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넷맘 Jan 05. 2022

가끔은 불안하지 않고 마음껏 쉬었으면 좋겠다.

이곳은 남반구, 잠시 여름방학입니다.


휴. 나지막이 한숨이 튀어나왔다. 캘린더를 보니 2주도 남지 않았다. 다다음주면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로운 과정이 시작된다. 대학공부와 유치원 실습을 병행해야 하는 것은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실습은 과정의 일환이기에 의무적으로 실습시간을 채워야 한다. 앞으로 세 달 간의 풀데이 실습기간도 남아있다. 락다운 기간 동안 공부와 한 달 간의 풀데이 실습을 병행했는데 죽을 맛이었다. 공부는 공부대로, 과제는 과제대로, 거기에 풀데이 실습에 대한 8개의 에비던스를 준비해야 한다. 교수와의 사전 미팅으로 시작해서 실습에 대한 8개의 리포트, 마지막에는 교수, AT(나의 담당 실무 선생님)와 삼자 미팅을 해야 했다. 당연히 모든 것은 영어로 진행된다. 줌 미팅으로 진행된 첫 번째 미팅을 무사히 마칠 때까지 얼마나 준비하고 긴장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짓을 세 번을 더 해야 한다니. 거기에 공부는 공부대로, 과제는 과제대로, 실습은 실습대로, 에비던스에 미팅 준비에..... 플러스... 아차차. 나에게는 혼자 돌봐야 할 아들 넷이 있었지.




어떤 사람이든 그 사람이 평생 쓸 수 있는 에너지에는 총량이 정해져 있다는 말,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쉬지 않고 새로운 무언가를 찾으며 살아왔고 그 새로운 긴장감과 활력이 삶의 새로운 에너지로 선 순환되고 있다고 믿었다. 나는 움직여야 살 수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리될 즈음이면 새로운 무언가를 저질러야 살 수 있었고, 구태여 아무도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일거리를 끊임없이 던졌다. 턱밑까지 묵직한 무언가가 목구멍으로 차올랐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가 온몸을 짓누를 때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이 생고생을 자처하고 있는 나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가끔씩 요염한 몸짓의 앙칼진 이웃집 고양이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러게. 고생을 왜 사서 하는 거야? 인생 쉽게 살자고. 야옹.




남편을 못 본 지도 벌써 2년이 흘렀다. 당시 만 3세였던 기저귀도 채 떼지 못한 세 쌍둥이와 큰애를 데리고 지구 반대편의 어느 섬나라로 날아온 지도 꼬박 2년이 지났다. 아이들은 한국 나이로 일곱 살, 작년에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한국에서 3학년을 졸업하고 온 큰애는 올해 이곳에서 중학교에 입학한다. 제법 콧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올라왔고 목소리는 변성기가 왔는지 두터운 저음에 고르지 못하다. 2년이라는 시간은 참 빠르다. 육아를 하는 엄마는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공감할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사진을 보며 한없이 앳된 아이 얼굴에 오늘은 어제보다 사랑해주리라, 대게 부모는 그렇게 다짐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지난 2년은 남편에게 얼마나 잔인한 시간들이었을까. 잃어버린 아이들의 시간들이 세상의 그 어떤 것으로 대체될 수 있을까. 한동안 글을 쓸 수 없었다. 터질 것 같은 이 묵직한 감정을 마주할 수 없었다. 떠올리면 견딜 수 없는 종류의 감정이었다. 그 감정을 잊어야만 했다. 무언가를 해야만 했다. 나를 괴롭히고 혹사시켜야만 했다. 그것이 오늘을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기다렸던 여름방학이었지만 막상 시작하니 불안하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게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넷플릭스 시리즈를 찾아보며 시간을 때워도 보았지만 가슴 한 편에는 늘 불안감이 자리했다. 방학은 충분했지만 나는 즐길 지금의 시간보다는 방학이 끝날 디데이를 세고 있었다. 현재를 즐기기보다는 줄어가는 하루하루를 세며 우울했다. 급기야 나는 또 다른 계획을 짜고 있다. 아니, 벌써 움직이고 있다. 방학 동안 해야 할 리스트. 좀 더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활동들. 지금 당장을 필요 없지만 미래의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필요한 공부, 악기 연습.... 불안감을 견디기 위해 다시 나를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전 해변에서 그녀를 본 건 내 안에 꺼져있던 작은 불씨를 꿈틀 게 했다. 해 질 녘 걷기 운동으로 집에서 가까운 해변을 향해 무작정 걸었는데 나와 어느 지점부터 함께 걷는 여자가 있었다. 아이보리색 긴 머리에 짧은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의 그녀는 어느 지점부터 나와 함께 걷고 있었다. 해변에 도착한 그녀는 갑자기 입고 있던 옷을 훌렁 벗었다. 안에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그녀는 갑자기 바다로 뛰어들었다. 짐이라고는 스포츠 타월이 전부였다. 그녀는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다와 한 몸이 되었다. 붉게 내려앉은 석양 아래 그녀의 모습을 한참이나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내 안에 꿈틀대는 것을 깨달았다. 내게도 간절하게 있었지.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는 이국의 나라로 가서 생경한 도시가 주는 향기를 맡고 싶었지. 길거리에 흐르는 멜로디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온몸을 맡기고 싶었지. 그러다 끈적끈적한 옷을 벗어던지고 바다에 들어갔다가 햇볕 아래 몸을 천천히 말리고 싶었지.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하였다. 도대체 어느 순간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나를 재단하기 시작했고 쉬는 것에 불안감을 느꼈으며 때로는 쉬는 것에 죄책감까지 들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바다로 갈 때면 늘 아이들 뒤처리를 걱정하며 돗자리를 지켰다. 마음껏 쉬고 즐긴다는 것.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런 감정조차 잊고 살아야만 했다. 어쩌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견디기 위해, 나는 계속해서 집중할 무언가를 집착적으로 찾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무엇을 해야만 나를 둘러싼 이 모든 상황으로부터 나를 겨우 해방시킬 수 있었으니까.....



 

D- 나는 캘린더를 그만 세기로 했다. 얼마 남지 않은 방학을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아이들과 바다에 함께 몸을 맡기고 열심히 땀 흘리기로 했다. 동쪽으로 서쪽으로 피부가 거뭇하게 그을릴 때까지 돌아다니기로 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모습을 내 두 눈에 담고, 남편의 몫까지 거칠게 놀아줘야겠다. 그렇게 나는 장롱 한편에 넣어둔 나의 예쁜 분홍색 오리발을 꺼냈다.









뉴질랜드의 여름.

 


@Goat island

매거진의 이전글 실은 엄마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