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타운하우스로 이사했다. 도심에 있으니 전원주택도 아니고, 외따로 집이 아니니 단독주택도 아닌, 타운하우스가 적당한 단어 같다. 네덜란드처럼 집의 측면들이 서로 붙어있는 구조로 '타운'을 이룬 동네이다.
새벽에 일어나니 새소리가 반겨준다. 새벽 공기가 찬 5월이지만 숲에서 흘러나오는 냄새가 좋아 베란다를 활짝 열어놓았다. 어젯밤에 아이들을 재울 때도 새소리가 울렸었다. 아침에 울리는 새소리와는 다른 울음소리 같다. 오늘 밤에는 더 귀 기울여 봐야겠다.
초록을 좋아한다. 어느 누가 싫어할까 싶지만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유독 리액션이 큰 나를 본다. 숲이나 나무에서 받는 기운이 내가 큰 편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신혼 첫 집은 남편이 정했다. 거실 베란다로 야구장과 탁 트인 하늘이 보였다. 두 번째 집은 1층이었다. 거실과 부엌 창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보였다. 그 초록나무들을 볼 때마다 내 마음도 말랑말랑해졌었다. 어제까지 살았던 세 번째 집은 6층이었다. 집을 사서 갔는데 투자성을 따지다 보니 1층은 제외했었다. 두 번째 집보다 넓고 화장실도 두 개였다. 어제 짐을 모두 빼고 보니 '이렇게 넓었구나~ 이 집에서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집 거실 정면에서는 아파트만 보였다. 하지만 소파 쪽으로 방향을 돌리면 야트막한 동산과 나무, 아파트 사이의 하늘이 보였다. 시야를 가로막는 아파트를 보다가 잠시만 고개를 돌려도 '참 좋다~'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나는 '뷰에 상당히 영향을 받는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작년에 말레이시아 몽키아라에서 한 달 살기를 했었다. 에어비앤비로 집을 구했는데 상당한 고층이었다. 근방에 고층건물은 우리가 사는 건물 하나였다. 바깥으로는 주택들도 보이고 웅장한 모스크도 보였다. 그때 한국은 미세먼지로 몸살을 앓을 때였다. 맑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 자연을 누리고 있는 것이 정말 감사했었다. 저 멀리로는 쿠알라룸푸르 도심이 보였다. 쿠알라룸푸르 랜드마크 건물들이 한눈에 보이는 멋진 곳이었다.
고층에 살아본 적 없는 나는 사람들이 고층 뷰~ 고층 뷰~할 때 어떤 느낌일까 궁금했는데 말레이시아에서 알 수 있었다. 웅장하게 떠오르는 아침해, 노을 지는 저녁, 시간마다 달리 전해지는 하늘의 기운까지... 말레이시아 매력보다 고층의 매력을 마음껏 누린 한 달 살기였다.
그런 매력을 느끼고 오니 나는 더욱 뷰에 욕심이 났다. 아직 어린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나무 뷰의 주택으로 가고 싶어 졌다. 사실 이런 고민은 이사할 때마다 했었다. 5년 전 이사하면서 주택을 알아봤었다. 땅콩주택 시초자 이현욱 건축설계사님 댁에도 가봤었다. 우리 금액 선에서 맞는 집을 알아보다가 외따로 주택 계약 직전까지 갔었다. 계약하기 전에 부모님에게 집을 보여드렸다. '이 금액에는 너희가 안 사면 절대 안 팔릴 집이다~'라고 하셨다. 주택 로망에 눈이 어두워 현실적인 감각을 모두 잃어버렸던 걸까. 여차저차 집주인과 계약조건이 오가는 중에 거래를 하지 않았다. 이럴 바에는 우리가 직접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사 기한이 촉박해 급히 구한 곳이 1층 빌라였다.
결혼한 지 만 7년이 안 되는 기간 동안 3번의 이사와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를 하면서, 집에서 내가 얻고 싶은 감각에 대해 키워갈 수 있었다. 5년 전에는 로망만 있었지 현실감각은 제로였는데, 부동산 투자에 대해 공부하면서는 경제감각도 더하게 되었다.
3번의 이사,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경험 덕분에 어제 드디어 4번째 집에 이사를 왔다. 1층엔 현관과 주방, 2층엔 거실과 안방, 3층엔 아이들 방과 부모님이 오시면 머무르실 방, 4층은 다락방...
어제 하루만 해도 계단 오르락 내리락을 수십 번 했다. 전에 살던 집과 구조가 달라 가구 배치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아들 똥기저귀를 갈아주는데 아이들 방이 있는 3층에서 쓰레기통이 있는 1층으로 이동해야 했다.
이사하면 돈 천 깨지는 건 우습다더니 정말로 하루 만에 돈 천은 나간 것 같다. 어제까지 살던 집은 우리가 집주인이었고, 어제부터 살기 시작한 집은 남의 집이다. 굳이 우리 집을 놔두고 남의 집에 살기 위해 천만 원 가까운 돈을 쓰는 게 맞는 건가 어제 하루는 많은 생각이 들었다.
3번의 이사, 말레이시아 한 달 살기, 부동산 투자 공부하며 축적한 경험 끝에 4번째 집으로 '타운하우스'를 결정했다. 나의 선택이 틀린 것이었을까 봐 어제 하루 종일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사를 마치고 시부모님이 오셨다. 평소 시골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셨던 시어머님은 거실 테이블에 앉아서 보이는 숲이 참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았다. 1차 안도~^^ 이사하느라 진 빠져서 힘들어하던 남편도 기운 차리고 아이들과 여느 때보다 더 격하게 놀아도 아랫집 눈치 보이지 않는 상황에 2차 안도~^^ 집 보러 올 때만 해도 혼자서 계단 내려오는 게 무섭다며 손 잡아 달라던 4살 둘째가 하루 만에 계단에서 콩콩콩 뛰는 모습을 보면서 3차 안도~^^ 어젯밤 아이들 재우며 들리던 새소리에 타운하우스 살이에 대한 기대감이 몰랑몰랑 올라왔다.
오늘 아침 5시에 일어나 베란다 문을 활짝 열고 브런치에 글을 쓴다. 평소라면 음악을 들었을 텐데 오늘은 새들이 연주를 해준다. 미래형 극장은 소리뿐만 아니라 냄새까지 비슷하게 들려준다고 했는데, 새소리와 숲 냄새가 나는 우리 집이 바로 미래형 극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사할 때마다 돈 천 깨지는 건 정말 우습다. 양쪽 중개소 복비에, 도배, 청소... 그리고 구조에 맞춰 가구를 버리거나 사다 보면 럭셔리하게 인테리어 하지 않아도 금세 홀라당 통장이 털린다. 7년도 안 된 기간에 4번의 이사를 했으니 이사로 인해 쓴 돈도 꽤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이사하면서 새로운 기회들을 많이 만났다. 돈의 기회도 있었고 경험의 기회도 있었다. 이사로 쓴 돈보다 훨씬 큰 것들이었다. 어제 하루도 통장 털리는 소리에 조마조마했지만... 사실 앞으로의 2년이 훨씬 기대된다. 다른 걸 떠나 아이들이 뛰고 싶은 대로 뛰고, 매일 내 영감을 깨우는 숲을 바라볼 수만 있다 해도 그 값어치는 충분히 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