이지만, 태평양에서 보면 대한민국의 ‘관문’이다. 해남 주민들은 해남을 ‘땅끝 마을’이 아니라 땅이 시작되는 곳이라고 말한다. 장보기 같은 가사 노동은 노동인가, 소비인가? 서구인이 말하는 지리상의 발견은 발견’당한’ 현지인에겐 대량 학살이었다. 강자의 언설은 보편성으로 인식되지만 약자의 주장은 ‘불평불만’으로 간주된다. 언어의 세계에 중립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평화로운 사회는, 다양한 시각의 언어가 검열 없이 들리는 세상이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의 언어는 드러나기가 쉽지 않아 생소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107쪽)


울음 많게 태어난 것은 이제 와 어쩔 도리가 없다. 회한에 젖기에도 이미 다 커버렸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 그 울음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누군가 내게 알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누구나 섬세할 수 있다, 예민할 수 있다, 다 울고 나서 왜 눈물이 나왔는지 말해주렴, 이라고. 그랬더라면, 지금의 나는 어땠을까. 남자다움이 아니라, 사람다움에 대해 듣고 자랐다면 지금보단 더 어른답지 않을까. 군중 속에 숨는 능력보다 나다운 힘을 기를 수 있었을까. 성평등은 여성의 해방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의 해방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에겐 공부가 필요하다. 자유를 위한 언어,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힘을 위한. 


낯선 시선/정희진 지음/교양인 펴냄


매거진의 이전글 보이지 않는 존재를 지키는 울타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