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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뱅 Aug 27. 2021

50만원 넘는 고가주 못 사서 소외감 느낀다고요?

제발 기본기. 기본기. 기본기.

우선 브런치를 계속 비워두고 있었던 점은 스스로 너무 아쉽다. 천성이 게으르고, 열정도 빨리 식는 편이다.

결국 1년 넘게 글을 안 썼다. 다시 열정에 기름을 한 숟갈씩 부어보고자 한다.

최근에도 계속해서 나의 주식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다는 욕구와 그런 공간을 따로 만들어볼까라는 고민은 계속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에 이렇게 행동으로 옮기도록 불을 지펴준 기사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나를 움직이게 한 기사 갈무리
"몇 십만 원에 달하는 한 주당 높은 가격으로 대형 우량주에 대한 개인들의 소외현상이 심화될 경우, 최근의 증시 변동성 확대와 맞물려 개인투자자들의 증시 이탈 현상이 나오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습니다" 
(기사 말미 발췌)
기사 본문 이동


헤드라인을 읽을 때부터 '헛소리'의 기미가 보였는데, 정도가 지나치다.

기사의 논리대로라면 주당 가격이 높은 대형주들에 대한 개인들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액면분할 또는 증자 등의 방법을 통해 주당 가격을 낮춰야 한다는 결론이다. 사실 이런 류의 기사는 잊힐만하면 자꾸 튀어나와서 이제 익숙해질 법도 한데 읽을 때마다 답답하고 화가 난다.

작년 12월 30일, 북클로징을 하면서 페이스북에 처음으로 나의 주식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때도 나의 바람은 ‘기본기’를 갖춘 투자자가 많아졌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주변에서 종종 주식 투자에 대해 물어오는 친구, 선후배들에게 기본기를 매번 강조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서 나가떨어진다. 재미도 없고, 수익은 빨리 나지 않는 것 같으니까.     

다시 기사 이야기로 돌아와서 왜 기자의 논리와 주장이 잘못되었는지 풀어보고자 한다.     


먼저, 자본금 규모와 액면가에 대한 이해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기사에는 [주요 고가주 현황]이라고 해서 7개 종목을 보여준다. 이 중 게임 개발 및 퍼블리쉬 업체인 엔씨소프트를 제외하면 모두 액면가 5,000원인 기업들이다. (삼성바이오 액면가 2500원, 엔씨소프트는 액면가 500원이다. 게임 기업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서 하면 너무 길어지니 기회가 될 때 따로 풀도록 하겠다.) 자본금은 어떤가. 6개 기업 중 태광산업의 자본금이 55억으로 가장 작다. 나머지 기업들은 최소 수 백억에서 많게는 수 천억 단위로 시작한다.

자본금과 액면가는 곧 발행 주식 수로 이어진다. 만약 자본금이 작은 회사가 높은 액면가의 주식을 발행한다면,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는 줄어든다. 반대로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의 수를 늘리려면 액면가를 작게 발행하면 된다. 간단한 산수.

여기서 우리는 중학교 사회 시간에 배우는 경제의 기본인 수요-공급 법칙을 가져온다. 어떤 한 재화나 서비스의 공급이 늘어나면, 그것의 시장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에서도 이 기본은 변하지 않는다. 유통 주식 수가 너무 많아지는 것도 주가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하는 말로 ‘엉덩이가 무겁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즉, 기사에서 말한 대로 자본금이 수 천억 이나 하는 LG화학이나 삼성SDI 같은 기업이 1:10 액면분할로 액면가 500원, 8월 27일 종가 기준으로 765,000원인 삼성SDI가 다음 주부터 76,500원에 거래된다고 해서 반드시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가격만 10분의 1로 되는 것이 아니라 유통 주식 수도 10배가 되니까 그만큼 거래량이 수반되지 않으면 더 답답한 흐름으로 갈 가능성도 품게 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시가총액에 대한 이해가 되어 있지 않다.

8월 27일 기준으로, 태광산업의 종가는 1,087,500원이고, 삼성SDI의 종가는 765,000원을 기록하고 있다. 주가만 놓고 보면 태광산업이 삼성SDI보다 더 기업가치가 높다는 것인가? 그렇다면 기사가 말한 소외감을 느끼는 개인투자자들은 삼성SDI보다 태광산업을 더 매력 있게 느끼는가? 시장의 평가도 태광산업이 삼성SDI보다 성장성과 기업가치가 더 큰 것으로 평가하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주식투자자들이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이 가격은 고평가인가?”

나는 항상 이렇게 답한다. 

"주가를 보고 기업을 보지 말고, 기업을 보고 주가를 보라고."

(이 말에는 오늘 언급하는 내용들 외에 더 많은 내용을 품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이 글에서 다루지는 않고, 차차 다른 글에서 계속 이야기해 보겠다.)

태광산업이 주당 가격으로는 삼성SDI보다 30만 원이나 더 높지만, 시가총액은 삼성SDI가 50배나 크다. 자본금의 차이가 큰 탓도 있지만 기업의 가치를 시가총액 개념이 아닌 주당 가격만 보고서 접근하면 위와 같은 오해를 낳게 된다. 태광산업과 삼성SDI의 자본금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극단적인 예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기사에서 언급된 같은 그룹인 LG화학과 LG생활건강을 놓고 한 번 더 볼 수 있겠다.

LG화학 : 종가 784,000원 / 자본금 3,529억 / 액면가 5,000원 / 시가총액 55조 2,738억

LG생활건강 : 종가 1,421,000원 / 자본금 780억 / 액면가 5,000원 / 시가총액 22조 1,934억

8월 27일 종가 기준으로, LG생활건강이 주당 가격은 LG화학보다 약 2배가량 더 높게 형성되어 있다. 자본금과 시가총액에 대한 개념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우와 LG생활건강이 LG화학보다 더 비싸네. 시장은 LG생활건강에 대해서 더 높게 평가해주는구나’라고 오해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액면분할은 반드시 나쁜 것인가?

액면분할에 대한 이야기를 이번 글에서 모두 다 풀어놓을 수는 없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아주 큰 틀에서만 보자면 자본금이 작고 유통 주식 수가 적은 회사라면 주가에 탄력을 줄 가능성도 있다. 액면분할 공시를 한 후부터 분할 주식의 상장일 직전까지 일시적으로 수요가 늘어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대부분의 경우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회가 될 때, 무상증자/유상증자/감자/액면분할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씩 써 보도록 하겠다.


글을 마무리하면서 다시 읽어보니 자간과 행간에 분노와 답답함, 화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것이 느껴져서 부끄럽다. 건조하게 쓰고 싶은데, 이번만큼은 이해해주십사라며 퇴고를 줄이고 그대로 게시하려 한다. 


고객 예탁금 70조 시대다. 시장의 양적 성장은 이루어지는데 질적 성장은 어느 정도인지 아직 모르겠다.

개인이 고가주에 투자하기에는 가격이 부담스럽고 이로 인해 소외감 혹은 박탈감을 느낀다는 말은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시장에서 뜬금없이 휴머니즘을 노래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주식시장은 세상 그 어떤 곳보다 냉엄하고 잔인한 곳이다. 형이상학적이고 예쁜 말들로 현혹시켜서 시장의 오해를 만드는 보도는 반드시 지양했으면 한다. 동시에 70조 예탁금에 기여하고 있는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탄탄한 기본기로 투자하는 질적 성장도 이루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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