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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구르르 Dec 02. 2020

관절 시림의 기쁨과 슬픔

관절 시림에도 기쁨이 있을까요?

    관절이 시린 삶은 챙길 것이 많다. 목에는 사시사철 스카프를 두르고, 여름에도 항상 겉옷을 챙긴다. 멋을 부리고 싶어 7부 바지를 입을 때에도 양말을 챙겨 나간다. 지금도 손목에는 팥 찜질 팩을 두르고 있는데, 팥 찜질팩으로는 목, 손목, 발목부터 어깨, 허리, 무릎까지 지지지 못할 곳이 없다. 5년 동안의 경험이 축적된 결과다. 

     평생 써야 하는 관절이 20대부터 시리다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인이라도 알면 좋겠는데 신경외과, 류머티즘내과에서도 검사 결과에는 이상이 없단다. 일을 시작하며 생긴 증상이니 일을 그만두면 나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만, 이제는 일을 그만두었는데도 증상이 사라지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다달이 빠져나가는 카드 값과 대출 상환액을 떠올리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관절 시림과 함께해야 한다.

     관절 시림이 아주 유쾌한 경험이라고 말하지는 못하겠다. 원인을 알 수 없으니 모든 것을 조심해야 했다. 토마토를 먹어서 어제보다 더 시린 것인지, 찬물로 샤워를 해서 손가락까지 번진 것인지 알 수 없으니 꽁꽁 싸매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이 늘어났다. 오랜 기간 한약을 먹고, 8 체질에 따른 식이요법을 하느라 술을 끊고 친구들과의 만남도 줄이며 몸을 사리는 동안 나의 마음도 위축되었다. 그럼에도 관절 시림이 나에게 준 기쁨이 있다. 몸에 대한 깨달음 말이다.

     깨달음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온다. 관절 시림이 시작되고 4년 정도가 흐른 어느 날, 새벽을 훌쩍 넘긴 시간에 5시간 넘게 이삿짐 정리를 하다가 손끝에 피가 쫙 도는 느낌을 받고 나서야 그동안 덜 움직여서 더 힘들어진 거라는 걸 알았다. 그 이후로 조금씩 몸을 쓰는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보고 있다. 최근에는 5km 달리기를 해보았는데, 비록 페이스 메이커에게 끌려가다시피 달렸지만 끝까지 달리고 나니 어마어마한 쾌감이 있었다. 그건 아주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은 것에 대한 기쁨이었다.

     이제는 발가락이 시리면 걸으러 간다. 한 시간 반을 쉬지 않고 걷고 나면 손과 발이 따뜻해지고, 관절의 시림도 조금은 견딜만하다. 땀을 흘리고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후 침대에 누우면 심장이 뛰는 소리가 들린다. 눈을 감고 깊은숨을 들이쉬면, 대동맥을 통해 뱃속부터 발끝까지 퍼져나가는 따끈한 피의 감촉이 느껴진다. 편안하다. 스스로가 대견하다. 나는 나의 의지로 살아있다.

     내가 몸 담근 의료계의 허점을 명확히 볼 수 있게 된 것도 관절 시림으로 얻은 소득이다. 의료인의 입장으로 병원과 의료보건 시스템을 바라보았을 때 모든 질병은 이름이 있고, 검사 수치에 따라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내가 환자가 되고 나서야 진단받지 못하는 통증은 병원에서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치부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리 아프다고 말해도, 필요하다면 정신건강의학과를 들러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조한진희 작가가 하려던 말을 온전하게 이해했다. 나는 벽에다 대고 말하고 있었구나. 병원의 기준에 맞지 않 환자환자가 아니라고 배척하는 것. 논리적이고 타당한 듯했던 의료체계의 가장 큰 허점이 거기에 있었다.


     해가 짧아지는 가을의 문턱에 들어섰으니, 시림의 정도가 가장 심해 두려워하는 겨울도 멀지 않았다. 한 때는 왜 나만 통증으로 힘들까 괴로워했지만 지금은 이만하니 다행이다,라고 말한다. 겨울에는 나의 몸에 미치는 외부적인 요소가 달라지니, 나는 그에 따라 내 몸을 보살피면 된다. 고장 날 것을 모르고 마구 헤프게 쓰는 것과 아껴서 쓰는 것의 차이는 크다. 나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남의 몸도 애정을 가지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가장 높이 점프하는 발레리노와 가장 화려한 기교를 보여주는 발레리나에게 박수를 보냈다면, 지금은 학생들 옆에서 발가락 하나하나를 충분히 웜업과 쿨 다운하 자신의 몸에 충분히 시간을 주는 예순이 넘은 발레 선생님에게도 못지않은 감동을 받는다. 앞으로 평생 쓸 몸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서, 매일 내가 가진 몸에 더 감사하게 된다. 그러니, 관절 시림에도 기쁨과 슬픔이 있다고 할 수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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