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장하자마자 폐장 위기에 놓인 <와이키키 훌라클럽>의 미래는?
긴장을 얼마나 했는지 턱관절이 뻐근하다. 손가락의 거스러미를 뜯으며 새로고침을 눌러봐도 응답의 개수는 똑같이 5에 머물러있다. 한 반의 등록자가 3명 미만이면 폐강하려고 했다. 그런데 세 반의 신청자가 도합 다섯이라니. 이래서야 세 반 모두 폐강하게 생겼다. 당장 오는 11월과 12월에 손가락을 쪽쪽 빨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미 수업을 신청한 다섯 명이 퇴근 후에 알로하의 마음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22년 겨울, 호기롭게 개장한 <와이키키 훌라클럽>은 개장과 동시에 폐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9월은 희한하게 운이 좋았다. 서핑을 배우러 간 속초에서 이전에 훌라를 같이 추었던 카레 집 사장님이 수업을 제안했다. 카레 집 사장님과 사장님 친구 한두 명 정도 모여 바닷가에서 무료 원데이 클래스를 여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흔쾌히 승낙했던 것은 훌라 불모지인 속초에 알로하 스피릿을 퍼뜨리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훌라 전문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긴 했지만, 재취직을 하든 훌라 수업을 열든 내년 오월까지는 뒹굴뒹굴하면서 놀 생각이었다. 그리고 카레 집 사장님은 그다음 얼굴을 볼 때 잔잔한 미소를 띠고 아홉 명의 회원을 데리고 나타났다.
첫 번째 수업을 하고 SNS에 영상이 올라가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그다음 주에는 추가 반이 꾸려졌다. 어떠한 홍보도 없이 정원을 꽉 채워 모집된 인원이 신기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도 놀라웠다. 뭐야, 나 꽤 훌라 강사처럼 말하고 있잖아? 사람들이 내 말에 따라 골반을 흔들고, 팔을 둥글게 들어 태양을 만들거나 손바닥을 일렁여 파도를 표현했다.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난다더니 진짜였나 봐. 22년 가을부터 기운의 흐름이 바뀐다던 최애 무당의 말이 기억났다. 좋았어, 훌라가 내 서울사이버대학교야. 이제 나도 성공시대 시작됐다. 기세를 몰아 <와이키키 훌라클럽>을 서울에서도 개장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인스타그램 광고를 게재했지만 1.3만 개의 계정에 도달했다는 프로페셔널 대시보드의 숫자가 무상했다. 광고를 보고 프로필을 방문한 사람은 49명, 게 중에서도 수업 신청 홈페이지를 누른 사람의 수는 단 10명이었다. 위치를 자동으로 선택한 게 잘못이었을까? 인제 보니 관심사를 설정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잖아? 팔로워 중에 10대 비율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미성년자를 가르치려면 교육부에 신고해야 해서 복잡한데. 연령 및 성별을 성인 여성으로 제한해야 했나? 지금 다시 세팅하라고 하면 하와이와 댄스를 키워드로 넣어 설정할 수 있는데! 위치 서비스도 켤 줄 아는데!
훌라는 내가 알기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었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한 주 동안의 근황을 나누면 바쁘던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눈을 감고 훌라를 시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챈트를 외우고 나면 잠자고 일어난 듯 머리가 개운해졌다. 엉덩이를 씰룩이다 보면 고민과 잡생각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접했으면 3년은 회사를 더 다녔겠다 싶어질 정도로 훌라는 스트레스 관리에 효과적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6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목공, 도예, 꽃꽂이, 클라이밍, 발레 등 각종 취미를 섭렵하던 취미 부자의 말이니 믿어달라.
정확히는 아침에 지하철에 몸이 껴서 출근하고 나면 이미 진이 쏙 빠지는데 낮에는 이런저런 전화응대를 하느라 보고서에는 손도 못 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해는 지고 있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맛대가리도 없는 김밥을 사 와서 입에 욱여넣으면서 급한 메일을 처리하다 보면 여전히 보고서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로 그저 내일 출근하기 위해 오늘 안에 겨우 퇴근하는, 새벽 두 시의 잠실을 빛내는 반딧불 직장인들이 훌라를 딱 한 번만 춰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출근길에 저 버스에 치여서 일주일만 입원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대신에 퇴근하고 훌라를 출 생각에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을 텐데. 누가 춰도 즐거운 춤이지만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직장인의 애환이니까.
알로하의 마음을 조금 더 가져보자면 그 시절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에게도 훌라를 권하고 싶었다. 반말을 일삼거나 말도 안 되는 타임라인을 주면서 자신들이 하기 싫은 업무를 모조리 미루던 이들 말이다. 야근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들을 피할 방도가 없어서 목공기계의 굉음을 들으며 손 앞에 번쩍이는 날에 집중해야만, 손끝을 아주 살살 눌러야 하는 흙 앞에서 눈물과 함께 척척하게 흐르는 콧물을 킁, 하고 먹어야만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그들이 훌라를 췄더라면, 그래서 삶의 즐거움을 깨닫고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는 걸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과연 남을 그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
나를 박하게 대한 사람들 말고도 소위 진상 고객이라는 사람들은 세상에 넘치는 것 같았다. 병원에서, 은행에서, 지하철 안에서 언성을 높이는 그들을 붙잡고 고객님, 저랑 훌라 한 번만 추실래요? 하고 묻고 싶은 기분이었다. 전화를 붙잡고 천박한 언어로 싸우던 사람들도 훌라를 추면 디즈니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동물 친구들과 함께 손잡고 노래 부르게 될 것이라 확신했다. 이게 정말 좋은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냥 춰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더 많은 사람이 훌라를 접하길 바랐다. 훌라를 접하는 사람의 수만큼 각자의 우주에 평화가 도래할 거였다. 그런데 한 손에 꼽힐 만큼의 사람들에게도 알로하를 전하지 못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세계평화는 역시나 멀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턱관절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명상을 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폐강하지 말자. 한 명씩이라도 붙잡고 수업하자. 내가 맛보았던 알로하를 조금이라도 나눠보자. 적어도 일주일에 한 시간 반 동안은 햇살이 따뜻하고, 플루메리아 꽃향기가 달콤하고, 파도 소리가 잔잔한 와이키키 해변으로 데려가 보자. 잠깐이라도 업무에 대해 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링딩동’만큼이나 중독성 강한 노동요 ‘후키 후키 후키 후키라우~’*를 입으로 흥얼거린다면 대성공이다.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는 작은 이벤트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폐강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나니 문제가 될 게 없어졌다. 심지어 수업을 더 늘렸다. 망원동 운동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훌라를 궁금해해? 그럼 망원동 수업 만들어! 연희동에서 철판 요리점을 하는 친구가 수업을 듣고 싶어? 평일 낮에 수업 열어줄게! 훌라의 신 라카가 이런 나의 마음을 갸륵하게 보았는지 신청양식이 하나둘씩 접수되기 시작했다. 구글 폼에 대답한 사람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게 마법 같았다. 숫자가 5에서 6이 되고, 6에서 7이 되는 게 신기해서 자꾸자꾸 답변을 읽어보았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구나. 얼른 함께 춤췄으면 좋겠다.
턱관절은 이제 안녕하다.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어렵지만, 다음 광고는 더 잘 설정할 수 있을 거다. 훌라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려면 생활비를 벌 수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하지만 그것도 차차 탐색해 보자. 모든 것은 원래 불확실하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 알로하가 계속 춤추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명상과 더불어 내면의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또 하나의 주문을 찾았고, 지금까지 시도해본 그 어떤 것보다 효과가 분명하니까. 더 많은 사람이 훌라를 췄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훌라가 궁금해서 시도해보고 싶을 때를 위해 훌라 댄서 여구르르는 언제나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알로하, <와이키키 훌라클럽>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 하와이 전통 방식의 물고기잡이를 노래하는 ‘The Hukilau Song’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