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오백 예순 세 번째 주제
어릴땐
그렇게 사교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누가 말걸라 치면
대답하기 싫어 도망치기 급급했다.
선생님이 지목해내고야 마는
발표시간에는 눈물이 코끝까지 오르곤 했다.
그렇다보니 이렇다할 친구도 별로 없었다.
나는 어릴때 친구들이
어디서 뭘 하는지, 이름이 뭐였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행이랄 것은
그때엔 내가 그렇게 조용한 친구로
남아도 왕따라던가
집요한 괴롭힘이 없었다.
사교성이 뭔지도 모르는 채
교복을 입어도 마찬가지였다.
어영부영 졸업하니
대학에서는 조금 달랐다.
자꾸 나이도,전공도 다른 사람들과
끝없이 뒤섞여야 했다.
그때가 아마 나의 첫 사회생활.
억지로라도 친구를 만들어야하는
시간에 최선을 다했다.
모임도 나가고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그래도 나는 그걸 이어갈 방법을 몰랐다.
애정이 없었거든, 그런 얕은 관계에.
그렇게 모래성같은 사이를
오랜시간 하나둘 포기하고 나니
결국 사교성이 짙은 친구들이
나를 오래 봐줌으로서
지금의 나로 산다.
억지로는 안될 것들이었다.
그런 것 좀 없으면 어떤가
그래도 지금 잘 지내는 걸.
-Ram
1.
말레이시아에 있었을 때 한국인을 만나면 무지 반가웠다. 그래서 더 진심으로 대했는지도 모르겠다. 더 잘해주고 싶었고, 더 친해지고 싶었다. 그런데 상대방은 그게 아니었나 봐. 더 이상 ‘아는 사람’에서 ‘친한 사람’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매번 내가 먼저 연락하고, 내가 먼저 대화를 걸고, 내가 먼저 웃었던 것 같다.
2.
먼저 말을 거는 편이 훨씬 많았다. 낯을 가리지 않으며, 어색한 공기도 싫어하는 편이니 꽤나 누군가들에게 말을 시켰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좋아하고, 잘 믿었다. 같은 공기 흐름 속에서 함께 웃고 있으면 순진하게도 상대방 역시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줄 알았다. 내겐 “밥 한 번 먹자”가 진심이었는데, 차일피일 미루는 모양새에 실망이 컸다. 사실 기대를 안 했으면 그만일텐데. 근데 그냥 그 시간(만)을 때우기 위해 사람을 사귀는 (척 하는)건 더 별로다. 나는 언제나 누구에게나 진심을 다할래.
-Hee
1.
새로 등록한 저녁 수영 강습에서 나는 지극히 외향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 영법이 어색하게 느껴질 때마다 호흡의 타이밍, 팔꿈치와 머리의 각도, 리듬의 변화 따위를 나보다 수영을 잘 하는 분들과 강사님께 쉴 새 없이 물어본다. 수영을 얼마나 해왔는지, 연세는 얼마인지도 물어보며 너스레를 놓았다. 전에는 상상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궁금한 게 생겨도 쭈뼛거리다 말고 수영 강사가 가끔 한 번 보고는 잘못된 부분을 짚어줄 때까지 마냥 기다렸던 스무 살 초반의 나로서는 요즘 나를 스스로의 미래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그렇다고 내가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냐 하면 여전히 그렇지는 않은데, 뭐랄까 살아가는 스킬이, 넉살이 늘었다고 하면 맞을까. 어쩌면 수영장에 가기 싫을 때마다 십수 년째 새벽 수영 다니는 엄마를 생각하다 보니 자연히 같은 반 어른들이 편해졌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2.
낯선 사람들과 대화하다 적막이 찾아오면 누군가 한 사람쯤은 여전히 만만한 MBTI 이야기를 꺼내든다. 얼마 전 샤모니에서부터 트레킹 내내 계속 마주쳤던 한국인 부부가 그랬고, 지난 주말 안동에서 오랜만에 만난 산친구와 그의 다른 산친구들도 그랬다. 여느 때처럼 내가 스스로를 지독한 I 성향이라고 했을 때 그들은 놀라워하며 내가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사교성 넘치는 모습은 내가 늘 선망하던 모습이라 그 말들이 괜히 칭찬처럼 들렸다. 심지어는 이상하리만치 반짝거리며 선명하게 마음 위로 떠올랐다. 이참에 더 사교적인 사람이 되려고 노력이라도 해볼까 싶은 생각이 들 만큼 말이다.
-Ho
사교성이 좋은 편이다.
가끔은 모르는 사람들이랑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러기엔 여행이 제격인데..
요즘엔 현생의 농도가 너무 진해서
내가 갔던 여행들이 다 전생같다.
지금의 인내가 나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가게 한다는 것 만은 진실이니 그것만 보고 가야겠다.
-인이
2024년 10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