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알못, 주알못, 금알못들 위한 이야기 (1)
상식 :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 (네이버 국어사전)
세상을 살다 보면 내가 당연히 알고 있던 것을 모르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고, 상대가 당연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것을 내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상식의 영역인지 정의하기 어렵다.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철저한 문과적 사고방식과 경영학을 전공한 탓에 나에게 '수요공급 법칙'은 상식으로 여겨졌다. 중학교 일반사회에 눈꼽만큼 들어있는 경제 파트부터 시작해서 수능을 지나, 대학에서 CAPM 모형과 블랙숄즈 모형까지 모든 공부의 중심에 있었다. 학부 2학년과 3학년 즈음 공부 좀 한다는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고민을 하듯 나 역시 공부에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서 대학원을 가볼까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서 비롯된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 있으면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도 생각의 궤적이 비슷한 이들이기 때문에 사회에 나오기 전까지는 내가 알고 있던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 글감을 떠오르게 해 준 3명의 지인이 있다.
지인1은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이다. 이 친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아는 것도 많고 모르는 것도 많은 사람이다. 어떤 주제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지만, 다소 뜬금없는 부분에서 "그게 뭐야?"라는 질문을 수시로 던져 주위를 당황스럽게 한다. 이 친구와 함께 경제나 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면, 대화가 아니라 일방향적 강의로 바뀌게 된다. 끝없이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만 반복하게 되는데, 의견을 묻는 것이 아니라 교과서적인 정의와 설명을 요구한다. 한 번은 달러와 금의 상관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바람에, 내가 알고 있는 외환시장론과 원자재의 선물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끄집어내게 만들 정도였다.
또 다른 지인2는 물리치료사다. 대학원까지 나온 가방끈이 긴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전공이 아닌 다른 모든 세상사에 관심이 없다. 최근에 본격적으로 돈을 벌고, 결혼 준비를 하게 되면서 나에게 재테크에 대한 질문을 종종 던지곤 한다. 전형적인 이과적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 그는 언제나 나에게 명확한 답을 요구한다. 투자와 재무관리에 있어서 자신의 선택보다는 내가 던져주는 답을 그대로 행동으로 옮기고자 한다. 그럴 때 마다 "결국 선택은 너의 몫이야"라는 대답을 던져주면, 그의 표정은 갈 길 잃은 개 마냥 허공을 응시하기만 한다. 그에게 금리, 주가, 재무제표 등의 말은 글자만 한글일 뿐이지 내용에 있어서는 추론 조차도 할 수 없는 영역의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지인3은 일 잘하는 전 직장 동료이다. 그는 고졸 취업자로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사회 경험은 나보다 두배나 많은 선배였다.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올라와서 월세며, 통신비며, 관리비까지 어릴 때부터 혼자 벌어서 혼자 해결하는 그가 가진 최고의 습관은 절약이었다. 그러나 그에게 가장 큰 고민은 절약해서 남은 돈을 더 효과적으로 관리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었다. 2년 만기 은행 적금만 지금까지 넣어왔다는 그에게 내가 하는 주식 이야기나 경제 이야기는 뉴스에서나 보던 '그들만의 리그'처럼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들이 은행 적금 외에 다른 재테크 방법을 적극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혹은 못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은 알지 못 하는 세계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이었다. 경제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쏟아지는 생소한 용어들 속에서 내 피부에 와닿는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정보를 활용해서, 어떻게 필터링하고,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어떤 원리와 논리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해야하는지 알지 못 했기 때문이다. 가령, '미중 무역분쟁 심화로 불확실성 증대 및 미국의 대중기업 압박'이라는 뉴스를 본다면, 경제적인 논리가 있는 사람은 '미국 내 중국기업 불확실성 증가 → 중국 수입품에 대한 미국의 관세 증가 → 대미 수출 중국 기업의 실적 악화 → 부품/중간재 역할의 국내 기업에 영향' 이라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물론, 이 추론의 과정이 one-way가 아닌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지고, 각 상황에 대한 투자의 대응도 달라지지만 이 글에서 다룰 내용은 아니니 넘어가도록 한다.
결국 이 추론 과정을 스스로 하기 위해서는 경제의 각 분야에 대한 공부를 기반으로 한 접근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공부가 부족해도 태생적으로 감각이 좋은 이들도 주변에 많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라면 이 글의 제목을 보고 클릭도 하지 않았으리라.
결국, 첫번째 추천은 책이다.
<맨큐의 경제학>. 그런데 이걸 다 혼자 다 처음부터 다 보는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걸 학부 1학년 때 경제학원론 또는 경제학입문 강의를 들은 사람이라면 다 알 것이다. 다행히, 세상이 좋아져서 만화로 쉽게 볼 수 있는 버전도 요즘은 나와있으니 진입장벽이 많이 낮아졌다. 그래도 큼직한 책을 도전해보겠다는 놀라운 심지를 지닌 사람이라면 더도 덜도 말고 '경제의 10대 기본원리'만 완벽하게 정독하길 추천한다. 각 경제주체와 시장의 관계 파악을 통해, 지금까지 경험적으로만 알고 지나가던 세상사들이 어떤 원리에서 비롯된 것들인지 정리될 것이다. 공부 좀 해본 사람들은 <맨큐>를 추천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시장'을 믿냐고 반박하며, 포스트케이지언들의 책을 추천해달라며 ><맨큐>를 거절할 수도 있지만, 거절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재테크, 투자 등의 행동은 시장의 흐름에 개인이 편승해 가는 것이지 새로운 흐름을 만들고자 하는 것이 아니기에 시장이 어떤 흐름을 가지는지를 파악하고 베이스로 만드는 것이 필수이다. 시장주의자가 되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을 읽을 수 있는 눈을 기르기 위함이다.
또 다른 하나는 자주 보는, 들리는 단어들과 익숙해지기이다.
이 글을 쓰는 오늘이 마침 한국은행의 통화정책회의가 있었고, 지난 주에는 정부의 부동산 7.10 대책 발표도 있었다. 경알못들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이런 경제뉴스에 등장하는 어휘들과 친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기준금리, 코픽스금리, PER, 유동성장세, 보유세, 종부세,VI, 유상증자, 상한가.
이 문장을 쓰기 위해 실시간으로 네이버 경제 뉴스 홈 화면에 들어가니 헤드라인에 이런 단어들로 가득하다. 그렇다고 걸음마도 못 하는데 뛸 수 없는 노릇이다.
각 분야별로 어휘를 차근차근 익혀가도록 하자. 부동산 정책이나 재무와 관련된 용어는 기본적인 경제 용어와 이론이 뒷받침되어야 하므로 눈길도 주지 말자.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시장, 개인, 기업, 정부, 물가, 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스태그플레이션, 금리, 자본, 채권, 통화, 유동성, 환율, 평가절상/하, 경상수지, 국제수지, 현물, 선물, 옵션.
앞으로 이 시리즈를 쓰는 자주 사용하게 될 기본적인 어휘들이다. 하나씩 쉽게 풀어가면서 재테크를 위한 골격을 잡고, 큼직한 근육을 먼저 만들어가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