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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구르르 Nov 24. 2022

와훌 존폐의 기로에서

개장하자마자 폐장 위기에 놓인 <와이키키 훌라클럽>의 미래는?

긴장을 얼마나 했는지 턱관절이 뻐근하다. 손가락의 거스러미를 뜯으며 새로고침을 눌러봐도 응답의 개수는 똑같이 5 머물러있다.  반의 등록자가 3 미만이면 폐강하려고 했다. 그런데  반의 신청자가 도합 다섯이라니. 이래서야   모두 폐강하게 생겼다. 당장 오는 11월과 12월에 손가락을 쪽쪽 빨아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 수업을 신청한 다섯 명이 퇴근 후에 알로하의 마음 없이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 22 겨울, 호기롭게 개장한 <와이키키 훌라클럽> 개장과 동시에 폐장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9월은 희한하게 운이 좋았다. 서핑을 배우러 간 속초에서 이전에 훌라를 같이 추었던 카레 집 사장님이 수업을 제안했다. 카레 집 사장님과 사장님 친구 한두 명 정도 모여 바닷가에서 무료 원데이 클래스를 여는 것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았다. 흔쾌히 승낙했던 것은 훌라 불모지인 속초에 알로하 스피릿을 퍼뜨리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훌라 전문 지도자 과정을 밟고 있긴 했지만, 재취직을 하든 훌라 수업을 열든 내년 오월까지는 뒹굴뒹굴하면서 놀 생각이었다. 그리고 카레 집 사장님은 그다음 얼굴을 볼 때 잔잔한 미소를 띠고 아홉 명의 회원을 데리고 나타났다.

첫 번째 수업을 하고 SNS에 영상이 올라가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그다음 주에는 추가 반이 꾸려졌다. 어떠한 홍보도 없이 정원을 꽉 채워 모집된 인원이 신기했다. 수업을 시작하자마자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진행도 놀라웠다. 뭐야, 나 꽤 훌라 강사처럼 말하고 있잖아? 사람들이 내 말에 따라 골반을 흔들고, 팔을 둥글게 들어 태양을 만들거나 손바닥을 일렁여 파도를 표현했다. 동쪽에서 귀인이 나타난다더니 진짜였나 봐. 22년 가을부터 기운의 흐름이 바뀐다던 최애 무당의 말이 기억났다. 좋았어, 훌라가 내 서울사이버대학교야. 이제 나도 성공시대 시작됐다. 기세를 몰아 <와이키키 훌라클럽>을 서울에서도 개장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인스타그램 광고를 게재했지만 1.3만 개의 계정에 도달했다는 프로페셔널 대시보드의 숫자가 무상했다. 광고를 보고 프로필을 방문한 사람은 49명, 게 중에서도 수업 신청 홈페이지를 누른 사람의 수는 단 10명이었다. 위치를 자동으로 선택한 게 잘못이었을까? 인제 보니 관심사를 설정할 수 있는 페이지가 있잖아? 팔로워 중에 10대 비율이 이렇게 많았단 말이야? 미성년자를 가르치려면 교육부에 신고해야 해서 복잡한데. 연령 및 성별을 성인 여성으로 제한해야 했나? 지금 다시 세팅하라고 하면 하와이와 댄스를 키워드로 넣어 설정할 수 있는데! 위치 서비스도 켤 줄 아는데!


훌라는 내가 알기로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행복해지는 방법이었다. 사람들과 둘러앉아 한 주 동안의 근황을 나누면 바쁘던 마음이 한결 여유로워졌다. 눈을 감고 훌라를 시작하기 위해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챈트를 외우고 나면 잠자고 일어난 듯 머리가 개운해졌다. 엉덩이를 씰룩이다 보면 고민과 잡생각은 깨끗하게 사라졌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에 접했으면 3년은 회사를 더 다녔겠다 싶어질 정도로 훌라는 스트레스 관리에 효과적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6년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목공, 도예, 꽃꽂이, 클라이밍, 발레 등 각종 취미를 섭렵하던 취미 부자의 말이니 믿어달라.

정확히는 아침에 지하철에 몸이 껴서 출근하고 나면 이미 진이 쏙 빠지는데 낮에는 이런저런 전화응대를 하느라 보고서에는 손도 못 대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면 이미 해는 지고 있고 힘없는 걸음걸이로 맛대가리도 없는 김밥을 사 와서 입에 욱여넣으면서 급한 메일을 처리하다 보면 여전히 보고서에는 손도 대지 못한 채로 그저 내일 출근하기 위해 오늘 안에 겨우 퇴근하는, 새벽 두 시의 잠실을 빛내는 반딧불 직장인들이 훌라를 딱 한 번만 춰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출근길에 저 버스에 치여서 일주일만 입원했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대신에 퇴근하고 훌라를 출 생각에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웠을 텐데. 누가 춰도 즐거운 춤이지만 내가 가장 잘 아는 것은 직장인의 애환이니까.

알로하의 마음을 조금 더 가져보자면 그 시절 나를 괴롭게 했던 사람들에게도 훌라를 권하고 싶었다. 반말을 일삼거나 말도 안 되는 타임라인을 주면서 자신들이 하기 싫은 업무를 모조리 미루던 이들 말이다. 야근이 힘든 게 아니었다. 그들을 피할 방도가 없어서 목공기계의 굉음을 들으며 손 앞에 번쩍이는 날에 집중해야만, 손끝을 아주 살살 눌러야 하는 흙 앞에서 눈물과 함께 척척하게 흐르는 콧물을 킁, 하고 먹어야만 회사를 계속 다닐 수 있었다. 그들이 훌라를 췄더라면, 그래서 삶의 즐거움을 깨닫고 마음에 사랑이 흘러넘치는 걸 한 번이라도 경험했다면 과연 남을 그렇게 대할 수 있었을까?

나를 박하게 대한 사람들 말고도 소위 진상 고객이라는 사람들은 세상에 넘치는  같았다. 병원에서, 은행에서, 지하철 안에서 언성을 높이는 그들을 붙잡고 고객님, 저랑 훌라  번만 추실래요? 하고 묻고 싶은 기분이었다. 전화를 붙잡고 천박한 언어로 싸우던 사람들도 훌라를 추면 디즈니 영화의  장면처럼 동물 친구들과 함께 손잡고 노래 부르게  것이라 확신했다. 이게 정말 좋은데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서, 그냥 춰보자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사람이 훌라를 접하길 바랐다. 훌라를 접하는 사람의 수만큼 각자의 우주에 평화가 도래할 거였다. 그런데  손에 꼽힐 만큼의 사람들에게도 알로하를 전하지 못할 위험에 처한 것이다. 세계평화는 역시나 멀고도 어려운 일이었다.

​턱관절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에 이르자 명상을 했다. 그리고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다. 폐강하지 말자. 한 명씩이라도 붙잡고 수업하자. 내가 맛보았던 알로하를 조금이라도 나눠보자. 적어도 일주일에 한 시간 반 동안은 햇살이 따뜻하고, 플루메리아 꽃향기가 달콤하고, 파도 소리가 잔잔한 와이키키 해변으로 데려가 보자. 잠깐이라도 업무에 대해 잊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링딩동’만큼이나 중독성 강한 노동요 ‘후키 후키 후키 후키라우~’*를 입으로 흥얼거린다면 대성공이다. 다음 주를 기다리게 하는 작은 이벤트가 된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폐강이라는 단어를 지우고 나니 문제가 될 게 없어졌다. 심지어 수업을 더 늘렸다. 망원동 운동회에서 만난 사람들이 훌라를 궁금해해? 그럼 망원동 수업 만들어! 연희동에서 철판 요리점을 하는 친구가 수업을 듣고 싶어? 평일 낮에 수업 열어줄게! 훌라의 신 라카가 이런 나의 마음을 갸륵하게 보았는지 신청양식이 하나둘씩 접수되기 시작했다. 구글 폼에 대답한 사람의 숫자가 하나씩 늘어나는 게 마법 같았다. 숫자가 5에서 6이 되고, 6에서 7이 되는 게 신기해서 자꾸자꾸 답변을 읽어보았다.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오는구나. 얼른 함께 춤췄으면 좋겠다.

턱관절은 이제 안녕하다. 인스타그램은 여전히 어렵지만, 다음 광고는   설정할  있을 거다. 훌라를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려면 생활비를   있는 방도를 찾아야 하지만 그것도 차차 탐색해 보자. 모든 것은 원래 불확실하다. 하지만  마음속에 알로하가 계속 춤추고 있을 거라는 사실은 의심하지 않는다. 명상과 더불어 내면의 세계를 평화롭게 만드는  하나의 주문을 찾았고, 지금까지 시도해본  어떤 것보다 효과가 분명하니까.  많은 사람이 훌라를 췄으면 좋겠다. 누군가가 훌라가 궁금해서 시도해보고 싶을 때를 위해 훌라 댄서 여구르르는 언제나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알로하, <와이키키 훌라클럽> 오신  환영합니다.

​​

* 하와이 전통 방식의 물고기잡이를 노래하는 ‘The Hukilau Song’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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