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라는 어떻게 이야기가 되었나
세찬 비가 내리는 여름밤. 꿉꿉함이라고는 하나 없어 오히려 쌀랑한 기운이 도는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 작은 조명이 여러 개 밝혀져 있어 아늑한 거실의 소파에 앉아있다. 청바지에 긴팔을 걷어입은 엄마는 ‘저번에 읽던걸 어디 뒀더라?’ 하며 책 한 권을 손에 잡는다. 공주와 기사가 등장하여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16세기 프랑스 로맨스 소설인데 독일어 판본이다. 주인공은 독일어는 하지 못하므로, 엄마가 한 줄씩 읽고 주인공이 이해할 수 있는 영어로 번역해 주길 기다리며 소파에 앉은 아빠의 다리에 기대어 눕는다.
영화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가장 좋아하는 씬이라고 말하면 대부분 ‘그런 장면이 있었어?’라고 되묻는, 3분이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다. 이 영화에서 좋아하는 또 다른 장면은 살구주스를 나눠마시며 apricot의 어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다. 주인공이 여름손님과 첫사랑에 빠지는 줄거리를 쏙 빼놓고라도 나는 이 가족을 사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영어와 프랑스어와 이탈리어, 독일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소통하는 것은 내가 가장 이상적으로 그리는 가족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피아노 재미있어?라는 질문에 피아노 선생님이 이야기 선생님이었으면 좋겠어,라고 대답하는 어린이 었다. 하굣길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해 횡단보도 앞에서 몇 번이나 신호를 놓치기도 했다. 이야기는 언어로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서 북이탈리아에 별장이 있는 삶이 아니어도 좋으니 아이를 기르게 된다면 한국어와 영어로 대화하는 삶을 꿈꿨다. 꼭 영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나 체코어, 헵타포드어(영화 컨택트(2016, 원제 arrival)에서 등장하는 외계어)라도 좋겠다. 그저 내가 욕심내는 것은 더 많은 언어로 더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 그 언어만이 가지는 문화와 정신, 더 많은 이야기, 이야기, 이야기였다.
그래서 회사를 쉬면서 가장 먼저 구매한 것이 하루에 10분만 투자하면 세 달 후엔 기본 회화가 된다 광고하는 학습지였다. 알파벳을 보고 바로 소리를 내어 읽기 만만한 것이 스페인어와 이탈리아어였고 언젠가 바가노바 발레스쿨을 견학이라도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러시아어 학습지도 주문했다. 매일 삼십 분을 투자해 휴직 기간이 끝날 때에는 세 개의 언어로 ‘여기 맥주 한 잔 주세요’를 외칠 수 있는 모습을 상상했지만 육 개월이 지난 후 정작 엉뚱한 곳에 다다랐다. 하와이안 훌라.
훌라는 즐거웠다. 율동이라 할 만큼 안무가 쉬웠고 거울 속에 비치는 스스로를 보노라면 골반을 흔드는데 꽤나 소질이 있어 보였다. 돌아가고 싶어요, 할 때 엄지 손가락을 뺀 오른손을 쥐고 몸 뒤로 흔든다던가, 작은 집을 만들 때는 양손을 가슴 앞에 모아 세모 모양을 만든다던가*. 가사가 들리는 대로 몸을 움직이면 되었다.
훌라를 배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내 안에 단어들도 쌓여갔다. 하와이, 코나 같은 지명 혹은 땅을 그리는 동작은 손으로 바닥을 판판하게 눌렀고, 남자는 가슴 앞에 양 팔로 등호 표시로 만들어 나타내는가 하면 여자는 머리부터 허리께까지 오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훑는 동작으로 표현했다. 그때는 몰랐다. 하와이어에 오랫동안 문자가 없었으며 훌라라는 춤으로 이야기가 전해져 왔다는 것을. 12개의 알파벳으로 소리 나는 대로 하와이어를 기록하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미국인 선교사들이 섬에 도착한 이후였다.
귀에 익는 곡이 많아질수록 몸의 어휘력은 일취월장했다. 플레이리스트는 자연스레 하와이안 멜레(노래)로 채워지기 시작했으며 그러다 간혹 같은 노래에 다른 안무들을 보기도 했다. 춤이 언어라면, 각 할라우 훌라(훌라 학교)의 안무는 이를테면 경기민요, 광주민요 같은 것이었다. 할라우마다 춤의 스타일이 다르기도 하고 같은 단어를 나타내는 몸짓이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 각 지역의 방언이 다르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로버트 할리가 한국에 살며 익힌 것이 부산 사투리이듯, 나도 내가 노래하는 것이 어느 지역의 민요인지 모르고 훌라를 시작했다.
회사를 다닐 때는 백일 글쓰기를 했다. 그것을 세 번 반복했더니 초고가 300개가 쌓였다. 훌라를 한참 추는 동안에는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글 속으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사라져서 그런가 했는데 훌라가 내 안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춤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춤을 추는 내내 몸짓에 비유와 묘사를 풀어놓았으니 더 이상 손으로 쓸 필요가 없었을 뿐. 마음이 고단할 때면 느린 곡에 맞춰 마음의 짐을 덜어놓고 , 기분이 좋으면 한껏 흥이 나는 노래에 몸을 맡긴다. 하와이의 노랫말은 서울의 어느 연습실에서 나의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여전히 이야기가 좋다. 계속해서 듣고 싶다. 하와이를 배경으로 한 영화와 원주민과 이주민의 역사를 읽는 것도 흥미롭지만 <와이키키 훌라클럽>이 개장한 뒤로는 우선순위가 조금 뒤로 밀렸다. 가장 생생하게 숨 쉬는 이야기는 사람들이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는 통장 잔고를 바라보며커녕 다리를 달달 떠는 순간이나 부서 이동을 해서 정신이 없는 일상, 부동산 임장을 다니며 예상치 못한 곳으로 이사하게 될 미래, 조카가 가져가버린 꽃 목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나는 덧붙인다. 그 이야기를 몸으로도, 당신만의 언어로도 들려주세요.
* <Little Grass Shack>의 한 부분: I want to go back to my little grass shack, in Kealakekua Hawa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