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머리

시들어가는지 꽃을 피우는 것인지

by 아녀녕

[겨울: 제12부]



어느 주말 친한 친구 한 명이 자신이 다니고 있는 교회로 나를 잠시 불렀다. 별건 아니고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잠깐 들렀다가 가자는 친구의 말을 믿고 갔다. 하지만 “잠깐”이라는 친구의 말은 꽤나 시간이 필요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 나의 종교가 천주교임에도 성당을 찾아가지 않은 세월이 20년이 된 나로서는 다른 종교에 발을 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나 신선한 경험들을 했는데 뮤지컬 같은 1인극 공연부터 간식을 나눠 먹는 시간 말이다. 그중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던 것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 자리를 채우고 계셨다는 것이다. 친구에게 원래 이렇게 어르신들이 많냐고 물으니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 동네 어르신들이 많이 오신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교리 내용이 귀에 들어오지 않아 친구 옆에 멍하니 앉아 있다가 문득 내 앞줄과 그 앞줄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이 눈에 들어왔다. 민들레씨처럼 복슬복슬 파마를 하신 할머니도 계셨고 헤어스타일은 조금씩 다르지만 새하얀 머리들을 보며 참으로 예뻐 보인다 생각했다. 검은 머리 사이로 한 두 가닥 빼꼼히 보일 때는 미워 보였던 흰머리가 빽빽하게 채운 머리를 보니 달라 보였다. 그 어르신들의 옷차림을 유심히 보니 주름진 얼굴과 흰머리와는 대조되는 밝은 색계열부터 꽃무늬가 많고 화려함이었다. 어르신들의 그 대조되는 모습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왜 어른들은 나이가 들수록 꽃무늬 옷이나 화려한 옷을 좋아하는 걸까라고 말이다. 뒤에서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리고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 앉아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치 아이와 노인 그 사이에 놓인 사람처럼 긴 의자 앞뒤로 그 사이에 끼어 앉아 있었다.


벚꽃이 피는 계절, 벚꽃이 흩날리는 풍경을 보다가 불현듯 잊고 있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떠올렸다. 백발 어르신들의 모습이 흩날리는 벚꽃과 겹쳐 보였다. 꽃도 꽃을 피우고 시들어 사라지는데 식물도 그런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꽃을 피울까 라는 생각에 잠겼다. 흰머리카락이 꽃잎이라면 우리의 몸은 꽃을 피우는 식물의 줄기와도 같지 않을까 싶었다. 검은 머리에서 흰머리로 꽃을 피우고 시들어 가는 거라고 말이다. 그래서 그 시듦을 숨기고자 꽃무늬가 많은 옷이나 화려한 옷으로 숨기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다소 부정적이고 슬픈 것 같아 생각을 거두었다.

몇 년 사이에 측두근 주변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길 때면 보일락 말락 한 두 개 흰 머리카락이 보일 때가 있다. 흰 머리카락을 발견하면 난 그 자리에서 집게손가락을 이용하여 발굴 작업을 하고야 만다. 뭐 흰머리를 뽑으면 머리카락이 그 자리에서 안 나기 때문에 가위로 잘라주는 게 좋다고는 들었지만 자르는 것보단 없애는 게 좋기에 뽑는다. 거슬리는 이유에 대해 생각을 해보면 흰머리가 노화를 상징하기에 내가 병약해지고 볼품 없어진다는 달갑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양 흰 머리카락을 보며 벚꽃이 한송이 한송이 작은 꽃들을 피우듯 내 머리에도 아름다운 흰 꽃을 피우고 있다고 생각을 고쳐 보려고 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처럼 자연의 섭리는 피할 수 없으니 말이다. 더 나아가 나중에 내가 할머니가 된다면 어떤 모습으로 지낼까 생각해 보았다. 검은 머리로 염색하는 것보단 백발 머리였으면 좋겠고 화려한 꽃무늬 옷보단 깔끔한 무지티에 펑퍼짐한 진한 청바지와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힙한 할머니였으면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