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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피운 상대와 헤어져야 할까?

by 니모

블로그에 글을 쓰기까지 이제는 참 많은 결심을 해야 하는 것 같다. 나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을 때가 좋았던 것 같긴 한데. 어쨌든 올해가 가기 전 어떤 이야기들을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 연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것은 2024년 10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이었다. 그 후로도 내 마음은 좀처럼 상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고 상대 역시 비슷한 마음이었던 것 같다. 다만 조금 달라진 것은 외도 상대와의 인연이 생겼기에 그것을 정리하는 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나는 버려지는 것을 가장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나 보다. 버려지는 것보다 차라리 어떻게든 옆에 붙어있고자 '폴리아모리(다자연애)'라는 개념을 불러왔다. 나는 이 개념을 인류학을 공부하던 학부시절 처음 접했고 대략 어떤 개념인지 머리로 이해는 했지만 내 삶과는 거리가 먼 것이라고 생각했다.


1:1 관계가 익숙했고, 또 그런 관계를 지향하고 있는 나에게 연인의 정리되지 않은 외도 상대는 차라리 폴리아모리의 개념을 차용해 셋이서 만나보자,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실천한 기간은 딱 3개월이었다.


그 6월에서 9월까지의 그 3개월 동안 나는 매일같이 정말 질투라는 고통스러운 감정과 싸워야 했다. 하지만 내가 이 관계를 버틸 수 있었던 건, 적어도 나의 연인이 외도 상대보다는 나를 조금은 더 사랑하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매일 챗지피티에게 도대체 이런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냐고 물었고 어쨌든 폴리아모리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컴펄션(compersion: 다른 사람이 사랑하거나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며 질투 대신 기쁨을 느끼는 감정)'이었는데 이건 내가 나의 연인뿐만 아니라 외도 상대 또한 같은 마음으로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예수나 부처가 아니고서야.. 정말 해탈하지 않고는 실천하기 어려운 것이 폴리아모리이지 않을까, 나는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더 이상의 고통을 피하고자 관계를 종료하기로 결심했다.


나는 혼자가 되었고 연인은 외도 상대와 1:1 관계를 이어가 보기로 했다. 잘 사나 보자, 흥. 이런 마음으로 나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시간을 보냈는데 결국 우리는 한 달여 정도가 지나 다시 서로에게 돌아왔다. 너무 허무한 결론인가?


우린 서로를 이만큼이나 인생에 중요한 누군가로 생각하게 될지 몰랐다. 내가 없는 동안 그는 나의 빈자리가 얼마나 컸는지, 그리고 폴리아모리가 아닌 폴리아모리를 그나마 할 수 있었던 건 외도 상대와의 불균형한 관계에서 내가 보완하는 영역이 컸기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나는, 그냥 단순하게, 여전히 나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랑할 수 있냐고 묻는다면 그건 나도 잘 모르겠다. 그저 내 마음이 그런 것을 어찌하겠는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이별을 종용하고 나 역시 그것을 노력해 봐도 여전히 불가능한 것을. 나는 내 마음을 존중해 주기로 마음먹었다.


행복한가 묻는다면 지금 나는 그렇다. 우리는 다시 1:1 관계로 돌아왔고 부서진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오히려 더 건강한 상태다. 상대는 바람이라는 큰 사건을 겪으며 훨씬 더 많이 무너지고 피폐해졌다.


연인의 부모님에게도 이러한 이슈가 있었다는 사실을 나는 연애 초기에 알게 되었고 세대를 거슬러 이어지는 심리적인 문제가 우리 대에서는 해결을 보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그것은 나의 부모님의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대대로 내려오는 각자의 가족과 자신의 심리적 문제를 더 이상 계승하지 않고 이 생을 잘 마무리하게 되는 것.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지지, 그리고 그걸 절대적으로 응원하는 누군가라고 생각한다. 세상에 나를 사랑하는 단 한 사람만 존재하면 우리는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지 않은가?


그러한 믿음으로 나는 나의 연인을 사랑한다. 마치 자식처럼. 당사자가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겠지만, 나는 이 사랑이 결국 어떤 아픔을 치유하고 그것이 우리 둘을 넘어선 모두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좋은 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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