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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넷맘 Sep 16. 2021

실은 엄마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살아있기에 불안한 거야. 너와 나, 우리 모두.


온 세상이 비에 젖은 밤, 칠흑 같은 고요함에 아이들의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묻혀버린 밤, 자연스레 책상에 앉는다. 밤의 시작은 또 다른 일상의 시작이다. 네 아이의 엄마로서의 일상은 저물고 대학생으로서의 내가 시작된다. 삼십의 끝자락에 시작한 공부는 쉽지 않다. 내가 공부하는 학위는 20%의 국제학생과 80%의 현지 학생이 함께 공부하고 있는 학사 이상의 과정으로 영어 에세이에 대한 요구 기준이 아주 엄격하다.  


    

생각해보니 어학점수를 위한 라이팅은 공부해본 적은 있어도 평생 영어 에세이란 걸 제대로 써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첫 과목에 세 편의 에세이를 과제로 작성해야 하는데 벌써부터 눈앞이 아득해진다. 라이팅도 그렇지만 리딩도 만만치 않다. 한 과목 당 추가 리딩으로 제공되는 자료가 수십 개인데 한 자료 당 적게는 서너 페이지부터 많게는 팔십 페이지까지, 모든 자료를 읽고 정리해야 한다. 여기에 학교 데이터베이스 혹은 구글스콜러를 통해 추가 논문 자료를 찾아 에세이에 인용해야만 한다. 레퍼런스는 APA Referencing 기준에 맞춰 정리해야 한단다. 


    

APA, MLA, 하버드, 밴쿠버 Referencing styles.

난생처음 들어보는 APA가이드라는 건 도대체 뭘까.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과연 내가 이 공부를 제대로 마칠 수 있을까. 어디서부터 손을 데어야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불안하다. 나와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은 대부분 싱글이다.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투자해야만 하는 풀타임 공부. 하루의 끝자락만 잠시 허락된 나의 공부시간 가지고는 이 친구들과 게임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이들이 잠든 밤, 자연스레 책상에 앉는다. 아무리 피곤해도 그날 끝내고자 했던 분량은 끝내도록 했다. 새벽 한 시, 두시. 느리지만 꾸준히 한다. 이삼주가 지나자 희미했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난다. 벌써 에세이 한편을 완성하고 두 번째 에세이를 시작했다. 이 정도 속도라면 다음 주까지 세 번째 에세이 초안을 완성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아직도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스치지만 그래도 아주 조금은 이렇게만 하면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피어오른다. 막막했던 불안감은 아주 천천히 안도감이 되어가고 있었다.


      

스웨덴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대학원 졸업을 앞둔 친척 동생의 전화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동생인데 벌써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있다니 대견하다.     


“언니, 나 졸업을 하고 스웨덴에 남아 컨설팅 회사에 취업해보려고. 한국에 돌아가야 할까 고민했었어. 남들처럼 한국에서 안정된 회사에 취업을 하는 게 맞는 길인가 하고. 나 결혼은 할 수 있을까? 언니처럼 결혼하고 오래 다닌 직장을 그만두게 된다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거지? 과연 결혼이 여성의 삶에 필요한 과정일까? 아니, 그전에 좋은 남자가 내 인생에 과연 나타나기나 할까?”      


스물여덟의 아이는 불안해하고 있다. 아직도 삶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한다. 돌이켜보니 스물여덟의 나도 불안했다. 첫 아이를 출산하고 육아휴직을 써야 할지, 나의 커리어는 어떻게 되는지, 함께 입사한 동기들에 비해 고작 일 년 뒤처지는 게 세상이 엎어지는 것처럼 큰일 나는 일인 줄 알았다. 아이를 육아하는 과정도 그랬다. 출산하기까지는 과연 건강하게 세 쌍둥이를 출산할 수 있을까 오롯이 그 불안감으로 하루를 견뎠지만,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는 또 다른 걱정이 툭 튀어나왔다. 조산으로 인해 조그마한 체구가 하루빨리 정상적인 아이들의 발달 범위에 들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러나 불안은 빠르게 바뀌었다. 뒤집기, 이유식, 걸음마, 언어. 하나의 불안이 사라지면 나는 이미 새로운 걱정을 하고 있었다.      



실은 엄마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나의 아빠는 불안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거대한 어깨와 사업가로서의 호탕한 면모, 아빠의 삶은 안정적으로 보였다. 아니, 어른이 되면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다. 대학만 가면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고, 대기업에 취업만 하면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다. 결혼만 하면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고, 아이를 낳으면 불안하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불안했다. 그리고 서른의 끝자락에서 나는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늦은 나이에 새로운 공부를 시작했고, 아들 넷을 홀로 육아하며 과연 졸업이나 할 수 있을지, 교사 자격증은 취득할 수 있을지, 워크 비자는 받을 수 있을지, 영주권은 딸 수 있을지, 남편과 떨어져 있는 게 맞는지, 언제까지 이 삶을 견딜 수 있을지. 여전히 나의 삶은 짙은 안갯속에 가려져 있는 기분이다. 



Mark result: Distinction.

첫 번째 과목의 성적이 발표되었다. 목표는 그저 Pass만 하는 것이었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점수를 받았다. Pass에는 세 가지가 있는데 Pass (합격)와 Merit(우수), Distinction(최우수)로 나뉜다. 대부분의 학생은 일반 Pass를 받고 그중 일부 우수한 학생에게 Merit, 그리고 소수의 학생에게 Distinction이 주어진다. 최우수 점수를 받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처음 써보는 영어 에세이에 그것도 현지 학생들과 듣는 수업에서 이런 과분한 점수를 받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제의 불안은 어느새 분명한 안도감이 되었다. 아이들을 홀로 육아하며 매일 밤 견뎌왔던 지난한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친다.     



불안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우리는 살아있기에 불안한 것이다. 

삶은 때로는 조금 멀리 서야 선명히 보인다. 그때는 세상의 전부였던 것들이 아주 조금 비켜서면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깨닫는다. 그때의 그 불안들이 삶의 아주 작은 조각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기까지 아주 찰나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우리는 뒤늦게 깨닫는다. 기쁨은 잠시뿐 다음 과목 공부에 대한 새로운 불안감이 차오르지만 이 불안감 또한 내 곁을 떠나갈 것이란 것을 어렴풋이 직감한다. 우리는 살아있기에 불안하다. 열여덟의 고등학생에게도, 스물여덟의 취준생에게도, 서른여덟의 아줌마에게도, 불안은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렇게 나는 깨닫는다. 수십 년 전 나의 부모 역시 수많은 불안을 견뎌온 불완전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삶을 방황하고 있는 지금의 내 인생도 지극한 평범한 삶의 조각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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