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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OSTO LAB Oct 10. 2017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기사단장 죽이기(2)

돈 조반니와 기사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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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일이든 밝은 측면이 있어. 제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뒤쪽은 은색으로 빛나지."

"일일이 구름 뒤로 돌아가서 살펴보기도 번거로울 것 같은데."

"뭐, 일단 이론은 그렇다는 거야." 아마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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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시키씨는 따분하시지 않나요?"

멘시키가 미소지었다. "제가 기억하는 한 따분했던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따분할 겨를이 없었다고 할까요."

나는 감탄해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당신은 어떠십니까? 따분했던 적이 있습니까?" 그가 내게 물었다.

"물론 있죠. 수시로 따분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부가 된 것 같아요."

"따분함이 고통스럽지 않다는 뜻인가요?"

"아마 따분함에 익숙해져버린 모양이에요. 고통스럽게 느끼진 않습니다."

"그건 당신이 그림을 그리고자하는 강한 의지를 일관되게 갖고 있기 때문이겠죠. 그게 생활의 중심을 이루고, 따분한 상태는 이른바 창작 의욕의 모태 역할을 하는 겁니다. 만약 그런 중심이 없다면 나날의 따분함은 분명 견디기 어려울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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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그저 흙덩어리란 사실에 공포를 느끼시지는 않나요?"

"저는 그저 흙덩어리지만, 썩 나쁘지 않은 흙덩어리이기도 합니다. 건방진 소리지만, 제법 쓸 만한 흙덩어리라고 해도 좋을 겁니다. 적어도 어떤 종류의 능력을 타고났습니다. 물론 제한된 능력이지만, 그것도 능력임은 확실하지요. 그러니 살아 있는 동안은 열심히 살 겁니다. 스스로 어떤 일을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습니다. 따분할 틈은 없어요. 제가 공포나 공허함을 느끼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보다 따분할 틈 없이 사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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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단장 죽이기>라는 한 폭의 그림이 이데아를 이 집으로 불러들였는지도 모른다. <기사단장 죽이기>라는 그림의 포장을 푼 내 행동의 이른바 보상 작용으로 기사단장이 내 앞에 나타났는지도.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무엇이 원인이고 무엇이 결과인지 판단하기 점점 힘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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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유로운가? 그런 물음은 내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손에 잡히는 확실한 현실이었다. 믿고 기댈 수 있는 탄탄한 지면이었다. 꿈속에서 아내를 범하는 자유가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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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다 마사히코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나는 19세기 러시아의 지식인처럼 스스로 자유로운 인간임을 증명하기 위해 뭐든 말도 안 되는 짓을 저질러야 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를테면 어떤 일? 이를테면...... 어둡고 깊은 구덩이 아래 한 시간쯤 갇혀 있는다거나.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그것을 실제로 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멘시키 아닌가. 그가 행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도 안되는 짓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표현해도, 다소 상식을 벗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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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둡고 두꺼운 구름도 그 뒤쪽은 은색으로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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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다. 때때로 그렇게 원점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지금의 저를 만든 장소로. 사람이란 편한 환경에 곧바로 익숙해져버리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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멘시키씨 또한 시간과 공간과 개연성에 매인 채 살아가고 있다. 이 세계의 모든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살아 있는 한 우리는 그 제약에서 도망칠 수 없다. 말하자면 우리는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천지사방을 둘러싼 견고한 벽 안에서 살아가는 셈이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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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는 나 자신을 꽤 평범한 인간이라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말이야."

"그건 좀 위험한 생각인지도 몰라."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게?"

"나는 평범한 인간입니다, 라고 자기 입으로 말하는 인간을 믿어서는 안 된다고 스콧 피츠제럴드가 무슨 소설에 썼지."

"그 말은 '아무리 범용할지라도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뜻이야?"

"그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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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이 하늘에 바짝 다가가 있었다. 나는 그 똑바른 선을 끝에서 끝까지 눈으로 좇았다. 그토록 길고 아름다운 직선은 어떤 자를 써도 인간의 손으로는 그을 수 없다. 그리고 그 선 아래에는 무수한 생명이 약동하고 있을 터였다. 이 세계는 무수한 생명과, 그리고 그것과 같은 수의 죽음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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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 속에서 생각은 의미가 결여된 방향으로 제한 없이 뻗어나갔다. 혹은 방향성이 없는 방향으로, 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마음대로 뻗어나가는 그것을 제어하기는 불가능했다. 내 생각은 이미 내 손을 벗어나버렸다. 빈틈없는 어둠 속에서 자기 생각을 장악하기란 간단한 일이 아니다. 생각은 수수께끼의 나무가 되어 어둠 속으로 자유롭게 가지를 뻗어나간다(은유다). 어쨌거나 나는 자아를 유지하기 위해 연달아 무언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뭐가 됐든 상관없는 무언가를. 그러지 않으면 긴장한 나머지 과호흡을 일으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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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여기 있는 모든 것은 연관성의 산물이지 않은가. 절대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 고통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이 촉수도 무언가의 메타포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빛은 그림자고, 그림자는 빛이다. 그렇게 믿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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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지역을 돌아다니던 시기에 나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다. 지극히 고독하고, 서글프고, 답답한 심경을 안고 있었다. 여러 의미에서 스스로를 상실해버렸다. 그런데도 나는 여행을 이어가며 수많은 낯선 이들 틈에 섞여, 그들의 일상 속 여러 장면을 통과했다. 그것은 그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지닌 일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과정에서 -대부분 무의식적으로- 몇 가지를 버리고, 몇 가지를 건졌다. 그 장소들을 지나온 나는 그전과 조금이나마 다른 인간이 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을 읽는 내내 신경이 예민해진다. 작가가 의도한 그대로 그 속에 빨려들어가는 기분.

*책과 미술작품의 조합은 또 하나의 예술분야를 창조한다. 인생에서 제일 사랑하는 두 가지의 조합.

*주인공처럼 구덩이 속에 빠진 기분에, 진짜 '나'는 누구이고 내가 원하는 어둠의 끝은 무엇인지.

*또한 하루키 작품은 항상 기분 좋은 과제를 안겨준다. 좀 더 알아보고 싶은 작품 속 모티프들 몇 가지.

- 오페라 <돈 조반니>

- F. 스콧 피츠제럴드 <위대한 개츠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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