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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차약사 May 15. 2020

[타운하우스+6일] 4살 아들이 옆집 나무를 부러뜨렸다

타운하우스 2년 실험 중

2020년 봄, 아파트에서 타운하우스로 이사 왔습니다. 6살 딸, 4살 아들을 키웁니다. 뛰고 싶은 아이들을 위해 뛸 수 있는 집으로 이사 왔습니다. 






4일 전에 이사 왔는데 아직 가스 연결을 안 했다. 전기레인지를 써볼까 하고 설치를 기다리는 중이다. 가스가 없는 김에 마당에서 버너로 요리해 먹는 요 며칠이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가고 혼자 맞은 점심시간. 냉동고를 뒤지니 짜장 소스가 나온다. 마당에 의자와 테이블을 펼치고 버너에 불을 켠다. 물 담은 냄비를 올리고 짜장 소스를 데운다. 짜장 소스가 다 데워지면 이번엔 프라이팬을 올리고 계란 프라이를 한다. 계란 프라이 올라간 짜장밥과 김치에 불과하지만 숲 속 마당에서 먹으니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책 한 권까지 내 앞에 있으니 리조트에 놀러 온 기분이다. 




럭셔리한 혼밥 중~^^





갑자기 옆집에서 사람이 나온다. 옆집과 연결된 마당 중간에 나무 울타리가 있다. 나무 키가 높지 않아 옆집에서 사람이 나오면 다 보인다. 이사 와서 처음 뵙는다. 떡 맞추고 인사드린다는 게 여즉 미뤄졌다. 


옆집 남편이라고 해야 할까. 옆집 아저씨라고 해야 할까. 이웃에게 호칭을 붙여야 할 정도로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어서 낯설다. 처음 살던 집의 이웃은 연세 있으신 분들 이어서 ‘옆집 아주머니’였다. 두 번째 집은 거의 마주친 적이 없기 때문에 호칭이 무의미했다. 세 번째 집의 이웃도 우리보다 연세가 있으셔서 ‘옆집 아주머니’, '옆집 아저씨’ 었는데… 비슷한 연령의 가정과 이웃 맺기는 처음이다. 최소한 2년간은 자주 마주칠 사이라고 생각하니 '적절한 호칭'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 울타리 너머가 옆집이다






일단은 '옆집 아저씨'라고 해본다. 인상이 푸근한 옆집 아저씨는 작업복을 입으신 채로 마당에 나오셨다. 손에는 기다란 막대가 들려 있었다. 막대 끝은 날카로운 낫이었다.


“안녕하세요~ 식사하시는 데 죄송합니다~”


본인 집 마당에 나오신 건데도 죄송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친절하신 옆집 아저씨. 


“나무에서 벌레가 비 오듯이 떨어져요~ 가지를 좀 잘라내려고요~ 벌레 안 떨어지세요?”


벌레가 비 오듯이 떨어진다고?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 나지만 비처럼 내리는 벌레는 사양하고 싶은데… 다행히 아직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저 나무가 밤나무예요. 가을에 밤송이가 떨어지면 애들이 다칠 것 같아요.”


마당에 밤송이가 있길래 '밤나무도 있나 봐~'라며 좋아했는데 머리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건 미처 생각지 못했다. 마당에서 놀고 있다가 날벼락처럼 밤송이를 맞으면 너무 아플 것 같다. 옆집 아저씨는 기~다란 막대기로 쓱싹쓱싹 낫질을 하시며 가지들을 쳐내기 시작하셨다. 그 소리가 시끄러웠던 건 아니지만, 가지치기하는데 내가 신경 쓰이실까 봐 집 안으로 들어왔다. 






저녁에도 아이들과 캠핑놀이~ 이 자체가 아직은 재미난다~ ^^





아이들을 하원 시켜 집에 왔다. 마당에서 소리가 들려 내다보니 옆집 아저씨가 또 가지치기를 하신다. 이번에는 두 딸도 함께 나와 있다. 우리 딸보다 언니도 있고 친구도 있다. 옆집 아저씨 인상도 좋으시더니 아이들도 귀여운 인상이 그대로 닮아있다. 아이들에게 인사했다. 아이들이 밝다. 나이도 얘기하고 이름도 얘기해준다. 집안에서 간식 먹고 있는 우리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다. 유치원 친구, 사촌언니들 말고는 이렇게 친구를 사귀어 본 적 없는 첫째는 쑥스러워한다. 하지만 옆집 언니가 누에 벌레를 보여주니 좋아한다. 나에게 귓속말로 얘기한다. “언니한테 발레 보여주고 싶어~” 발레를 배운 적 없지만 집에서 춤을 추면 온 가족이 물개 박수를 쳐주기에 자신이 발레를 굉장히 잘한다고 알고 있는 우리 딸. 언니에게 자신의 장기인 발레를 보여주고 싶다는 딸이 너무 귀엽다. 





아이들 방. 딸 침대 너머로 숲이 보인다. 아침에 눈뜨면 가장 먼저 숲을 보게 된다.






현관문은 별개로 있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마당을 통해 옆집으로 갈 수 있다. 그 정도로 가까운 곳이니 오늘의 인연이 좋은 인연으로 잘 이어지길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저녁도 먹어야 하고 앞으로 서서히 친해지면 되니깐 집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빠직~!”


우리 아들이 옆집 조경수를 밟아서 가지 2개가 부러지는 소리다. 


“안돼!”


연이어 들리는 옆집 아저씨의 절규…(절규까진 아니지만 내 귀에는 너무 큰 슬픔이 묻어났다.) 


우리는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마당에 낙엽도 수북할뿐더러 마당의 상태가 태초의 모습 그대로이다. 반면 옆집은 낙엽도 없이 깨끗하고 바위틈 사이에는 꽃을 심었다. 꽃 주위 흙들은 방금 사람의 손이 지나간 것처럼 깨끗하게 다져있다. 열심히 물을 주면서 활짝 피는 계절을 기다리고 있었다. 조경수 하나하나에도 관심과 사랑을 그득 준 모습이 한눈에 느껴졌다. 아마 마당에 가족의 추억을 열심히 만들고 있었으리라. 그런데 우리 아들이 소중한 조경수 한 그루를 한순간에 부러뜨리고 만 것이다. 





2년 뒤가 되면 어떤 마음이 들까. 지금의 설렘이 여전할까. 지긋지긋한 계단이라며 아파트로 도망가게 될까.






옆집 아이들과 추억을 만들 상상 속에 젖어들 때쯤 찾아온 현실. 친해지기 전에 피해 안 주는 것부터 잘 알려줘야겠다는 생각...  과연 옆집과의 관계는 어떻게 될까. 현관문을 마주 보는 다른 옆집은 아직 비어있는데 과연 어떤 가족들이 이사 오게 될까. 







아들이 나무를 부러뜨린 순간 흐뭇한 상상이고 뭐고 당장 집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옆집 아저씨에게 연신 죄송하다 말씀은 드려보지만, 부러진 조경수처럼 마음에도 상처가 나신 건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앞으로 2년 동안 죄송함을 갚을 기회가 많이 있기를 바라본다. 


“엄마 언니랑 더 놀고 싶어~” 

들어가자고 하는 내게 딸이 귓속말을 한다. 


'그래~ 부러진 나무는 다음에 엄마가 다른 나무로 갚아드릴게~ 너희는 옆집 언니랑 친구랑 서로 재잘재잘 놀면서, 귀여운 작당도 해가면서 풍성한 추억을 만들며 자라기를... 

엄마는 진심으로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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