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
읽으면서 감탄해서 후배에게 이런 좋은 책이 있더라고 얘길 했다가 한소리 들어야 했다.
"형, 그거 내가 몇달 전에 꼭 읽으라고 추천한 책이잖아요!"
책 제목은 삼체. 그런데 추천을 받아놓고도 잊어버렸을 정도로 한국에선 별 인기를 못 끌고 있었다. 읽어보면 책은 정말 좋지만, 몇 가지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우선 익숙하지 못한 중국 소설이라는 점. 루쉰과 위화 말고 한국에서 지명도를 갖고 있는 중국 작가가 누가 있는지, 나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또 하나는 과학소설이라는 점. 이 책이 휴고상에 빛나는 걸작이라고 얘기해 봐야 한국에서 SF는 잘 안 된다. 끝으로 표지. 솔직히 나도 갑갑하다. 왜 이렇게 디자인 했을까. 물론 읽어보면 이 표지가 왜 나왔는지 내용상 짐작은 된다. 하지만 표지로 책을 고르는 독자들은 99.9% 놓치고 말 디자인이다. 커버이미지로 쓴 해외판 표지는 저렇게도 멋진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꼭 읽어볼 가치가 있다. 소설 팬이라면 더욱.
삼체는 과학소설이다. 외계인도 나오고 우주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역사소설이다. 이론물리학의 근거를 만들어 온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뉴턴, 아인슈타인 등이 (잠시) 등장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중국의 문화대혁명을 아주 진지하게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지식인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정치와는 관련없는 삶을 산다고 믿었을 자연과학자들에게, 문혁은 어떤 의미였을까. 사실 대만이나 홍콩으로 나온 중국인들은 문혁을 자주 다뤘지만, 그것은 탈북자들의 북한 이야기만큼이나 어딘가 애매했다. 삼체는 중국에서 나고 자라났던 지식인의 문혁 이야기이기도 하다. 과학소설이지만 정치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부족하지 않고, 인간 심리에 대해 파고드는 집요함도 덜하지 않다. 그러니까, 이 소설은 좋은 소설이다.
솔직히, 후배가 읽으라고 했을 땐 나도 읽지 않았으니 내가 읽으라고 권한다고 남들이 읽으리란 생각은 못 하겠다. 다만 내가 읽게 된 계기를 하나 밝히자면,
여러분, 마크 저커버그가 이 책에 푹 빠져서 강추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읽었다고 하네요.
* 삼체에 관한 이 글보다 훨씬 뛰어난 리뷰를 하나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