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의 빌런인 타노스의 대학살을 보며 어쩌면 저게 합리적인 선택일 수도 있다고 여겼고, 내 나이가 80세쯤 되었을 땐 삶에 대한 미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해왔던 터라 찬/반을 떠나 70세 사망 법안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자극적인 소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야기가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듯한 50대 여성 도요코를 중심으로 적나라하게 전개된다. 그래서인지 <70세 사망법안, 가결>에서는 안락사를 코앞에 둔 노인보다 '독박 수발'들고 있는 50대 도요코가 최대 피해자처럼 느껴졌다.
오랜 시간 가정을 위해 헌신하고, 시어머니의 독박 수발 생활을 견디며 법안이 시행되기만을 기다리던 도요코는 어느 날, 가정이 있기 이전의 자신을 아는 지인을 만나 각성하고, 자신의 시간을 위해 가출을 단행하여 쉰 다섯 살이 되어서야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였다. 어떻게 보면 도요코는 운이 좋게 55세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였지만, 운이 좋지 않은 어떤 사람은 70살 생일을 하루 앞두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아 그제야 진정한 행복을 맛볼 수도 있다. 또 어떤 사람의 행복은 99세에 있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정해진 나이에 직업을 갖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닌 것처럼 행복의 순간이나 삶의 의지는 특정 나이가 되었을 때 뚝 하고 끊기는 것이 아닌데, 인구 조절을 위해 기한을 정해놓고 죽음을 강요하는 것은 무식하고 어처구니없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자연의 영역을 넘어서려는 게 인간답기도 하고, 삶에 의지가 있는 죄 없는 사람에게 죽음을 강제하는 게 비인간적이기도 하다.
사망법안 시행을 2년 앞둔 도요코의 시어머니 기쿠노는 남은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배소변도 타인의 도움을 받아 해결한다. 개인의 노력에 따라 삶을 연장할 수 있다는 이면법안의 소문을 듣고 난 후로 기쿠노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에서 알 수 있듯 사망법안은 삶의 의지를 앗아가고, 스스로 무력한 인간임을 자처하게 했다.
특정 나이가 되면 죽어야 한다는 사망법안은 노인에게 너무 오래 살았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집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나이를 먹는 게 말 그대로 죽을죄가 되는 사회라니. 그런 사회는 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