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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식주의자 Sep 24. 2021

열등감을 없애는 방법

 가끔 아주 거대하고 철학적인 질문을 포털 사이트에 검색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를 테면, ‘행복해지는 방법’이나 ‘걱정 없애는 방법’ 같은 것들. 포털 사이트에만큼은 절대 답이 없을 것 같은 인생 최대의 난제를 검색창에 심각하게 타이핑하는 내 모습을 발견할 때, 스스로도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온다.  


 얼마 전에 검색한 것은 ‘열등감 없애는 방법’이다. 열등감에 대해 말하기 위해선, 오랜 친구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야 한다. ‘열등감’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친구. 그 친구는, 요즘 말로 ‘사기캐(사기캐릭터)’였다. 나는 대학교 때 그 애를 처음 만났다. 그 애는 얼굴도 예쁘고 성격도 좋았으며 똑똑하기까지 한 명문대생이었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라 돈에 절절매지 않는 여유가 배어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애가 과시하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그 애는 인기도 많아서 주위엔 늘 사람들이 많았다. 원래 이렇게 완벽한 캐릭터를 만나게 되면 자동적으로 흠을 찾기 마련이다. 그러다가 뭐라도 걸리면,  ‘그래, 쟤도 사람이지’ 하면서 별안간 안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애에게는 도무지 흠이랄 게 없었다. 한 번은 그 애가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 나는 패배를 인정하는 흰 수건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너는 그런 것도 할 줄 아는구나…

 그 애가 자취하는 집에 놀러 간 날 창밖으로 서울 한복판의 야경을 내려다보며, 나를 싫어하던 친구가 그 애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며, 그 애가 괜찮은 남자와 더 괜찮은 남자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을 보며 마음 한 구석을 불편하게 하는 감정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건 다름 아닌 열등감이었다.


 학생 때는 학생이라는 동등한 신분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것들이, 사회에 나오니 눈에 띄게 드러났다. 내가 아등바등하며 힘들게 무언가를 얻으면, 그 애는 ‘그런 것쯤은 이미 갖고 있지’하고 비웃듯 더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고 내가 닿지 못할 곳으로 멀어졌다. SNS에 올라온 평범한 그 애의 일상 사진에서도 나는 나에게 없는 행복을 기어코 발견해냈다. 그렇게 열등감은 불쑥불쑥 찾아와 나를 쪼그라들다 못해 납작하게 만들었다. 그럴 때면 할 수 없이 잠시 그 애를 멀리했야 했다. 그 애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우리 사이는 나 때문에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 애에 대한 열등감이 더욱 괴로웠던 이유는 그 애가 늘 나를 응원했기 때문이다. 마음이 약해져 있을 땐 그 순수한 응원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넌 나한테 열등감을 느낄 필요가 없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거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 도대체 얼마나 못나질 거냐며 다시 괴로워졌다.  




  ‘열등감 없애는 방법’을 검색한 후, 광고 몇 개를 솎아내자 고민 글 몇 개가 눈에 띄었다. 그중 나와 비슷한 사연 하나가 있었다. 친한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껴서 자기도 모르게 친구를 멀리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친구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이런 감정이 드는 자신이 너무 싫다는 글쓴이에게 공감하며 글을 읽어 내렸다. 그런데 댓글들이 매서웠다. ‘못났다’ ‘찌질하다’, ‘열등감을 동력으로 삼아 발전할 생각을 해라’ 같은 질책이었다. 글쓴이를 은근하게 깔아뭉개며 우월감을 내비치는 사람들도 보였다. 평생 열등감이라는 감정은 모르고 살아온 사람들 같았다. 나는 궁금해졌다. 정말 모두가 이렇게 건강한 마음을 갖고 있는 건지. 나도 어찌할 도리가 없이 고개를 치켜드는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지. 역시나, 포털사이트에서 ‘열등감 없애는 방법’은 찾지 못했다. 그런 방법 같은 건 없는지도 모른다.        


 결국 열등감이 찾아올 때, 내가 하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굳이 그 마음에서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다. 며칠 동안 그러고 나면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땐, 그 생각이 ‘오늘 점심 뭐 먹지’ 보다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 때가 온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문제가 있을 때마다 뚝딱뚝딱 해결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가끔은 시간에 맡겨두고, 조금 못난 내 모습을 인정하면서, 부정적인 마음이 사그라들길 기다리는 시간들도 필요하지 않을까?


 덴마크의 오은영 박사, 심리학자 일자 샌드는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을까』에서 친구가 어느  갑자기 멀어지는 수많은 이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당신이 인생에서 성공을 거두면 기존에 교제하던 사람들 중에서 더 이상 당신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남을 부러워하는 것은 사실 괴로운 일입니다. 질투는 곧 결핍을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됐을까』, 일자 샌드


 마지막 문장에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통증을 느낀다. 친구를 부러워하는 것이 왜 이렇게 괴로운가 했더니 ‘질투는 결핍을 인정하는 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한 감정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타인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나에게로 돌려야만 하는 것이다. 결핍이 해결되지 않는 , 열등감은  결핍을 충족한 사람들을 숙주 삼아 평생 나를 따라다닐 테니까.

 열등감은 타인과의 비교에서 생기는 감정이라는데 결국 해결책은 나에게 었다. (어쩌면 인생의 모든 문제는 돌고 돌아 결국  자신과의 문제로 귀결되고 마는지도 모른다.) 결핍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언젠가는  누구라도 순수하게 응원해줄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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