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드라마 속 여주인공처럼
화를 다스리는 법에 대하여
열이 잔뜩 받은 여자 주인공은 어김없이 밥을 비빈다. 츄리닝 차림으로 똥머리를 질끈 묶고 빨간 고추장을 듬뿍 넣어 썩썩 소리가 나게 팔을 휘젓는다. 숟가락 가득 퍼서 와구와구 먹는 장면을 보면 고소한 참기름 내가 코에 닿을 것 같지만 말 그대로 드라마의 한 장면일 뿐이다. 냉장고에 삼색 나물이 있는 날은 손에 꼽기 때문이다. 비정한 도시의 1인 가구 여성이 하루 종일 일터에서 치이고 썸도 타는 와중에 나물을 무치기는 힘들지 않을까. 밤이면 친구들과 술자리에서 속마음도 풀어야 하는데 반찬가게에 들를 시간이 있긴 하냔 말이다.
화가 날 때 비빔밥을 비비는 대신 글을 쓴다. 손으로 힘을 꾹꾹 주어 글을 쓰면서 감정을 배설한다. 무엇이 나를 화나게 했는지, 그래서 내가 얼마나 억울하고 속상한지. ‘이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걸’ 하는 후회부터 ‘다시는 당하지 않을 테다’ 하는 다짐까지. 몇 장씩 글을 쓰다 보면 연필 잡는 자리에 생긴 굳은살이 벌겋게 달아오른다. 가끔 손이 마음의 속도를 따라오지 못하지만 그럴 땐 공책에 마구 선을 그어버리거나 점을 찍어도 좋다. 무엇으로 종이를 채우든 팔이 아파올 쯤이면 어느 정도 마음이 가라앉아있다. 초등학생 때부터 써온 마음 다스리는 방법이니 그 역사가 제법 되었다.
글로 되지 않을 땐 몸을 움직인다. 웬만한 운동으로는 불쾌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큰 소리로 노래를 들으며 바람을 거스르는 방향으로 허벅지가 터질 때까지 자전거를 타거나, 귓가에 심장소리가 북처럼 울릴 때까지 산을 오른다. 사람이 없다 싶으면 소리를 내지르며 달리기도 한다. 극한의 정신적 스트레스(다른 말로 딥빡이라고도 한다)는 극한의 신체적 고통으로 대부분 치환 가능하여 몸을 쓰고 나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진다. 당장이라도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싶지만 몸이 묶인 직장인이라면 하다 못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환기가 된다.(물론 나는 서늘한 건물 로비에서 화를 다스릴 수 없어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 분노의 타자로 읍소 메일을 쓰고도 씩씩거리며 퇴근했다.)
하루가 끝날 때쯤이면 기분이 풀려있기를 바라기 마련이다. 이러한 소망을 담은 갖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화가 소중한 저녁시간을 침범한다면 나는 가만히 눈을 감는다. 어마어마한 크기의 분노를 상상의 보자기에 싼다. 눈 앞을 가릴 만큼 큰 보따리를 찰흙처럼 꾹꾹 눌러 작은 사이즈로 만들고, 한 번 더 보자기에 싼다. 화나는 일이 먼지 한 톨만큼 작아질 때까지 반복한다. 처음에 비하면 우스울 정도로 작아진 것을 보면 득의양양 해진다. 그리고 속에서 천불이 끓게 했던 일이 더 이상 나를 해할 수 없을 만큼 꽁꽁 싸지면, 뻥하고 발로 차 버린다. 어찌 됐든 분노가 나를 잡아먹게 두지는 말자고 다짐한다. 비벼먹을 나물은 없지만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나도 다음 날을 살아야 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