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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May 04. 2020

재난소득 덕분에 시댁과의 가족사진

버킷리스트 하나 완성

2년 전 나의 버킷리스트를 쓸 기회가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가족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버킷리스트로 적었더래도 실행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뤄지지 않는다. 가족사진을 안 찍는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돈도 들고 시간도 들고 게다가 가족과의 시간을 조율해야 하는 게 귀찮아서 차일피일 미뤄왔다. 


마음만 먹고 미루고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고 싶은 걸 하고 살자고 얘기하는 나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사실은 나의 '선택'이라는 걸 아는가? 


항상 아직은 모르겠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직 준비가 덜됐다며 뒷걸음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도대체 그때는 언제 온다는 건가? 다 늙어서? 그런 식으로 도망만 다니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당신은 아무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나? 그렇게 핑계 대고 물러난 것도 당신은 선택을 한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게 물러난 순간에도 시간은 흐른다. 당신은 당신 인생의 매 순간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당신이 선택하지 않고 지리멸렬하게 군다고 삶이 당신을 기다려주거나 봐주지는 않는다.

- 유수연의 독설 179쪽


와... 이 글을 읽는데 너무 찔렸다. 언젠가는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미루는 것. 조금 더 준비되면 해야지~라고 생각하는 것.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은 아무것도 안 하기로 선택한 거라는 것. 내가 미루는 순간에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는 것. 나는 내 인생의 매 순간에 책을 져야한다는 것. 이런 생각으로 나의 과거를 돌아보니 부끄럽기 그지없다. 






나는 미루기 대장이었다. 끝까지 미루다가 마감 직전에 겨우 했다. 막상 시작만 하면 되는 걸 시작도 전에 지레 부담을 느끼고 '하기 싫다 하기 싫다'를 외치다가 폰질을 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이번 가족사진도 마찬가지다. 당장 찍어야 할 절체절명의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시부모님에게 말씀드려야 하고 스튜디오도 골라야 하고 날짜도 잡아야 하고… 어휴… 


제일 싫어하는 게 쇼핑이다. 정보가 너무 많아서 확인하고 결정하는 게 너무 귀찮다. 고민할 필요가 없이 딱 하나의 정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평생 남는 가족사진인데 제대로 알아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시작도 전에 나에게는 꼬인 실타래 같았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해. 스튜디오가 너무 많은데 어쩌지?' 그러고는 미뤄지기를 2년째였다.


다음 주에 이사를 간다. 사실은 주택으로 이사 가고 싶다 생각만 해오기를 몇 년째였는데 아이들 초등학교 가기 전 이사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상황에 닥치자 결정을 빨리 하게 됐다. 이번에 나온 재난소득지원금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만 사용 가능했다. 당장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큰돈 나갈 일을 생각해보니 가족사진이 딱이었다. '마음만 먹고 있던 건데 이번에 써야겠구나…'라고 생각하고 스튜디오를 알아봤다. 모든 지역정보의 집합소 맘카페에서 ‘가족사진’을 검색하니 가까운 곳의 스튜디오가 딱 나온다. 알아보는 거 귀찮아하는 내게 정말 딱이다. 생각난 김에 전화를 걸었다. 가능한 날짜를 확인했다. 시어머님에게 말씀드렸다. 


'재난소득 나왔는데 가족사진 찍는 거 어떠세요? 4월 30일과 5월 2일이 가능하데요 어머님.'


어머님에게 공을 넘기고 며칠 까먹고 있었는데 ‘며칠에 찍니? 2일이 어떠니?’라고 카톡을 보내셨다. 완전히 까먹고 있었는데! 당장 날짜를 예약했다. 2년을 미뤄왔던 일인데 며칠 만에 진행됐다. 그리고 드디어 버킷리스트였던 가족사진을 지난 주말에 찍었다. 


웨딩사진을 안 찍었다.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해서 안 했다. 만삭 사진도 안 찍었고 아이들 성장앨범도 안 찍었다. 둘째 50일 사진은 무료로 찍어준다 해서 찍었는데 찍고 나니 너무 마음에 들었다. '왜 허례허식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 가족의 가장 예쁠 때의 모습을 소중하게 담을 수 있는 시간들을 왜 귀찮다고 미루기만 해왔을까?' 후회가 남았다.

 





우리 아이들과 우리 가족들의 사진을 찍는 것도 좋았지만 시어머님, 시아버님 두 분의 사진도 찍었다. 우리 남편과 도련님, 다 큰 형제의 투샷도 찍었다. 이번 가족사진이 아니었으면 그렇게 찍을 기회가 또 있을까. 여러모로 잘한 일이었다는 생각에 지난 주말의 기억이 오래오래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 


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미루고 있는 것들이 참 많다. 꼭 해야만 하는 상황이 아니면 자꾸 미루게 된다. 미뤄야 할 이유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당장 해야 하는 급한 일들도 늘 산더미이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재난소득과 이사라는 상황 덕분에 찍어야 하는 이유가 생겨서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실행조차 하지 않고 있는 나의 버킷리스트가 많이 남아있다. 그중에는 건강검진처럼 정말 해야만 하는 일인데도 미루고 있는 것들도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나의 선택이라는 걸 알게 되니 나는 정말 게을렀다는 생각이 든다.


하자. 하자. 어떤 일이 하고 싶다고 생각이 들면 그때가 가장 좋은 기회다. 상황이 준비되기만을 기다리지 말자. 내가 상황을 만들고 선택을 하자. 핑계 대고 물러나 봤자 남는 건 나의 후회다. 지금이 딱 적기다. 하자. 하자. 하자.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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