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회의원의 임금체불에 관한 발언을 바라보며
최근 이언주 의원의 이른바 '막말'이 논란이 되고 있다. 또한 이언주 의원의 발언과 유사한 발언을 예전 새누리당 시절 당시 대표인 김무성 의원 역시 같은 발언을 한 바 있었다.
이런 발언들을 들으면 일반시민으로서 드는 허탈감뿐만 아니라 노무사의 입장에서 발언의 법적 의미를 생각하게 된다.
일반 대중의 인식에는 사업장에 임금체불·퇴직금 미지급이 있으면 "돈을 떼였다"라고 인식하게 된다. 위의 두 국회의원의 발언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발언이다. 그러나 이러한 인식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임금체불은 기본적으로 민법의 관점에서는 채무불이행에 해당하게 된다. (민법 제390조)
채무불이행은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채무)을 지급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그리고 채무불이행이 있다면 법원에서 이를 다투어야 한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근로자들은 임금체불 등이 있다면 바로 생각나는 것이 고용노동청이다.
임금체불이 있다면 법원으로 가야 하는데, 근로자들은 어떠한 권리로 고용노동청을 찾아가는 것일까?
근로기준법 제36조(금품청산) 및 제43조(임금 지급)에는 사용자로 하여금 근로자에게 임금 및 퇴직금을 지급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해당 규정에는 근로자가 퇴직한 경우에 14일 내에 임금 지급, 퇴직금 등 일체의 금품을 청산하라고 규정하며, 임금을 어떻게 어느 기간에 지급해야 하는지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위의 규정만 있다면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체불한다면 단순히 채무불이행에 해당될 뿐이다.
근로자가 고용노동청에 찾아가는 근거는 바로 근로기준법의 벌칙에 관한 규정 때문이다.
근로기준법 제109조【벌칙】
① 제36조, 제43조, 제44조, 제44조의2, 제46조, 제56조, 제65조 또는 제72조를 위반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② 제36조, 제43조, 제44조, 제44조의2, 제46조 또는 제56조를 위반한 자에 대하여는 피해자의 명시적인 의사와 다르게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위 조문은 근로기준법에서 정한 규정을 위반한 경우에 받는 벌칙을 정해 놓고 있다.
근로자는 이러한 벌칙을 근거로 고용노동청에 사업주의 '처벌'을 전제로 진정·고소를 제기하는 것이다.
(근로감독관의 모습: 명패에 특별사법경찰관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고용노동청의 근로감독관은 종종 "노동청은 돈 받아 주는 곳이 아니다"라는 발언을 한다. 조금 이상한 발언일 수는 있겠으나, 전적으로 맞는 발언이다.
근로자는 고용노동청에 사업주의 처벌을 목적으로 진정이나 고소를 제기하는 것이고 사용자와의 합의로 진정이나 고소사건을 취하하는 것이다.
쉬운 예를 들어 보자.
① 길을 가다가 A라는 사람이 B에게 폭행을 가했다.
② B는 경찰서에 찾아가 A를 처벌해 줄 것으로 민원을 넣거나 고소를 한다.
③ 사건 진행과정에서 A는 B에서 소정의 합의금을 지급하고 B는 해당 사건의 고소를 취하할 것으로 합의를 한다.
위의 예에서 A를 '사업주'로 B를 '근로자'로, 폭행을 '임금체불'로 바꾸는 등 임금체불 사건에 맞는 문장으로 적절히 바꾸어 보면
①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② 근로자는 고용노동청에 찾아가 사업주를 처벌해 줄 것으로 민원을 넣거나 사업주를 고소한다.
③ 사건 진행과정에서 사업주는 근로자에게 소정의 합의금(체불한 임금에 해당하는 액수 등)을 지급하고 근로자는 사업주에 대한 고소를 취하할 것으로 합의한다.
정리하자면, 근로기준법상의 임금체불은 형사처벌에 해당하는 사유이다.
사업주에게 "당신은 나에게 임금을 미지급하고 있으니 채무를 이행해라"라는 것과 "임금체불은 고소(진정)를 할 수 있는 사안이니, 피고소인으로 처벌을 받거나 나와 합의를 하자"라는 것은 다른 의미라는 것이다.
임금체불에 관한 두 정치인의 발언을 임금체불이 아닌 '폭행'으로 바꿔보자.
"(폭행을) 인생의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
"폭행을 당했지만 가해자가 살아야 저도 산다는 생각으로 경찰에 고발하지 않았습니다"
단어를 바꾸었을 뿐인데 뉘앙스는 전혀 다르게 와 닿는다. 임금체불도 폭행과 마찬가지로 엄연한 범죄행위이다.
다만, (단순 폭행과 마찬가지로) 반의사불벌죄에 해당되기 때문에 합의를 전제로 피해자가 가해자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는 것일 뿐이다.
왜 이렇게 발언의 뉘앙스가 다를까?
이것이 우리 사회가 임금체불을 바라보는 인식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의 인식에 임금체불에는 금전적인 의미가 커서 단순히 '돈 떼였다'라는 느낌이 크게 든다. 그래서 국회의원의 해당 발언이 '돈 떼였다'라는 느낌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근로자는 '임금을 목적으로 근로를 제공하는 자'를 의미한다. 즉, 임금이 생존의 원천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근로기준법에서도 임금체불에 대해서는 단순히 금전적인 의미에서 채무불이행뿐만 아니라 벌칙의 규정을 두어 근로자의 생존권을 보장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법을 다루는 국회의원이 임금체불을 바라보는 관점이 단순히 민법의 채무불이행 측면으로만 치우쳐져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를 달리 생각해보자 즉, 임금체불이 범죄행위에 해당한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해당 국회의원의 발언은 근로기준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범죄행위를 옹호하는 발언과 다름이 아닌 것이다.
얼마 전 임금체불에 대해서 공동체 의식 발언을 했던 국회의원이 이를 해명하는 발언을 했다.
이러한 발언이 얼마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