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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진 Feb 20. 2022

불안하다면_1

    

“저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들 앞에 나서거나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발표하고 질문에 답해본 적이 없습니다. 온몸이 굳어버리고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들 앞에 제 목소리를 드러낸다는 것을 생각만 해도 팔다리가 부들부들 떨립니다. 내성적인 성격이고 낯가림도 수줍음도 심하지만 이번 학기에는 꼭 자발적으로 손을 들어 교수님 질문에 답을 해보고 싶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심리학 수업을 시작하면서 자기소개서 과제에 “이번 학기가 끝나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질문한 적이 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다양한 바람을 적곤 했습니다. 이성 친구를 사귀고 싶다, 혼자 여행을 가보고 싶다, 운동을 열심히 해서 바디 프로필 사진을 찍겠다, 책 30권을 읽어 보겠다 등 재미있는 다양한 소망을 담습니다. 내용을 흐뭇하게 읽던 중 중 한 명(지연)의 글에 눈길이 갔습니다. 여러분이 조금 전 읽은 내용입니다.      

저는 수업을 할 때면 학생들에게 질문을 많이 건넵니다. 정답을 들으려 한다기보다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의견을 나누고자 하려는 시도입니다. 그동안 조용히 앉아 수업을 듣고 필기하는 것에 익숙했던 학생들은 질의응답과 토론 방식을 접하면 어색해하기도 하지만 곧 적응하고 자발적으로 대답을 하고 토론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곤 합니다. 


저는 지연이의 바람을 기억하고 있다가 학생들에게 질문을 건넬 때면 지연이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지연 학생, 이번 학기에 꼭 손들고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 혹시 이 질문에 답해볼 수 있을까요?’ 하는 눈빛으로 말이지요. 

저와 눈이 마주칠 때면 지연이는 매번 흠칫 놀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당황해서 눈을 크게 뜨고 금세 얼굴이 빨갛게 된 상태로 목소리를 내는 것보다 더 분명하게 표정으로 대답을 했습니다. ‘아니오, 아니오! 아닙니다! 저는 조용히 있겠습니다! 다른 학생이 대답하게 해 주세요.’ 지연이는 저만 볼 수 있게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고개를 저었습니다. 지연이의 표정을 이해한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저 역시 표정으로 답해주었습니다. ‘그래요, 괜찮아요. 이번 아니면 다음에 하면 되지요.’ 지연이와 저, 둘만 아는 대화를 나눈 후 다른 학생들에게 시선을 돌릴 때면 지연이는 숨을 크게 내쉬며 고개를 숙이곤 했습니다.      



몇 주가 흘렀습니다.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건네던 중 우연히 지연이가 앉은 쪽으로 시선이 향했는데 지연이 표정이 다른 날과 조금 달랐습니다. ‘앗! 나 이거 아는 내용인데! 잘 아는데, 어떡하지?’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당황과 갈등이 가득한 지연이의 모습을 보고 저 역시 표정으로 물었습니다. ‘지연 학생, 혹 아는 내용인가요? 오늘 한 번 도전해볼까요? 정답이 아니어도 괜찮아요.’  

제 표정을 읽은 지연이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고개를 움직였습니다. 평소 고개의 움직임이 강한 부정을 표현하는 가로 방향이었다면 그날은 세로였습니다. 고개가 양 옆이 아닌 위아래로 조용히, 천천히, 아주 작게 움직인 것입니다. ‘네. 한 번 해보겠습니다.’라는 의미였지요.  

지연이의 모습이 참 반가웠습니다. ‘좋아, 오늘 한 번 도전해봅시다. 내가 도와줄게요!’ 저 역시 고개를 끄덕인 후 지연이를 바라보며 천천히 물었습니다. “조금 전 제가 건넨 질문에 용기를 내서, 생애 처음으로, 아주 많이 떨리지만 손을 들어 대답해볼 사람 있을까요?” 


‘무슨 일이지?’ 평소와 다른 상황이라는 것을 느낀 학생들은 흥미로운 표정으로 나와 지연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정적이 흐르고, 지연이는 큰 결심을 한 듯 천천히 손을 들기 시작했습니다. 지연이의 무거운 팔이 지연이의 무릎을 떠나 귀 높이까지 올라오기를 기다려 주었습니다. 마침내 주먹 쥔 손이 이마쯤 도착했을 때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아! 김지연 학생이 손을 들었네! 맞지요? 좋아요, 편하게 얘기해봅시다!”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강의실에 처음 등장한 지연이의 목소리는 작고 여렸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는 누가 들어도 많이 긴장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큰 용기를 내어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기에 충분했지요. 지연이의 떨림과 큰 용기를 이해한 학생들은 나와 함께 지연이의 대답에 조용히 귀를 기울여주었습니다.  


 “어.., 그러니까... 제 생각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며 자신의 의견을 내어 놓는 것에 대한 불안감에 지지 않겠다는 지연이의 노력이 드디어 도전으로 이어진 순간이었습니다.   



아마 지연이에게는 인생에서 제일 긴 시간이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세심하게 귀를 기울여야 들을 수 있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간중간 말을 더듬기도 하고 자꾸만 잠기는 목소리를 가다듬느라 헛기침을 하기도 했지만 마무리까지 해냈습니다.      

“~~~ 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연이의 말이 끝나자 조용히 응원하며 대답을 듣던 많은 학생들은 미소를 지었고 “김지연 학생 잘했어요. 좋은 의견 잘 들었습니다.”라는 제 말과 함께 몇몇은 “와~~” 하며 박수를 쳐 주었습니다. 불안감을 이겨내려 노력한 지연이의 모습은 감동을 줄 만큼 훌륭했습니다. 지연이는 몇 주 동안 수업을 들으며 생각했다고 합니다. ‘아, 이곳은 실패해도 괜찮은 곳이구나, 잘 대답하지 못해도 창피를 당하거나 꾸지람을 듣거나 하는 곳이 아니구나’라고 말이지요. 그리고 ‘한 번 도전해볼까?’ 하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저와 다른 학생들은 긴장하고 불안해하는 지연이의 도전을 응원해주었던 것이지요.      


지연이는 수업이 끝난 후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아까는 심장이 가슴에서 목으로 올라와 뛰는 것 같았어요. 온 머리가 쾅쾅 울리더라고요. 너무 무섭고 떨리고, 내가 정말 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오늘도 도망가면 앞으로도 못할 것 같아서 손을 들었습니다.” 

“아주 잘했습니다. 대답도 훌륭했어요. 도전해보니 어때요?”

“잘한 것 같아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데요... 이상하게 자꾸 눈물이 나요...”

지연이는 상기된 얼굴로 눈물을 뚝뚝 이 뚝뚝 흐르는데 표정은 웃고 있는 지연이 모습이 참 예뻤습니다.       


첫 번째 도전 이후 지연이는 한 학기 수업이 끝날 때까지 두 번이나 더 대답을 했습니다. 안전한 곳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경험을 쌓으면서 발표에 대한 불안감을 극복해보겠다는 노력을 계속한 것이지요. 마지막 대답을 할 때는 목소리도 제법 또렷해졌습니다.      


지연이는 학기말 시험지를 제출하며 저에게 작은 메모를 건넸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일에 도전을 해보았습니다. 발표 내용이 얼마나 훌륭했는가 하는 것을 떠나, 성적을 떠나 그 자체로 큰 경험이었습니다. 용기를 낸 저 자신이 참 기특합니다. 이 시간을 기억하며 앞으로 강의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도, 졸업 후 사회에 나가서도 더 노력하고 시도해보려 합니다. 지금처럼 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을 하다 보면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일하는 것에도 걱정과 불안이 가득 찬 제 마음도 단단해질 수 있겠지요? 노력하겠습니다.” 




이전에 한 TV 프로그램에서 CNN에서 책임 프로듀서(킴 부이)를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CNN 업무는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하며 일의 속도가 정신없을 만큼 빠르고 그 안에서 리더로서 의사결정을 내려야 하는 긴장의 연속인데 게다가 킴 부이는 매우 내향적인 성격이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전 사람들 앞에서 말하거나 지금처럼 카메라 앞에서 말할 때 심장이 빨리 뛰고 정신이 없어요.” 하지만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마음이 컸기에 자신만의 방법을 찾았다고 합니다. “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비영리 단체의 봉사활동에 참여하여 대중 앞에서 말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습니다. 봉사활동이었고 돈을 받는 것이 아니었기에 부담을 줄일 수가 있었죠. 그렇게 대중 앞에서 말하는 것을 연습하며 그 능력을 직장에서도 적용하기 시작했어요.”      

프로그램은 킴 부이와 동료들이 회의실에 모여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대규모 설명회를 앞둔 킴 부이를 돕기 위해 동료들이 함께 자리하고 있는 상황에서 킴 부이는 말합니다. “금요일 오후인데도 모여 주셔서 고마워요. 뉴욕에서 있을 프레젠테이션에 앞서 여러분과 연습을 해보고 싶어 부탁을 드렸습니다. 100명이 넘는 영업 담당자들 앞에서 하게 되는 첫 프레젠테이션이라 흥분이 됩니다.” 킴 부이는 자신의 단점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자신의 성격에 대처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식을 찾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자존감에 대한 연구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결과가 있습니다. 자존감이 낮아서 올리고 싶다, 그래서 무언가를 잘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분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심리학 책도 읽고 상담도 받아서 자존감이 쑤욱 올라가면! 그러니까 지금은 아니고... 나중에! 3개월 후에!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 혹은 ‘나는 멋진 사람이야’라는 막연한 자기 암시를 반복하는 것보다 낮은 자존감은 있는 그대로 두고 일상생활에서 크고 작은 성공 경험을 늘리는 것이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연구자들은 설명합니다. 작은 부분이라도 무언가를 잘 해낸 경험을 쌓아가다 보면 자존감은 자연스럽게 올라간다는 의미입니다. 



불안감도 이와 같습니다. 불안감 자체를 줄이려는 노력, ‘앞으로 1년 동안 불안감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해보고 좀 나아지면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겠노라!’ 하는 당찬 계획, 혹은 ‘나는 불안하지 않다, 나는 괜찮다’라는 진짜 마음과는 정반대의 중얼거림은 기대한 것보다 효과가 작을 수 있습니다. 이보다는 안전한 곳, 안전한 사람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시도를 해보는 것이 더 좋은 방법입니다. ‘어, 해보니 괜찮네. 나도 할 수 있구나’ 하는 경험을 늘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의 불안과 부족함 인정하고 도움 요청하기. 경쟁과 평가가 없는 안전한 상황 속에서, 안전한 사람들 앞에서 연습해보기. 성공 경험 쌓아보기. 

당신과 그저 친한 사람이 아니라 당신의 노력을 긍정적으로 응원해줄 사람과 함께 연습해보세요. 당신의 불안감을 이해하고 응원해줄 사람을 찾으세요. 도와달라고 하면서 솔직하게 부탁해도 됩니다. ‘나 지금 무지 떨리는데도 노력하는 거거든. 그러니까 끝나면 그냥 잘했다고 해줘!’ 이렇게 말입니다. 조금 뻔뻔해져도 괜찮아요. 내 주변에 그렇게 함께해줄 사람이 없다면? 혼자서라도 해보세요. 노력하는 나를 응원하고 칭찬해주는 겁니다. “잘했어. 오늘은 여기까지. 내일 다시 해보자. 고생했으니 맛있는 밥을 먹어볼까!” 이렇게요. 어쩌면 나를 제일 주눅 들고 떨게 만드는 건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만이라도 벗어나 보세요. “해보자” 하면서 작은 것이라도 해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선 시도해보고 고칠 점을 개선해나가면 됩니다. 그러다 보면 조금씩 더 잘하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지연이도 CNN의 책임 프로듀서 킴 부이도 그렇게 했습니다. 걱정과 불안이 많은 저 역시도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어떤 일에도 떨지 않고 당당한 사람들을 부러워하고 내 성격은 왜 이렇게 약할까, 못났을까 하며 자책하는 것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성격도 있고 저런 성격도 있습니다. 못나서가 아니라 나는 그저 남들보다 불안을 많이 느끼는 성격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CNN의 킴 부이처럼 내 성격으로 잘 살 수 있는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으면 됩니다.       





주눅 들지 말고 하고 싶은 것을 하세요. 잘 못해도 괜찮은 곳이 어디인지, 당신이 불안해하는 것을 조금이라도 편안하게 시도해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인지, 당신의 노력과 도전을 좋은 마음으로 응원해줄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지 찾아보세요. 앞에서 살펴본 지연이가 한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한 학기 동안 꼭 해보고 싶은 것을 적어보라는 질문에 답을 적으며 지연이가 저에게 전달한 내용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겁이 납니다. 불안하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라는 조심스러운 메시지였습니다. 저는 도움을 주려 했고, 지연이는 상황을 훌륭히 활용했습니다. 작은 도전이었지만 멋진 경험이었다며 앞으로도 꾸준히 나아가겠다는 메모를 건넨 지연이를 지금도 기억하며 응원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약한 내가 어떻게 할 수 있겠어.”라고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불안한 성격을 극복해보겠다며 주먹 불끈 쥐고 처음부터 어려운 것을 다 하려고 하지도 마세요. 금방 지칩니다. 당신이 불안을 덜 느낄 수 있는 상황을 찾아 작은 것부터 시도해보세요. 사람들은 각자 다르니 나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찾아 나에게 맞는 속도로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조금씩 더 잘하게 될 거예요. 성취감도 꽤 클 겁니다. 


오늘부터, 지금부터.

불안감을 덜 느낄 수 있는 상황에 나를 있게 해 주고 

조금씩, 하나씩 시도해보면 어떨까요?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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