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구르르 Oct 24. 2022

애쓰지 않는 사랑

케이팝, 재즈, 라틴, 발레, 탄츠 플레이를 거쳐 훌라를 만나다

     차였다. 막걸리  잔에 거나하게 취해서 그렇게 살면  된다는 말만 반복했다고 한다. 자고로 술은 주종을 불문하고 빈속에 들이킬  위벽을 타고 내려가는 짜르르한  잔이 제일이라는 지론으로 그날도 두부김치를 먹기 전에 술잔에 손을 대버린  패착이었다. 조금 변명해보자면 당시 지독한 상사병을 앓던 나는 혈중 알코올 농도가 빠르게 치솟기에 최적의 상태였다. 그날도 저녁 약속 생각에 이불을 차며 새벽  시까지 잠들지 못했고 온종일 당근 스틱 두어 개만 집어먹고도  생각이 없었다. 두부를 좋아한다는 상대방은  나온 따뜻한 두부를  점씩 음미하며 알알이 몽글몽글한 식감에 감탄했다. 그가 두부를 좋아하는 만큼이나 나는 그를 좋아했으므로 상대방의 얼굴을 보는데 정신이 팔려 두부든 김치든 손을  생각도  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하루에  시간   출근하고 하루에 겨우   분량의 식사를 소화하는  상태는 지난  주간 지속되고 있었으므로굉장히 취해버렸다.


잘해보려고 할수록 이상하게 상황은  꼬이기만 했다. 단백질을 챙겨 먹는다고 해서 닭고기 오마카세를 권했는데 시큰둥해 보였다. 나중에 보니 케이크도  곱창도  먹는 사람이었다. 미래를 생각해본  있냐는 질문에 ‘(이미 결혼해서 딸은 대학 보내고 우리는 여유롭게 은퇴  생활을 즐기고 있는 시점까지 상상했지만 지금은 앞에 앉아계신 것만으로도 심장이  밖으로 튀어나올  같아서) 제가 그럴 여유가 없어요…’라고 답했다가 자기는 그런 사람들이 제일 이해되지 않는다고 쿠사리를 들었다. 코로나에 걸렸대서 배달 쿠폰을 보냈는데 배달 앱은 사용하지 않는다고 하고, 격리기간이 끝나면 얼굴을   있을까 싶었더니 그다음엔 내가 확진되었다.

생각한 거랑 다르게 말도 행동도 자꾸 헛나갔다. 누가 대신 손을 움직여서 가능한 모든 선택지 중에 가장 나쁜 것만 고르게 되는 것 같았다. 술에 취해 젊은 꼰대의 정석 같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결정적이었겠지만. 공교롭게도 훌라를 배우기 시작한 첫날에 찾아온 봄날의 사랑은 그렇게 맨 정신과 함께 떠났다. 좋아하는 동안 하늘에 둥실 떠 있던 마음이라 차인 후 겪게 되는 감정의 낙차도 컸다. 한참 동안 자신을 탓하다가 신 포도 바라보는 심정으로 자신을 위로하던 나는 기도했다. ‘다음엔 애쓰지 않는 사랑을 하게 해 주세요!’


돌이켜보면 고군분투한 사랑의 역사가 꽤 깊었다. 무얼 하든 매번 진심인 탓에 사람 말고도 여러 대상에게 마음을 주었다. 그중 꽤 오랜 기간 애를 쓴 것으로는 춤이 있다. 어떤 춤이든 밀고 당기는 상반되는 움직임이 힘 있고 조화롭게 작용해야 한다. 하지만 워낙 몸이 부드러운 데다 코어 근육이라곤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려운 몸은 힘을 줘야 할 때 빼고, 빼야 할 때는 더 빼서 어떤 춤을 춰도 쫀득한 맛이 없었다. 잘 추지는 못해도 몸을 움직이는 방식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해방감이 있었기 때문에 이 춤 저 춤을 끊임없이 기웃거렸다.  

 박자 안에서도  번씩 표정이 바뀌는 케이 팝은 순서를 따라가기 바빴고, 재즈는 바닥에서 춤을 추다가 일어나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그런가 하면 라틴댄스를  때는 자꾸 리더를 리드하게 되어 곤란했다. 탄츠플레이는  , 혹은  개의 (bar) 활용하여 공간 감각을 익히는 것이 특징인데 일정 공간에 갇히는 느낌이 유쾌하지 않았다. 현대무용을  때는 위의 모든 춤을  때의 단점을 총망라할  있었다.


 중에도 가장 지독한 짝사랑은 발레였다. 주말에도 출근하며  80시간은 예사로 일하던 회사생활 2 . 퇴근하고 집으로 오는 사거리에서 빛나는 ‘발레라는 글자를 보고선 클래식 작품 ‘지젤에서 동네 청년이 처녀 귀신인 윌리에게 홀리듯 학원으로 들어섰다. 순백색의 벽에 분홍색 로고가 붙어있는 홀에서 체험 수업을 원하냐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들은 하나 같이 조막만  얼굴에  목을 지녀 트레이닝복을 입어도 가려지지 않는 우아한 자태를 뽐냈고 5  이상 결제금액에 사인하라는 펜을 건네주려 손을 살짝 들기만 해도 기품이 넘쳐흘렀다.


피아노 선율에 맞춰 두 발로 서는 방법과 팔을 쓰는 방법, 배꼽이 향하는 방향마저 모두 숫자로 정해져 있는 발레에 순식간에 마음을 빼앗겼다. 매일 예상치 못한 일이 쏟아지는 회사생활에 반해 아주 일관되고 ‘정석’이 있는 발레를 출 때만큼은 조금이라도 상황을 컨트롤할 수 있는 것처럼 느꼈는지도 모른다. 비록 팔다리가 따로 놀고 그 와중에 시선과 미소를 잊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을 따르다 보면 자주 숨 쉬는 법을 잊었지만 말이다. 어찌나 숨을 참았는지 한 시간 반짜리 수업을 다 듣고 나면 흉곽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무척 아름다운 춤이고 추는 동안 진심으로 행복했지만 발레에는 뛰어넘을 수 없는 벽이 있었다. 성인반 수업이 시작하기 전 불투명한 유리문에 한 줄 나 있는 투명 유리창을 통해 초등학교 저학년 전공생 아이들의 몸짓을 보면 그 단단한 벽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5살에 시작해도 빠른 편이 아니라는 발레는 대표적인 엘리트 무용이었다. 어릴수록 습득력이 좋다지만 초등학생 아이들이 지닌 기본기는 내가 평생을 연습해도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노력한대도 스물여섯에 발레를 시작한 내가 발레리나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취미로 추는  그저 즐기면 그만 아니냐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같은 벽에 계속 부딪히다 보면 무력감에 젖기 마련이다. 선생님의 모습을 얼추 비슷하게라도 따라 추려면 우선 선생님의 움직임을 ‘ 알아야 하고 그다음에는 유연성과 근력을 통해 비슷한 자세를 ‘만들어야하는데 여기에서 번번이 무너졌다. 발레 공연을 빠지지 않고 챙겨보니 보는 눈은 높아졌는데 아무리 노력해도 같은 자세가 나오질 않았다. 태생적으로 근육이 생기기 어려운 체질이라  그랬다. 선생님이 누르면 누르는 대로, 들면 드는 대로 다리가 쭉쭉 늘어났지만 그뿐. 필라테스를 추가로 다니고 피티를 받아봐도 근육량은 늘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런데도 발레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일에 파묻혀 평일의 삶에는 아무런 이벤트도 없던 나를 ‘오늘은 발레 가는 날이야라며 단호하게 컴퓨터를 닫고 자리에서 일어서게 했던 과거가 소중해서였다. 잠시나마 일로부터 나를 해방시킨 영웅은 여전히 빛났으나, 너무 밝게 빛나는 바람에 이제는 멀게만 느껴졌다. 발레다운 발레를 하기 위해 필요한 몸매와 몸짓은 내가 아무리 애를 써도 따라가기에 역부족이었다. 결코 가까워지지 않는 거리감에 지쳐버린 나는 결국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무기한 발레를 쉬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쉬던  찾아온 것이 훌라였다. 처음부터 훌라를 ‘췄던 것은 아니다.  수업  찍은 영상을 확인해보면 전주에 넣는 훌라 핸즈를 멋대로 파도 모양으로 바꾸었고, 좌우로만 흔들어야 하는 골반은 신나게 무한대 모양으로 굴려댔다. 훌라 핸즈(hula hands)라고 부르는 손동작은 전주에서 흔히 쓰이는데, 다섯 손가락을 모으고 손바닥 아랫부분부터 시작해 손가락 끝까지 부드러운 곡선을 그린다. 이에 반해 바다를 표현하는 핸드 모션의 경우 손가락이 먼저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곡선의 형태를 띤다. 이를테면 둘은 서로의 거울 모드인 셈인데, 선생님이 가르쳐주신 내용의 아주 반대의 것을 충실히 구현한 것이다.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벌리고 서서 기마자세를 취하듯 약간 무릎을 굽힌 상태에서 오른쪽과 왼쪽으로 수평을 이루며 골반을 움직이는 카오(kao) 훌라의 가장 기본적인 스텝  하나이다.  역시 수업 내용을 잘못 듣고 관찰 역시 제대로 하지 못한 탓에 제멋대로 자유로운 골반을 뽐내며 위에서 보았을  8자를 그렸다. 부끄러움에 도저히  뜨고 보기 어려운 영상이다. 그럼에도 자꾸  수업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은 영상을 찍는 내내 마스크 너머로 뿜어져 나온 환한 웃음 때문이다.


훌라는 달랐다. 숨을   있었다. 주눅 들지 않았다. 이미 색색깔의 파우(훌라를   입는 주름치마) 입고 머리에 선물 받은 꽃핀을 꽂은 것만으로도 웃음이 배실배실 나왔다. 선생님은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다며 모든 것에 긍정적인 코멘트를 해주었다. 다만 ‘각자의 훌라가 다르니, 수업 시간만큼은 남과 비교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말을 강조했다. 걱정할 필요가 없는 말이었다. 진도가 나갈 동안은 새로운 동작을 익히기 바빠 헷갈리는 순서를 따라 하려고 곁눈질할 때를 제외하곤 남과 나를 비교할 시간도 없었다.


수업의 마지막쯤에 이르러서는  팀으로 나누어 그날 배운 분량을 영상으로 찍는 시간이 있는데, 이때가 유일하게 다른 사람들이 추는 춤을 눈여겨볼  있는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모두의  선이  달랐다. 같은 사랑을 노래하는데 누군가는 너무나 부드러운 동작으로 사랑을 속삭였고 다른 누군가는 마치 전사처럼 늠름한 사랑을 했다. 섬세한 손길로 조심스러운 사랑을 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옆에 호방한 사랑의 몸짓을 뽐내는 이도 있었다. 그리고 모두가 아름다웠다. 하나도 빠짐없이 자연스러운 웃음을 터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훌라 실력은 매주 차곡차곡 쌓였다. 손을 익히고 나면 그다음엔 발이 보였다. 발이 보이고 나면 시선이 보였다.  곡을 모두 익히는 4 차쯤이면 손과 , 시선을 얼추 맞춰낼  있었다. 보이는 것을 따라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알고 있었다. 선생님의 몸짓에 비할 것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명확하게 보였다. 누구의 훌라도 틀리지 않았다는 .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발레의 틀에 자신을 끼워 맞추려 노력하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쁜 날엔 기쁜 대로, 슬픈 날엔 슬픈 대로 나의 훌라도 매일 모습을 달리했다.  추고  추고가 없었다. 훌라는 누군가의 움직임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진짜 나의 춤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역시 훌라를   더욱 돋보였다. 희미한 기억으로나마 훌라를 춘다는 폴리네시아의 여인들은 풍채가 있던 것을 기억해냈다. 처음에는 ‘훌라 추기에 아주 적합한 몸이로군!’ 생각하며 뿌듯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알게 되었다. 모두의 훌라가 각각 아름다운 것처럼 각자의 몸도 있는 그대로 아름다울  훌라를 추기에  좋은 몸이나 예쁜 몸은 없었다. 나이나 몸매, 성별같이 겉으로 보이는 것들은 훌라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여유로운 하와이안 음악에 맞춰 그저 각자의 움직임과 미소가 남을 뿐이었다.


한 해를 돌아보는 이 시점에 봄날 빌었던 소원이 성취되었는지 떠올려보니 그토록 원하던 사랑을 하는 중인 게 분명하다. 훌라는 너무 급하지도 않게, 너무 과하지도 않게 다가왔다. 훌라가 나를 예뻐해 주는 만큼 나도 훌라가 좋아서 시간이 허락하는 대로 동쪽과 남쪽의 바다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곡을 배웠다. 훌라를 추고 있노라면 바닷가 옆의 천국에 있는*것처럼 느껴졌다. 훌라에 입을 맞출 수 있다면 하늘에 박힌 별의 수보다 더 많이 키스**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게다가 훌라는 그동안 몸으로 익힌 모든 춤이 녹아난 춤의 결정체였다. 이토록 균형 있는 사랑이라니. 그토록 바라던 애쓰지 않는 상대를 비로소 만났다.


* <Hanalei moon>의 가사 중 ‘When you see, Hanalei by moonlight. You will be in heaven by the sea’.


** <Pearly shells>의 가사 중  ‘I’ve got more left over for each star that twinkles in the blue’.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