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mino del Norte | Day 0 Irun
6월 30일. 딱 4년 전 오늘이 출발이었다.
아직도 희미한 듯 또렷한 기억들이 조각조각 떠오른다. 그때의 아이폰4S는 수명을 다 해가는 시점이었고, 그나마 찍은 사진들도 어디에 어떻게 보관했는지 조차도 가물가물하다.
세월이 더 지나면 기억마저 왜곡될 것 같으니 남은 사진과 기억을 더듬어 몇몇 이야기들을 하나씩 남겨볼까 한다. 언제가 가게 될 나의 두 번째 까미노를 위한 기록을 위해, 또 다른 까미노를 준비하는 예비 순례자들을 위해, 코로나로 여행앓이에 빠진 이들의 대리만족을 위해.
모든 추억팔이의 출발지. 한 달 동안 어떤 일이 나에게 일어날지, 어떤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어떤 인연들을 만나서 지금까지 살아오게 되었을지 하나도 예상하지 못했지만 그만큼 큰 설렘으로 잠 못 이룬 첫날의 기억.
파리에서 TGV를 타고 이룬 역에 내리면 바로 성당이 보인다. 순례자 여권인 크레덴시알을 이곳에서 발급받아도 되고, 공립 알베르게에서 받을 수도 있다. 나는 성격이 모든 퀘스트가 해결되어야 마음이 편한 타입이다. 이룬 역에 내린 나는 아직 숙소를 찾지도 못 했고, 저녁 식사도 해결해야 하는데 성당이 보인다고 해서 크레덴시알을 먼저 발급받고 있을 속 편한 사람이 못 된다. 성당을 지나 마을 곳곳을 둘러보며 구글맵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알베르게를 찾아갔다.
까미노 중반부도 아닌 시작점에서 알베르게를 찾는 것부터 난관이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도로명주소가 익숙한 곳이지만, 4년 전 부산 촌놈인 나에게 길 이름과 건물번호로 주소를 찾아간다는 것은 영화 속 FBI 요원들이나 하는 '대단한' 행동이었다.
우리나라 80년대에 지어진 주공아파트 같은 외관의 빌라들 사이를 헤맸다. 건물 사이사이를 오가며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한참을 방황했다. 두 시간 정도 헤매고 보니 까미노를 걷는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다 첫날부터 국제미아가 돼서 대사관에 연락하는 것 아닌가 하는 뇌내 망상인지 걱정인지 모를 생각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 길을 잃어버리거나, 원하는 주소로 찾아가려면 중국집이나 치킨집을 찾아가면 쉽게 해결된다. 그들은 등기부등본에 올라가 있지도 않은 불법 개축된 다가구주택의 호실까지도 머리에 넣고 다니는 이들이니까. 문제는 내가 두 발 딛고 선 곳이 배달의 민족이 사는 곳이 아니라는 것이다. 언어는 또 어떤가. 정규 교육과정 12년 동안 입시 영어 외에는 입으로 영어를 말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스페인어라니. 시에스타 시간이 되어가니 날은 더워져 가고 길에 사람도 점점 안 보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첩첩산중, 전호후랑, 설상가상, 병상첨병. 수능 시험장에서는 기억도 안 나던 문자들이 이럴 땐 꼭 더 우울하라고 잘 떠오른다.
그래도 영 죽으라는 법은 없는지 저 멀리 꽤 소란스러운 행렬이 들린다. 마을을 가로지르는 천 위로 작은 돌다리를 건너니 웬 축제와 행진이 한창이다. 전통복장을 입은 학생들과 그 주변으로 말을 탄 경찰도 보인다. 아, 경찰에게 도움을 청하면 되겠구나. 마침, 파리에서도 경찰의 도움을 받은 직후이기에 유럽 경찰들에게 호감 비슷한 감정도 생긴 시점이었다. 행진 행렬 주변을 정리하던 경찰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었다기보다 구글맵을 보여주고 알베르게라는 단어만 말했을 뿐이다. 눈치 빠른 경찰 덕에 빠르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물론, 그의 스페인어 설명을 내가 알아듣지는 못 했다. 내가 필요한 건 right 인지 left 인지, building color가 뭔지만 들으면 충분했으니까.
알려준 대로 가보니 결국 제자리다. 분명 두 시간 전에 왔을 때는 안 보이던 가리비 표시가 갑자기 보였다. 계단을 올라가 보니 크레덴시알을 받고, 체크인을 기다리는 줄이 제법 길다. 크레덴시알에 들어갈 기본 정보와 체크인을 위한 여권번호를 쓰고 베드를 배정받았다. 숙박비를 치르고, 순례자임을 드러내는 가리비도 하나 같이 구매해서 배낭에 달았다.
이룬에서 첫 번째 퀘스트인 '알베르게 찾기'를 클리어하는 동안 끼니를 놓쳤다. 마침 축제가 무르익어 가는 시간이기도 한 것 같아 첫 저녁식사는 광장이 보이는 보카디요 식당으로 자리를 잡았다. 다들 여행을 간다고 하면 구글링으로 그 지역의 맛집을 찾아서 미리 저장해 두고 꼭 그곳을 간다고 하는데, 이것도 나는 어디서 나온 청개구리 심보인지 현지에 가서 발 닿는 곳에서 먹는게 최고일 거라고 생각했다. 언제 다시 올 지 모르는 도시인데 말이다. 그래도 꽤 만족스러운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마침맞게 열리고 있었던 축제와 길고도 길었던 한 여름의 스페인 노을, 가성비가 '오졌던' 단 돈 3유로짜리 보카디요와 이름을 알 수 없는 스페인 탄산음료까지 모든 것이 완벽했다.
해가 길어서 식후 산책을 꽤 오래 할 수 있었다. 어스름이 질 때 즈음 알베르게로 돌아와 같은 방 순례자들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잠에 들려던 찰나, 복도에 지나가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당연히 한국인은 없을 거라 생각했던 곳에서 한국인을 만나게 되면 반갑게 인사하지 않는 것.
흔히 말하는 종특인지 아니면 내가 썩 반가운 스타일이 아닌지. 어쨌든 어색한 인사를 나눈 그 분과 세계 각지에서 온 순례자들과 함께 시원하게 따뜻했던 그날 밤의 바람을 맞으며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