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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록 Apr 26. 2022

저는 지금 올레길을 걷습니다 - 프롤로그

 퇴사 후 떠난 곳이 하필 제주, 그것도 올레길이었던 까닭

퇴사 일자가 정해지고 난 이후부터는 거의 매일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했다. 퇴사 이후에 꼭 혼자서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가지고는 있었는데 막상 퇴사가 현실이 되니 어디로 갈지 정하는 것부터 일이었다. 혼자 여행을 떠나는 건 여러 번 해봐서 크게 문제 될 게 없었지만 코로나 때문에 ‘장기 여행’이라는 단어와 부쩍 어색해진 덕분에 어디로 갈지 뭘 할지 많은 고민이 필요했다.


해외여행은 아직 무서워서 다음에 기회가 되면 누군가와 함께 떠나는 걸로 하고 국내를 살폈다. 어릴 적에 쓰던 전국 지도 책자가 이렇게 보고 싶었던 적은 처음이었다. 차라리 그런 지도책 구해서 펼쳤을 때 나오는 지역으로 여행 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국에서도 이렇게 가보고 싶은 데가 많았다니, 결정을 쉽게 내리지 못하고 카카오 맵으로 지도를 뒤적이다가 눈에 들어온 한 곳. 그곳은 바로 제주도!


제주도를 여덟 번 정도 방문했었는데 이상하게 봄의 제주와는 인연이 없었다. 항상 바람이 거세게 부는 겨울이나 초봄. 아니면 막 더워지는 초여름에 가본 것이 전부다. 이번 기회에 완연한 제주의 봄을 맞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제주로 가기로 결정했다.


제주 여행은 거의 렌트 예약이 항공 예약만큼 당연하게 느껴진다.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족히 두 시간 이상을 달려야 할 정도로 넓어서 차가 없으면 아무래도 여행 범위가 한정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차로 다니는 여행에서는 내가 오래 보고 싶은 풍경은 항상 이동 중에 만나게 되어 제대로 만끽하지 못한다는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때 드라마처럼 스쳐 지나간 과거의 기억 한 조각. 출근하던 시절에 제주로 휴가를 떠나시는 회사 동료분과 함께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oo님 이번에 제주도 가신다면서요! 너무 부럽네요..’
‘저 가끔 제주에 가서 올레길 걸어요.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갑자기 생각난 그 한마디 덕분에 ‘어차피 운전도 잘 못하는데 이럴 거면 진짜 뚜벅뚜벅 걸어 다니면서 제주도를 온몸으로 맞아보자’는 결심이 섰다.  그 길로 제주올레 홈페이지에서 코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제주올레 스토어를 통해 올레 패스포트와 제주올레 책자를 구입했다. 즉흥적인 결정과 빠른 실행력으로 나는 퇴사 후 첫 일정이 올레길 걷기가 되었다.


대신 나는 나의 체력을 잘 아는지라 하루에 최소 한 코스를 걷는 대신 언제든 힘들면 숙소로 돌아오는 것을 규칙으로 정했다. 여행 기간을 보름으로 잡아서 완주가 목표가 아닌 제주의 봄을 눈에 담아오는 것과 차로는 갈 수 없는 제주의 풍경을 내가 원하는 만큼 오래도록 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날이 좋으면 좋은 대로 또 나쁘면 나쁜대로 있는 그대로의 제주를 맛볼 수 있는 보름간의 여행. 나는 그렇게 4월의 어느 날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닥쳐올 미래는 생각도 못하고 그저 신났던 떠나던 날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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