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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구르르 Dec 02. 2023

평범한 훌라댄서인 내가 눈 떠보니 회사원?

눈물을 머금고 회사로 돌아오게 된 건에 대하여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다시 세어봐도 숫자는 같았다. 이 년 전에는 몇 천이 들어있던 통장에는 이제 겨우 이번 달 카드 값을 낼만큼의 돈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동그라미가 하나 사라졌을 뿐인데 마음이 백배는 더 쪼그라들었다. 사업은 날이 갈수록 마이너스를 쳤다. 매달 버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썼기 때문이다. 수강생이 여섯 명이면 얼추 생활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하와이의 향기로움을 주기 위해 준비한 아로마 오일과 달콤함을 맛 보여주기 위한 마카다미아 초콜릿을 결제하고 나면 손에 남는 건 회사 다니던 시절 호쾌하게 결제하던 술값만큼 밖에 안 됐다. 수강생이 한 명인 수업을 고집스럽게 유지한 것도 한 몫했다. 한 사람의 수강료는 그 달의 연습실 대관료와 맞먹었기 때문에 오가는 교통비만 써도 손실이었다.  

이전 직장에서 좋은 평판을 유지한 덕분에 구직은 수월했다. 서류와 1차 면접, 잇따른 2차 면접까지 손쉽게 패스했다. 나를 두고 경쟁하는 두 군데를 비교하며 커리어를 더 발전시킬 수 있는 곳으로 결정했다. 순탄한 과정이었으나 밝은 금발머리를 새까맣게 염색한 것처럼 마음에는 먹구름이 드리웠다. 훌라 강사로의 전직에 실패했다는 것은 주 120시간씩 일하던 그곳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을 뜻했으므로.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하와이의 수많은 훌라 댄서들도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간호사로, 누군가는 웨이트리스로, 누군가는 에어비앤비로 돈을 벌며 훌라를 춘다고 했다. 쿠무훌라*도 투잡을 뛴다는데, 일개 강사인 내가 투잡을 뛰는 거야 당연하지. 그렇게 두 가지 직업을 가지게 되었다.

2년 만에 회사를 다니려니 출근부터가 난관이었다. 시간을 자유롭게 쓰던 프리랜서에게 아침 9시 출근은 가혹한 일이었다. 자유롭게 흔들던 골반으로 하루에 여덟 시간씩 앉아있으려니 좀이 쑤셨다. 게다가 지금 있는 곳은 모든 프로세스가 정리정돈 되어있는 곳이었다. 안내 사항을 충실히 따라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나 그것이 꼭 좋은 것만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있었던 팀은 모두 새로이 꾸려진 팀이라 모두 으쌰으쌰 힘을 합쳐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들어가고 그 프로세스를 공유하는 절차가 숨 쉬듯이 자연스러웠다. 직접 만든 절차이다 보니 굳이 문서를 뒤져보지 않아도 일하는 방식이 몸에 익어있었다. 새 회사에선 하루를 마칠 때 내가 뭘 했나 돌이켜보면 손에 꼽는 업무량에 허탈하다. 해낸 일보다 남은 일이 더 많다.

지난 6월 7일 입사하여 어느새 회사로 돌아온 지도 6개월이 흘렀다. 착착 일을 쳐내던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는 당분간 요원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의 힘을 믿으며 악착같이 버티는 중이다. 좌충우돌 신입사원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도 훌륭하지, 애써 스스로를 어르고 달래며 주 5일을 보낸다. 일 하나를 무사히 끝마치면 ‘아직 안 죽었다 이거야!’ 기뻐하고 일 하나를 어그러치면 ‘이제 이 일은 못하는 사람이 되었나 봐..’ 자책하며 말 그래도 일희일비한다. 새벽에 못 마친 업무가 기억나서 벌떡 일어나고, 꿈결에 오늘 토요일인가? 아니 아직 수요일이지.. 를 반복하면서도 꾸역꾸역 매일의 일을 해나간다. 그리고 여타의 직장인들처럼 목을 빼고 주말을 기다린다. 와이키키 훌라클럽이 개장하는 일요일을.

훌라가 본업이고 회사가 세컨드잡이라고 말하면 다들 훌라라는 단어에 놀라고, 어떻게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냐고 질문을 던진다. 와이키키 훌라클럽은 다른 이들에게 그렇듯 내게도 숨 쉴 구멍이다. 일요일 저녁에 반가운 얼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회사에서 느꼈던 설움은 가랑눈이 공중에서 사라지듯 녹는다. 다 함께 춤을 추고 있으면 내일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을 반쯤 잊게 된다. 회사 일을 생각하면 마음에 돌덩이가 내려앉은 것 같지만 그 월급으로 와이키키 훌라클럽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니 가슴에 느껴지는 이 무게에는 안정감이라고 이름 붙여본다. 어떤 고민은 그저 해나가는 방법으로만 해결된다는 것을 알기에, 양쪽으로 잡아당기는 줄 위에서 요리조리 중심을 잡아본다.

* 쿠무 훌라: 할라우(훌라를 가르치는 학교)를 운영하는 훌라 지도자

** 훌라 오하나: 훌라로 이어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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