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의 <아무튼,> 시리즈 담당자분들께 드립니다.
부디 아무튼 시리즈의 다음 글로 채택해주시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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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어요.” 프랑스인들로 가득 찬 파리의 한식당에서 순두부찌개가 목을 넘어가기가 무섭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맛있는 걸 먹으면 왜 반쯤 울상이 되는 걸까. 장미아파트 상가의 식당가는 다양한 메뉴와 주변 식당보다 저렴한 가격대로 잠실 직장인들의 발길을 끌었지만 순두부만큼은 제대로 하는 곳이 없었다. 만원 가까이하는 순두부 정식은 비벼 먹을 수 있게 같이 나오는 나물반찬 때문에 찾았지 순두부가 맛있다기엔 애매했다. 근 30년을 프랑스에서 산 사람을 옆에 두고 어제 파리에 발을 디딘 사람이 순두부를 홀랑 다 먹기는 부끄럽지만 숟가락은 염치없이 얼큰한 찌개 그릇으로 향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파리 여행의 이틀째 저녁 식당 장소를 한식당으로 정하면서 탐탁지 않았다. 7년 만에 돌아온 프랑스에서 한식당이라니! 정작 파리에 살 때는 유서 깊은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만남을 가졌던 분이라 의아하기도 했다. 몽테뉴 가의 모 명품 매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나게 된 이 분은 젊은 시절 유학길에 오른 엘리트 여성으로 프랑스에서 남편 되는 사람을 만나 그대로 파리에 자리 잡은 교포이다. 평소 댁에선 한식을 해 먹기 어렵다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백 번 양보하는 마음으로 한식당에 가자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인데, 이래서야 누구 좋자고 한식을 고른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후 2주 간의 여행에서도 기회만 되면 한식 비슷한 것을 찾아 헤맸다. 날이 흐리면 몸이 으스스하다는 핑계로 쌀 국숫집을 찾았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다 연을 맺게 된 중국인 친구와는 당연스레 중식당으로 향했다. 그리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식 없이도 잘만 살아왔다는 주장은 완벽한 착각이었다는 것을. 세계 어느 곳에서도 언제나 하루 한 끼는 엄마의 손으로 차린 밥상을 받았던 것은 새까맣게 잊은 망언이었다. 아침 식탁엔 바게트와 요거트, 꿀과 치즈가 놓여있어도 저녁엔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가 올랐다. 점심마다 치즈피자를 두 쪽씩 이년 내내 먹어도 질리는 줄 몰랐던 건 집에 가면 시원한 콩나물 국과 구수한 된장찌개가 차례로 기다리고 있을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는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다. 그 오랜 해외 거주기간 중에 한식이 그립지 않았냐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